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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Jul 23. 2023

일본 출장기 EP.3(FIN)

비로소 온전한 나만의 시간 & 그 안에서 본 사람들

나는 도쿄 신주쿠의 거대함 속에서 압도감을 느끼며 헤매고 있었다. 


마치 영상에서 줌인 효과를 준 것과도 같이 빨려 들어갔다가 순식간에 지나간 요코하마에서의 일주일이었다. 한 주가 거의 끝 나갈 즈음인 금요일 점심을 일본 사무실 직원 분들과 함께 하면서 "주말에 도쿄와 주변을 좀 둘러볼 계획이니?"라는 질문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이 시간이 막바지에 다다랐음을 인지했다.


애당초에 '여행'이 아닌 '업무'로 머릿속에 인지하고 떠나온 길이었기에, 본래도 일본 여행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거의 없었던 나에게는 토요일 밤 비행기까지 겨우 반나절 가까이 주어진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에 휩싸였다. 자로 잰 듯이 정확하게 15분 타이머를 맞춰두고 주어진 식재료를 요리해야 하는 경연장의 요리사들이 마치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함께 스친다.



요코하마에서 떠나는 날의 아침. 숙소에서 볕이 정말 잘 들던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을 맞으며 양껏 늦잠을 잤다. 시내 근교의 산케이엔이라는 정원을 아침 일찍 거닐어볼까 생각했었지만, 아침 7시쯤 잠깐 눈을 떴다가 이내 단념해 버렸다. 이곳에서 머무는 기간 내내 직장인 루틴을 그대로 지냈는데, 하루쯤은 이래도 괜찮다고, 나의 선택이라며 다시 눈을 감았다. 햇살이 밝고 바깥의 사람들과 새들이 우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오는 듯했지만, 그 뒤부터 급격하게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하는 그런 빠르기가 아닌 계속 느린 박자를 유지할 수 있었다. 

 


느린 박자를 유지하며 기분 좋은 마음으로 요코하마를 떠나오기 전에 요코하마역 부근에서 옌을 만날 수 있었다. 꽤나 오랜 세월을 안면만 알고 있고 특별히 연락을 주고받지도, 직접적인 교류는 더더욱 하지 않던 사이인 우리였지만 막상 일본에서 긴 세월 살고 있으려니 이 친구도 사람이 많이 고팠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내가 일본 출장을 자신의 거처 부근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소셜네트워크에 올리자마자 바로 연락이 오는 것을 보며 의외의 감정이 함께 뒤섞여 머릿속을 떠나녔다. 그리고 삶에서 마주하는 이런 예기치 못한 순간들 중 하나인 지금의 이 만남에 감사를 표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에는 실없는 소리나 하던 즐거운 대학생 무리 틈바구니에서 얼굴 보던 사이었는데, 그날 우리의 대화 주제는 꽤나 복합적이었다. 서로가 가고 있는 길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 하고 있는 각자의 업무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의 생각하는 미래 계획, 그 속에서 얽히고설키는 사람들과의 이야기 등 다양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또 이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곱씹어 보며 한국에 이 친구가 돌아올 때는 내가 한번 대접해야겠다는 다짐도 마음속에 남겼다.


요코하마에서 식사와 차를 하고, 자잘한 골목들을 걸으며 우리의 이야기들로 채웠다. 그 이야기들은 후에 어떤 결말에 닿을까.

옌과 작별하고, 어렵사리 요코하마에게 작별한 나는 어느덧 신주쿠역에 곧 내린다는 지하철 안내방송을 듣고 있었다. 


이미 많은 인파를 머금고 있었던 지하철은 마치 쏟아내버리기라도 하듯 많은 사람들을 잠자코 내보낸다. 함께 휩쓸려 나와 신주쿠에서 한동안 헤매며 걷던 나는 도쿄라는 도시는 너무나도 거대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서울은 그래도 발 디딜 틈 정도는 있는 도시인데, 도쿄 신주쿠는 정말 조금이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곧바로 옆사람과 스치거나 부딪힐 것만 같았다. 안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도쿄가 아닌 소매치기나, 위험 요소가 있는 도시였다면 아마 벌벌 떨면서 다녔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바쁘고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제각각의 리듬 속에 분주함에도 그 속의 묘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균형과 질서가 있었다. 그 박자에 맞춰 3월 일본의 딱 적당한 날씨는 분주한 거리 위에 내리 깔리며 분위기를 한층 더했다. 그렇게 신주쿠의 거대함과 압도당함으로부터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나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골목골목을 누빈다.


신주쿠에 압도 당한 나는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여행의 마지막 순간에 굳이 딱 이곳 신주쿠를 집어서 온 이유가 있었다. 이번 일본 출장에 특별히 아무 욕심이 없었지만, 이 출장 기간 동안 남는 시간이 있을 때 정확하게 한 가지만 집요하게 찾아다녔었는데, 그것은 이안반사식의 120 중형 필름 카메라였다. 계기 또한 단 하나의 물건을 쫓는다는 것만큼이나 단순했는데, 지난 생일 때 탁 군이 내게 필름을 생일 선물로 사준다고 했다가 135 필름이 아닌 120 필름을 실수로 다섯 롤 선물해 준 것이 그 이유였다. 나는 그 필름을 어떻게든 쓰고 싶었어서 120 중형 필름 카메라를 찾아다녔고, 결국 주객이 완벽하게 전도된 것이다. 


행선지는 일찌감치 찾아두었던, 어느 골목에 위치한 꽤나 커 보이는 규모의 중고 필름카메라 상점이었다. 가게 소개 문구를 지도에서 살짝 읽었었는데, 연세 지긋하신 노인장 두 분께서 운영하시는 창고 같은 상점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지하에 위치한 이 상점 입구로 내려가니 오래된 카메라들의 기름칠과 가죽 그립부 등으로부터 나는 시큼하고 퀴퀴한 냄새들로 가득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내 입구로 들어서니, 진열장은 정말 단 한 칸의 빈틈도 없이 온통 카메라들로 가득하다. 

여기는 분명 천국일 거야


짧고 짧은 일본어로는 내가 묻고 싶은 모든 것을 전달할 길이 없어 번역기로 내가 찾는 조건들을 어렵사리 노인장께 여쭈었더니, 거침없이 손가락들로 진열장 칸들을 짚어나가며 2개를 골라주셨다. 그렇게 두 개 중 하나를 골라 내 손에 넣었다. 알펜플렉스라는 카메라인데, 슬프게도 한국에 와서 한롤을 찍어보니 내부 상태가 썩 좋지 않아 결국 충무로에 수리 센터를 한 번 더 다녀왔어야 했다. 결국 희망한 예산에서는 오버되어 버린 셈이다. 


그럼에도 가게의 노인장 두 분께서 말도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신나서 카메라를 설명해 주시던 모습과, 그 와중 내 목에 걸려 있던 라이카 M3와 리지드 조합을 보고서는 카메라 좋다고 엄지 척을 해주시던 모습까지 그 연세에 이르기까지도 무언가를 순수히 좋아할 수 있는 그 마음과 열망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 바르고 밝은 인사를 건네드리며 가게를 나왔다. 



마지막으로 일본 출장에서 '사람'이라는 키워드로 돌아본 하루에서 반드시 탁을 언급하며 글을 마무리 지어야만 하겠다. 공항에 매우 늦은 심야에 내려 집으로 가는 버스가 모조리 끊겨버린 나를 위해 미리 차로 픽업을 나와준 탁이 이 여정의 진정한 마지막을 장식해 주었다. 그를 위해 면세점에서 산 술을 한병 건네며 놀라우리만큼 빠른 속도로 지나온 나의 첫 일본행에게도 작별 인사를 건네며 우리는 인천공항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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