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허기진 밤 #028
개인적으로, 나는 나쁘기보다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 좋다. 나의 이상향일 뿐, 중요한 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보다는 방관자에 가깝다.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그렇게 인식되기 위해서는 표출할 용기가 필요하지만, 나는 그럴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마주할 타이밍을 내가 계속 피하고 있었을 뿐.
즐거운 회식이었다. 좋은 장소에서 다양한 고기를 굽고, 마시는. 우리는 답답한 사무실에서 벗어났다는 것에 잠시나마 행복을 느꼈다. 야외 술자리는 초여름 시원한 바람처럼 기분이 좋았다. 회식이기에 술이 빠질 수 없었다. 술은 유화제 같은 느낌이라 여느 회식이 그렇듯 사람들 간의 딱딱한 사이를 풀어줄 수 있는 재료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하면 화가 되는 법. 시간은 충분히 흘러 너무 취한 사람들은 하나 둘 사라졌지만, 그 경계에 있는 사람이 문제가 되었다. 그는 나보다 경력이 아득히 많은, 높은 사람이었다. 서로가 사무실에서 할 수 없었던, 재밌게 이야기하고 속마음을 털어놓는 시간을 가지고 있을 때, 가시 돋친 말을 내뱉더니 결국 그 이상의 선을 넘고 말았다. 모두가 눈빛이 심각하게 변할 행동을 하고 말았다. 다들 안다.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걸.
모두들 불쾌하게 한, 폭주하던 상사를 몸으로 말린 건 어린 친구였다. 많이 취하셨다고, 원하면 내가 한 잔 더 받겠다고 하면서 그 상사 옆에서 담당했다. 결국 그 사람 때문에 즐거웠단 자리가 파할 때까지, 책임지고 자리를 마무리시켰다. 나는 부끄러웠다. 나름 좋은 사람이라고 포장했던 내가 벗겨져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 나서지 못하고 외면하였으나, 그 친구는 직접 나섰다. 나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결국 내가 표방하고 있는 건 껍데기였다. 나는 나서서 행동한 그 친구에게 존경심이 들었다. 좋은 사람은 그 친구처럼 다른 사람들을 위해 먼저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 왜 이럴까? 말뿐이거나 상상으로밖에 알 수 없는 많은 걸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나. 나는 왜 그런 걸 보면서도 자신 있게 나서지 못했나. 무엇이 두려워서. 역시 나는 불의에 맞서지 못하고 순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이제 의심하지 않게 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화가 났다. 이런 상황이 생기지 않았다면 나는 나의 도덕성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을 텐데. 어차피 이렇게 말해봤자 다가오는 건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이었지만.
나의 상황이 늘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 아니며,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부딪히며 생기는 파장은 점점 나를 벗겨간다. 나는 늘 나를 가리고, 포장하며 살았던 사람이라 벗기는 상황에서 나는 한없이 무력하고, 당황하고, 비겁해진다. 좋은 게 좋은 거고, 그게 아니라면 회피하는 나는, 마주할 수밖에 없는 불편한 상황에서 늘 당황하고 생각과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언제든 상황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 더 좋은, 발전한, 완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부딪혀야 할 때는 부딪혀야 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는지도 모른다. 좋게 보이는 염증일 수도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