논문을 써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가설을 만들고 그 가설을 증명하는 과정이, 때로는 얼마나 억지스러운지를. 그러한 논문이 심의과정을 거쳐 통과되면 하나의 이론이 되고, 심지어 과학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이론에 권력을 가진 누군가가 힘을 실어 준다면, 그것은 진실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코로나 백신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백신의 부작용들이 충분한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세계적인 제약회사들의 백신 개발 목표가 인류의 건강일까? 당장의 백신 경쟁에서 우선순위를 점해야 자본도 선점할 수 있다. 심지어 인류의 건강에 치명적인 문제점을 야기시킨다고 하더라도, 자본이 있으면 충분히 찍어 누를 수 있을 것이다. 즉, 당장 신체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만든다 하더라도, 코로나에 대항하는 항체만 만들 수 있다면 성공한 백신이 되는 것이다. 그 부작용이 생명을 앗아가는 것일 지라도.
어떤 이론도 믿을 수 없다
'부분 비만을 해결할 방법은 정말로 없나요?' 체육을 전공한 필자는 이러한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아왔다. 대답은 '당연히 해결할 수 있다.'이다. 하지만 포털 검색이나 다이어트와 건강 관련 도서 등을 보면 한결같이 '부분비만은 해결할 수 없다.'가 정답이 되어있다. 그것은 이미 몇몇 연구들에 의해서 그러한 결과물이 도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현장 경험을 통해 '부분비만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단지 논문을 쓰지 않았고, 심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 뿐이다. 잘 생각해 보라. 어떠한 실험의 가설이 틀렸고, 실험방법과 과정이 잘못되었다면 당연히 잘못된 실험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잘못된 결과물을 뒤집을 만한 연구결과물이 후속으로 나오지 않는 다면, 잘못된 결과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과학이라 부르기도 한다.
소화제를 달고 사는 와이프에게 사이다를 마셔 볼 것을 권했다. 탄산음료가 가진 트림을 끌어내는 힘이 순간적으로 식도나 위 입구에 걸린 음식물들의 순환을 돕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와 주변인들의 몸에도 수없이 임상을 시도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사이다를 마셔 본 와이프는 이후에 소화제를 끊을 수 있었다. 연구결과는 없지만 흡연자들, 특히 애연가들은 다 알 것이다. 정말 분노하거나 스트레스받을 때 한 모금의 담배가 마음을 다스리고, 나아가 가정을 지키고, 심지어 살인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사이다가 소화에 미치는 영향이나, 흡연이 분노와 스트레스를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전제를 가설로 하고, 논문을 쓴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시도할 가치, 즉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고 탄산음료나 담배는 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기호 품목이기 때문이다.(그러한 논문이 있을 수도 있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연구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확신한다.)
약과 병원을 무작정 믿는 사람들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들은 아마도 태어나면서부터 의사를 가장 먼저 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마치 미운 오리 새끼처럼 조금만 아파도 의사에 의존하게 된다. 우리나라처럼 건강보험 시스템이 잘 깆춰진 나라는 더더욱 의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몸이 아파 병원에 갔을 때 의사들의 진료 패턴을 보라. 한결같다. 짧은 진료와 더불어 약 처방이 우선된다. 즉 의사를 믿는 것은 약을 믿는 것이고, 그 약을 만드는 제약회사를 신봉하는 일이 될 것이다.
혈압이 높아서 혈압약을 먹으면, 혈압은 떨어지지만, 피를 보내기 위한 심장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 피가 온몸을 순환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이때 뇌로 가는 혈관으로 피가 가지 못 하면, 뇌에 경색이 올 수 있고, 심하면 뇌졸중이 될 수도 있다. 당이 높아져서 당뇨약을 먹으면 혈관에 당수치는 떨어질지 모르지만, 혈관을 청소하는 인슐린의 기능은 더더욱 떨어지게 되어, 결국 인위적으로 인슐린을 주사하며 살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다 손발이 썩어 들어가기도 한다. 물론 사망률도 높아진다. 우리나라에서 당뇨로 죽는 환자가 한 달에 700명대를 넘어선 지 오래다. 처음부터 의사가 적극적인 기능의학, 즉, 사람의 기능을 되돌려서 약 없이도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처방을 해 줄 수 있다면, 이러한 부작용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사들은 또 다른 선택지를 얘기하지 않는다. 이유는 진료해야 하는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환자가 많은 이유는 병원비가 싸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 19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근육 관리다
고혈압, 고지혈, 당뇨, 심장질환 등의 원인이 무엇인가? 이러한 대사질환들의 원인은 대부분 잘못된 라이프 스타일과 움직임의 부족으로 생기는 근육감소다. 평균적으로 30세를 기점으로 노화가 시작된다. 이때 노화의 원인이 되는 핵심 원인이 근육감소인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즉 근육 관리만 제대로 해 준다고 해도 노화는 늦출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회를 보라. 근육의 중요성을 요 근래 들어서야 알리기 시작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니 아직도 대부분의 의사들은 유산소 운동만을 권하고 약을 처방한다. 근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필자의 이전 글들에서 지겹게 다뤘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략하게만 요약해 다루려고 한다.
혈압이 높아지고, 당 수치가 높아졌다면, 근력운동을 시작하면 된다. 그러면 약을 먹지 않아도 되고, 부작용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뿐인가? 이전보다 훨씬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정신적인 건강은 덤으로 따라온다. 근육을 만드는 과정이 호흡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유산소 운동으로도 실시할 수 있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근육이 피를 끓어와 대사를 하기 때문에 몸의 순환 능력을 향상시킨다. 즉, 근육 관리를 통해 근육과 심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체 외모가 차츰 만들어지기 때문에, 지속할 수 있는 운동 동기를 만든다는 것이다. 꾸준히 약을 먹어 부작용을 만들고 병약한 신체와 더불어 늙어갈 것인가 아니면, 근육 관리하는 습관을 만들어 건강한 신체와 건전한 정신을 가지고 한 층 젊은 삶을 죽는 날까지 누릴 것인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시간이 없고, 돈이 들어가고, 힘이 들어서 못하겠다. 그러면 노화를 받아들이고 이 세상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대로 늙어가고 죽어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건강수명은, 이전 글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듯이, 64.9세 밖에 되지 않는다. 평균수명이 높은 것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이라는 현대판 고려장에 의해 버려져, 연명하는 삶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와 같은 감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긴장의 끈을 단단히 붙들어 매야하는 것은 덤이다. 우리나라 코로나 19 사망자의 97%가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60대 이상에서 나왔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60대 이상에서 근육 관리가 더욱 절실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코로나 19의 상황에서 그러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참으로 이상한 방역체계이고 이상한 언론이다. 오히려 그 연령대의 계층은 기존에 누리던 또래 집단과의 사교모임조차 허락되지 않아서, 더욱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며, 생의 끝으로 달려가고 있다.
무책임한 졸속 방역행정
기저질환만 없다면 코로나 19라는 감염병은 사실 아주 센 감기 정도라고 봐도 무방하다. 펜데믹 상황에서 언론의 기능이라는 것이 공포감 조장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증상 환자의 완치 사례는 인터뷰도 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생방송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거기에 정부는 초창기에 줌바댄스라는 실내체육시설에서 감염자가 나왔다는 이유로 모든 국민들에게서 근육을 관리할 수 있는 기회를 뺏어갔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라더니..... 심지어 그것을 집행하는 관료들은 따박따박 월급 받으면서, 힘없는 소상공인들은 무작정 집합 제한이나 금지를 통해 생계마저 위협하고 있다. 그것도 사유재산 침해라는 헌법을 위반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으면서 말이다. 상식이 있다면 생각해 보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이러한 불공정한 자본 강탈이 자행될 수 있는가. 코로나 19라는 펜데믹 상황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도시가 감염되었다면 도시 전체를 멈추게 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 누구 하나 억울함을 호소하지 못할 것이다. 언제까지 힘없는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K방역이라는 자화자찬을 늘어놓을 것인가.
적어도 이러한 중대 사태에 왜 사람들이 죽어가는지는 똑바로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 정부와 방역당국, 그리고 언론이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이 아닐까? 이들은 어느 누구도 코로나 19를 피하라고만 하지, 맞서 싸우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 몸에 있는 자율 면역 시스템이 이러한 감염병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도록, 면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탁상행정과 졸속행정만을 일삼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들은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정부 당국의 무분별한 졸속정책과 확진자 수라는 결과에만 매몰되고 있다. 공포에 질려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배달음식에 찌들어가고, 그로 인해 또다시 엄청난 기저질환에 노출이 되어, 오히려 더욱 코로나 19와 같은 감염병의 먹잇감이 되고 있는 것인지 조차 모른 채 말이다.
코로나 사망자는 연간 700명이 채 되지 않지만, 우리 사회에 여전히 하루에도 38명, 한 달에 1100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내려놓고 있고, 당뇨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한 달에 800여 명이 다다른다. 코로나 19를 생방송할 것이 아니라, 자살과 당뇨병으로 인한 사망자를 생중계 해 보라. 아무도 무작정 격리되려 하지 않을 것이고, 그 어느 누구도 배달음식을 맘 편하게 먹지는 못할 것이다. 코로나 19 사망자 대부분은 기저질환에 의한 사망이다. 즉, 기저질환을 막을 수 있는 삶을 살도록 만드는 것이 먼저다. 자율 면역을 강화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관리, 그것도 근육 관리가 먼저인 것이다.
지금이라도 체육을 장려하라
우리나라 체육의 역사도 파란만장하다. 군부정권 때는 3S 정책(Sex, Screen, Sports)을 통해 정권유지의 희생양으로 이용되었고, 김영삼 정부에서는 그나마 운동이 장려되었다. 그가 운동을 즐겨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고문으로 인해 다리를 절었던 김대중 정부에서부터는 체육이 좌천되었다. 어느새부턴가 체육부장관이 없어졌고, 지금은 문화체육부로 통합이 되어있다. 정치와 상관없이 체육은 말 그대로 몸을 기르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감염병 시대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이슈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권력만을 탐하는 정치가들과 배 나온 관료들이 몸을 기르는 것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다. 정말 우리의 건강한 삶의 근간이 되어야 할 체육이 말 그대로 무능한 정치관료들에 의해 혐오시설로 전락하고 말았다.
병원비가 비싼 미국의 경우, 근육 관리에 대한 커리큘럼이 잘 짜여 있다. 하지만 병원비가 싼 우리나라의 경우, 체육시간에도 국영수를 교육하며, 어렵게 만든 체육시간 조차도 공놀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타인인 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무작정 맡기고 의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된 것이다. 과연 우리의 의료 시스템이 선진 시스템일까? 왜 우리나라가 그 좋은 의료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살률과 당뇨 사망률 등이 OECD 국가에서 일등이 되었을까? 단언컨대,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은 선진 의료 시스템이 아니다. 혈압약을 드시는 나의 어머니에게 운동을 시작하고 약을 줄일 것을 권했지만, 약을 처방하는 의사가 약을 줄이면 죽는다고 펄펄 뛰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더 이상 설득이 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선진 의료 시스템을 배워야 한다
전화 한 통이면 타이어 펑크까지 때워주는 나라에서 살면서, 자동차 정비 능력을 습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누군지 잘 알지도 모르는 의사의 말 한마디에, 자신의 몸을 무작정 맡겨버리는 나라에서 살면서, 자신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실제로 병원비가 비싼 미국의 진료는 우리와 다르다. 적어도 약을 처방하기 이전에 운동과 식이요법을 먼저 얘기하고 약 없이도 몸을 원상태로 돌릴 수 있는 방법들을 꾸준히 설득하려 할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 이러한 의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딱 굶기 좋은 방식의 기능 의학이다. 우리나라에서 의사로 잘 먹고 잘 살려면, 없는 병도 만들어야 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수술도 해야 편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매뉴얼이 되어 누가 실험한지도 모르는, 과학이라는 포장을 한 화학 물질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포하여 자율면역이 아닌 타율면역을 강화시키고 있다. 결국은 약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병원에 가기를 싫어하는 나의 회원들
필자와 딱 6개월만 운동을 같이 하게 되면, 변화가 생긴다. 병원에 가지 않고, 약을 먹지 않으며, 하다 못해 파스도 더 이상 붙이지 않는다. 이렇게 얘기하면 사이비 교주 취급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온 매뉴얼과 다르기 때문이다. 아프면 병원에 가고, 의사의 처방대로 약을 지어먹으며, 그래도 나아지지 않으면 또 다른 병원을 간다. 모두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즉 병원 말고는 기댈 곳이 없다. 울며 겨자 먹기로 소개를 받아 찾아온 내 회원들은 거의 대부분 환자다. 노화로 인한 정형외과적 부상부터, 대사질환에 이르기까지, 나이와 상관없이 여러 가지 건강의 문제점을 안고 찾아온다. 그리고 경이롭게도 그 또는 그녀들은 가지고 있던 물리적 부상과 기저질환들이 개선이 되거나 완치가 된다. 필자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믿을 수 없는 일임을 안다. 한 가지만 기억하라. 우리가 늙는 이유는 원래 있었던 소중한 근육이 감소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물 안 개구리
요즘 우물 안 개구리라는 속담이 참 와 닿는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속담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내 삶에 적용을 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녔고 지금도 다닌다. 익숙하기 때문이고, 가지 않으면 벌 받을 것 같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이라는 프레임이 씌어져 있어서 좋았던 것도 많았다. 삐뚤어지지도 않았고, 선한 행동과 선한 말투를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나는 왜 주일마다 교회에 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을 본 적도 없고, 하나님의 음성도 들어본 적이 없다. 나 역시 교회라는 우물 안에만 있어서 교회를 다니지 않는 우물 밖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믿는 것이 과연 진실일까? 이런 생각 조차 못하고 당연히 가야하는 곳이었다. 즉 어느순간부터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는, 연속성의 우물 속에 갖힌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가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우물 안과 밖을 두루 알 필요는 있다는 얘기가 하고 싶은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매몰되다보면, 다름을 받아드리는 것이 그만큼 힘들지 않겠는가. 당신의 한번뿐인 삶이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도록 하루라도 빨리 근육 관리를 선택하라. 당신이 한 번도 고려해 보지 않았다면, 더더욱 병원 다니는 것을 잠시 보류하고, 좋은 지도자를 만나서 근육 관리를 시도하라. 다른 삶이 펼쳐질 것이다. 우물 안에서 살아온 지금까지의 인생과 당연했던 노화가 억울하고 후회가 될 것이다. 정부와 방역당국의 관료들 역시 마찬가지다. 감염병 자체에만 몰두하여 두려움을 말하기보다 국민들 스스로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장려해야 한다.즉 병을 피하는 것보다 병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방법을 얘기 할 때 이다. 그것이 체육이고, 그 핵심이 근육 관리다.
코로나 19로 인해 소상공인들의 삶이 파탄 나고 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부와 방역당국은 그들의 희생을 계속해서 강요하고 있다. 자영업을 하지 않는 대부분의 국민들도 역시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필자 역시 당해 보고 나서야, 참담함을 느꼈다.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다. 만약 이 위기가 끝이 난다면, 그것은 소상공인들의 희생 덕분이다. 그리고 전체 의료인이 아닌, 10%밖에 되지 않는 공공의료인들의 노고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