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의 흔한 군필 1종 보통

게임과 페이스북을 지우기 위해 했던 단상

by 철수철수

일상 1


4학년을 앞둔 1월

일정 봉사시간을 채우면 학점으로 인정해준다기에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졸업을 위한 학점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관심 분야와 관련된 봉사기록은 후일 '취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그런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자연스럽게 봉사활동 중간중간 멍 때릴 시간이 날 때마다 내가 이 활동을 왜 하는지, 앞으로 뭘 할 건지, 취업을(할 수 있는지 여부를 떠나서...)하긴 할 건지 따위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때 마음 깊숙한 곳에서 어떤 질문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피식 웃더니 내게 물었다.


취업? 그동안 그런 고민 없이 막 살아왔잖아?










왜 그래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스물여섯.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는 생각은 들지만 마냥 어리다고 볼 수는 없을 것만 같은 나이가 됐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이루었나. 그저 하루하루 살아온 것 말고는...


우울한 생각들이 내게 보통 그래 왔듯이 생각은 순식간에 나의 몸 전체를 뒤덮었다.

무력감.


그동안 나에 대해 탐탁지 않게 여기던 사람이라면 손뼉을 탁 치며


'그것 봐라'

'그럼 그렇지'

'내가 뭐랬어'

'미리미리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거라고 했지?'라는 말로


그의 승리이자 나의 패배를 확인시켜주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다.










반박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나는 정말 그렇게 살아왔다...

토익, 자격증, 인턴, 해외 경험, 외국어, 대외활동 전무(全無).

재력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나마 경력에 남길 부푼 기대를 안고 잠시 발 붙였던 큰 회사의 모 부서는 부서가 통째로 없어져 경력으로 쓰기도 애매하고, 한 거라곤 학교 다닌 것뿐인데 학점도 3점 겨우 턱걸이...


경력은 군필에 자격증은 운전면허.


요즘엔 방학이라고 느지막이 일어나 봉사활동 몇 시간.

사진 찔끔. 포토샵 찔끔. 그걸로 '아 그래도 뭔가 했다'라고 자위하며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며 낄낄대다 잠드는 하루.


그동안 그런 삶에 익숙했고 또 오히려 행복했는데, 한편으론 빡빡한 세태를 (감히) 비웃기까지 하며 여유만만한 내 삶에 자부심까지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 순간에는 그런 내 모습이 한없이 한심해 보였다.


(그냥 평소대로 아무 생각하지 말 걸 그랬어 그럼 이런 고민도 없었을 텐데...)









긴.jpg


그래 이건 아니지 싶었지


내가 왜 이런 고민을 시작한 거지?


나 잘 살아왔는데...... 곰곰이 생각......


...


그래 요즘 잉여력 폭발이었던 건 사실이다. 눈 뜨자마자 손에 쥔 파란 화면에선 행복한 모습의 지인들 그리고 그들을 타고 타고 들어가 괜히 알지도 못하는 사람 기웃거리고 육성 게임 들어가서 수확물을 걷고 군대 양성해서 다른 플레이어의 나라 약탈하고..


정말 게임이라면, 그 덧없는 시간들에 치를 떨던 나였는데... 어느 순간 게임 세상이 아니면 '보상' 이란 걸 받을 곳이 없어진 모양이다. 그동안 내가 비난해 마지않았던 내 주변 게이머분들께 고개 숙여 사과하고 싶어 지는 순간이었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모든 주절주절 생각들은 이 결심과 행동을 위해 시작된 생각들 일지도 모르겠다.


'자 지금 이 순간 나는 게임과 페이스북을 지운다.'


비약적 전개지만 지체 없이 삭제 버튼을 눌렀다.

이 행동이 나의 일상을 더 의미 있게 만든다거나 미래나 취업준비를 위한 시간으로 대체된다거나 하는

그런 보장은 전혀 없다. 자신도 없었다.


어쩌면 내일도 늦잠을 자고, 영화나 예능을 보고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오늘과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내가 비웃었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부러워했던 사람들처럼 스펙을 차곡차곡 쌓으며 살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나는 앱 삭제 버튼을 눌렀다.


순간 눈 앞이 핑 돌았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것들에 빠지지 않았던 과거의 나를 그리워했던 것 인지

아니면 단순히 일상에 변화가 필요했던 것 인지.



어찌 됐건 나는 이제 게임을 하지 않고, 페이스북도 하지 않는다.



2016년 1월 어느 날. 어린이도서관에서 게임하다가 막연한 미래 앞에서...





글/ 철수철수 (CSCS)

사진/ 철수철수 (CSCS)


게임이나 SNS가 유해하다거나 쓸모없는 것이라던가 하는 얘긴 절대!!! 절대!!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길ㅠㅠ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나눈 얘기들을 각색해 본 일상 글입니다. 어쩌면 제 얘기 일수도 있고요.

그 정도로 얘기를 나누는 동안 공감했던 이야기였습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과 나의 부족함을 되뇌게 하는 '지금'이라는 환경과 시간 속에서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내가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나?'라는 질문을 계속 스스로에게 하게 되고

그 답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여정 중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겨우 삶의 한 부분, 작은 변화일지 모르지만

모든 큰 일은 작은 변화에서 시작돼 왔다고 믿습니다.



일상 수필 그 첫 번째..


고민고민하고 브런치 주변을 서성서성이다 글을 써봅니다.

망설였던 이유는

딱히 글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지런한 편도 아니라

과연 이것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고민의 끈을 끊은 것은 기록의 힘을 보고 나서부터입니다.

얼마 전까지 팟캐스트를 진행했었습니다. 많이 부족했고

함께해준 이들과의 논의 끝에 10화를 끝으로 잠정적 종방을 결론지었습니다.


그리고 한두 달 후 혼자만의 추억으로 남았을 거라 생각하며 다시 그곳에 들어갔을 때 정말 놀랍게도 꾸준히 들어주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정말 감사했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했습니다.

기록의 힘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습니다. 작가는 비록 잊었을지라도 누군가는 그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런 힘을 가진건 기록뿐인 거 같습니다.


그 누군가는 다른 사람이거나 다른 시간의 저 자신이 될지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춥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