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어메이징 그레이스>
세상을 이분하는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것이다. 결코 명확할 수 없는 기준선 하나를 만들고, 무언가를 참과 거짓의 영역으로 성글게 나눈 뒤, 그것에 넘어설 수 없는 등급을 매긴다. 등급은 곧 가치로 여겨지고, 가치에는 그 크기에 알맞은 가격이 부여된다. 자본주의의 논리 앞에서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처럼 간단해진다.
끝없이 단순해져만 가는 삶에 깊어질 여지를 남기기 위한 인간의 염원을 담은 활동을 우리는 예술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예술을 하고, 즐기고, 느끼면서 삶의 한 단면이 풍성해지길 기원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명료하고 힘이 세서 예술의 영역까지도 쉽게 손을 뻗친다. 어떤 예술을 목격할 때 그것의 진위를 따지며, 소유를 갈망하도록 훈련된 우리의 감상법은 자본주의의 산물일 것.
연극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본다.
편안하면서 세련된 어떤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미술 작품이 소개된다. 글램핑 경매라고 불리는, 특정한 상위 계층을 위한 시간과 공간에서 그레이스(서지유)는 유려한 언어로 구매자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너무나 능숙하게, 예술품처럼 화려하게, 그러나 그것이 너무 억지스럽지 않을 정도로 기품 있게. 감상하고 있는 작품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는 욕망의 세계로 인도하는 여신처럼 보인다. 그녀의 언어를 통해 예술에 가치가 부여되고, 그 가치에 가격이 뒤따른다. 10억, 20억, 40억, 욕망은 예술을 타고 빠르게 몸집을 불린다.
그레이스는 미술품 경매를 열고 위작을 판매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다. 그녀의 사건을 맡은 담당 검사(김동현)는 그녀를 설득한다. 그녀가 스스로 진실을 밝히고 혐의를 인정하면 모든 게 편해지리라는 것. 그러나 그레이스는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단언할 뿐이다. 이것은 애써 혐의를 부정하는 범죄자의 흔한 반응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정말 죄가 없다고 여기는 진실한 믿음에 가깝다. 그레이스의 믿음은 두텁고, 검사에게는 그 믿음을 깰 증거가 없으므로, 이들의 공방은 점차 법의 논리를 벗어나 처절해진다.
사기 혐의를 부정하는 그레이스의 논리는 혼란스럽고 동시에 매력적이다. 가짜는 가짜라는 사실을 결코 증명할 수 없다는 것. 위대한 탄생의 과정에서 고뇌와 주저함의 흔적이 발견되는, 그러므로 태생적으로 완벽할 수 없는 ‘진짜’는 자신이 진짜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지만, 어떤 ‘진짜’의 존재를 빌어 태어난 ‘가짜’는 그 진짜에 대해서 매끈하고 완벽하게 완성될 수 있다는 것. 예술, 특히 현대예술의 세계에서 진짜와 가짜, 원작과 위작의 경계는 점차 무의미해진다.
예술의 세계는 세상의 모든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자본의 세계는 언제나 경계를 공고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끝없이 퇴보한다. 자본의 세계에서 예술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절대적 기준은 진위 여부가 아니라 욕망이다. 그레이스는 자본주의의 욕망을 부풀려서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덮어버린다. 자본주의의 순응자들은 그 안에서 과장된 만족감을 느끼며 기꺼이 가격을 지불한다. 그레이스의 사기극은 욕망으로 예술의 본질마저 흐리는 자본주의 체계에 대한 완벽한 이용인 동시에, 욕망의 가격마저 판단하려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모호함과 오만함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예술품을 소유하는 행위 또한 예술이라는 자본의 논리에 세뇌되어 위작을 구매하고도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있고, 그레이스를 자본주의 체계에 ‘똥침’을 찌르는 영웅 잔 다르크처럼 추앙하며 돕기를 원하는 변호사(신현종)가 있다. 각각 자본주의에 대한 순응과 저항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진영 모두, 어떤 방향성에서건, 무죄를 주장하는 그레이스의 욕망의 논리에 힘을 싣는다. 그러나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뭉개는 논리를 깨고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정의의 의무일 것. 그레이스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검사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몰두한다.
진짜와 가짜의 모호한 경계에서 그레이스의 죄를 증명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 검사는 최후의 문턱에서 좌절하고 만다. 그레이스라는 인물 자체가 허구의 존재였던 것. 그레이스라는 인물은 그 자체가 진위를 알 수 없는 하나의 작품이 되어 모호함으로 가득한 세상에 질문을 던진다. ‘진짜일까요. 가짜일까요.’ 그레이스를 향한 검사의 씁쓸한 웃음은 자신 역시 정의라고 모호하게 포장된 조직의 세계에서 던져진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허탈한 인정처럼 느껴진다. 연극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욕망의 세계 속에 놓인 현대예술의 저항과 같다. 오직 욕망만이 전부인 간단한 세계 속에서, 삶의 깊이를 위해 저항하고 분투하다가, 마침내 굴복해 가격이 매겨지고 마는. 그러나 그 시도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충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