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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SR May 22. 2022

생생한 노래

 자살이 허기진 밤 #023


 언젠가 저녁, 길거리를 걸었다. 야근을 했었나? 술을 마셨나 모르겠다. 아니다 친구와 저녁을 먹었다. 회사 동료가 양도한 식당 예약권으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술은 둘이서 와인 한 병 정도, 취하려고 마신 술이 아니었기에 취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지하철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면서 멍 때렸다. 대중교통을 탈 때, 가끔씩 그렇지만 내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치게 된다. 그것도 한 정거장 정도로만. 급히 지하철에서 내려서 되돌아가는 지하철을 기다릴까, 아니면 걸어서 갈까 고민하다가 역에서 나오는 교통카드를 찍었다. 어차피 걸어서 2~30분이면 집에 갈 수 있으니까. 그게 운동도 되고 좋을 거다.


 시간은 10시 즈음이었다. 학원이 많았고 수업을 끝내고 나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사람이 많은 걸 싫어하는 나지만 다행이었던 것은 걸을 때 방해받는 걸 싫어하는데 내게 불편을 주지 못할 만큼 인도는 넓었다. 근처에 포장마차 같은 것들도, 버스 정류장과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걷기엔 괜찮을 정도로. 사람이 많은 길 한복판에서 라이브 음원을 크게, 아주 크게 틀어놓으면 내가 서 있는 곳이 순간 콘서트장인 것 같다. 내게 아무 의미 없는 존재인 지나쳐가는 사람들, 신호등 앞에서 멈춰서 무언갈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 같은 음악을 공유하는 듯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끼는 것처럼 느껴진다. 콘서트장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있던 사람과 같이. 우리는 하나의 음악을 듣고 가수를 보고 라이브 콘서트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스피커의 음악과 진동, 옆 사람들의 환호와 땀과 체액, 그리고 점차 올라가는 온도와 같은 것들을 공유하는 듯싶었다.


 나의 이어폰에서 나오는 노래는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였다. 왜 하필 이 노래였을까? 가끔 노래는 이런 점이 싫다. 노래와 관련된 걸 너무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 너는 이 노래를 들으면 너무 우울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싫다고 말했었다. 우리나라 인디의 센치한 음악을 좋아하면서 이 노래는 싫어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이 노래에 내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는 우울한 감정이 들면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 노래로 우울함을 막았지만, 나는 우울감을 느끼면 극복하는 게 아니라 그 파도에 몸을 맡기고 심해로 헤엄쳐 들어가는 사람이었다. 나는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노래들을 좋아했다. 무한도전에서였나 노홍철이 클럽에서 듣는 이 노래가 좋다고 춤을 추는 것을 보면 사람보다 느끼는 것이 다 다른 모양이었다. 너와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며 같은 감정과 감성을 느낀다는 것 하나는 좋았다.


 같은 노래 취향이었기에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많았고 들려줄 때마다 너가 좋은 노래라고 해주길 바랬다. 내가 너를 죽을 만큼 좋아하진 않았던 것은 맞는 거 같다. 30대의 연애란 보통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예전처럼 열정은 없었고, 연애보단 생활이 중요했다. 애인을 만나는 것과 만나지 않고 혼자 지내는 것, 이 두 가지를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대략적으로는 만나는 것이 조금 더 좋았던 것 같다. 나는 너가 좋았던 이유가 함께 있으면 누구보다 편했고, 나를 좋아해 주었고, 나를 이해해주었다. 하지만 나보다 애정이 많았기에 나의 이런 몹쓸 가라앉은 마음을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았다. 늘 좋은 인연을 나 스스로가 망치고 떠나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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