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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억제의 굴레

by 구르미


젊은 시절, 친구와 함께 놀이공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날은 평소보다 사람이 적었고, 덕분에 인기 있는 놀이기구들도 줄을 길게 서지 않고 탈 수 있었다. 스릴 넘치는 롤러코스터를 몇 번이나 연달아 타고 나니, 내 안에 묘한 경쟁심이 올라왔다. '오늘은 이곳에서 가장 무서운 놀이기구를 정복하겠어!'라는 결심이 들었다.

문제는 내가 그런 놀이기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롤러코스터야 눈을 감고 어떻게든 참아낼 수 있지만, 높이 올라가 회전하는 거대한 관람차 같은 건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 그런데 친구가 그런 나의 결심을 눈치챘는지, 농담처럼 말했다.


“네가 저걸 탈 수 있으면 내가 저녁 살게.”


친구가 가리킨 곳에는 줄 하나로만 매달려 하늘로 솟구치는 번지점프 타워가 있었다.

순간, 겉으로는 웃으며 “이 정도야 식은죽 먹기지!”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후회가 몰려왔다. 평소 겸손하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던 내가 이런 상황에서 물러나면 안 된다는 묘한 자존심까지 발동했던 것이다.

나는 줄을 서 있었고, 하네스를 착용한 채로 꼭대기에 올라가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나의 아름다운 겸손은 그 순간 증발했고, 심장은 두 배로 뛰고 있었다.

결국 나는 뛰지 못했다. 아래로 뛰어내리라는 안내원의 구호를 세 번 들은 뒤,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아요”라는 변명을 남기고 내려왔다. 친구는 배꼽을 잡고 웃었고, 나 역시 겁많은 나 자신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웃어 넘기고 말았다.


겸손은 무언가를 억제하기보다, 스스로를 인정하는 데 있다는 걸 그 순간 알았다. 나는 결코 자신이 있어서 줄을 선 게 아니라, 친구에게 허세를 부리려 한 것뿐이었다.

겸손이라는 덕목을 오해하고 그것을 자기 억제의 굴레로 여긴다면, 언젠가 그 굴레가 스스로를 더 초라하게 만들지 모른다. 겸손은 내가 가진 것 이상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선택이며, 내 약점을 솔직히 드러낼 용기와 함께한다.


그날 이후로 나는 겸손을 ‘높이 뛰기’가 아니라 ‘부드럽게 내려놓기’로 생각하기로 했다.

자기 억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인정하며, 조금씩 행동의 자유를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도울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1. 자기 탐구와 수용

자기 억제는 종종 "나는 그래야만 해"라는 강박적인 생각에서 비롯된다.

이런 생각이 떠오를 때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가 왜 이걸 해야 한다고 느끼지?

혹시 남의 시선이나 기대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다 보면, 자신의 진짜 욕구와 타인의 기대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2. 작은 모험으로 시작하기

자기 억제에서 벗어나는 건 큰 도약이 아니라 작은 변화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평소 말하기를 두려워했다면 한두 마디 의견을 말하는 연습부터 해 보자.

억제를 깨뜨리는 경험은 작은 성공감을 주고, 점점 더 큰 변화를 시도할 용기를 준다.


3.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믿음 가지기

억제를 강요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실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고, 그것이 삶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 억제의 굴레를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


4. 재미와 열정을 추구하기

억제가 심할수록, 우리는 자주 재미를 잃는다.

어렸을 때는 즐겁게 했지만 어른이 되며 멀어진 활동이 있는가?

춤을 추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여행을 떠나는 작은 행동들이 억제의 벽을 허무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 재미와 열정을 추구하자.


5. 건강한 도전 받아들이기

안 될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 때일수록 일부러 그 상황에 뛰어드는 용기를 가져보자.

예를 들어, 스피치가 두렵다면 작은 모임에서 발표하기, 어려운 관계라면 솔직히 대화 시도하기 등 자신을 시험할 기회를 만들어 보는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6. 억제를 벗어난 사람들과 교류하기

자신을 억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면, 억제를 벗어나는 용기를 배울 수 있다. 나와 달라서, 나와 맞지 않아서...를 이유로 그들을 멀리한다면 평생 자기 억압에서 풀려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사람들을 보면서 ‘이렇게 살아도 괜찮구나’라는 신뢰감을 얻을 수 있으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는것도 괜찮을 것 같다.


7. 자신에게 친절하기

스스로를 비난하지 말자.

모든 변화는 시간이 필요하며, 작은 발전부터 칭찬하고 자신을 격려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억제의 굴레를 벗어나는 건 완벽한 해방을 목표로 하기보다, 스스로에게 조금 더 자유롭고 솔직해지는 삶을 사는 방향으로 가는 과정이다.

억제 대신 선택을, 두려움 대신 호기심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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