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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Mar 14. 2024

[ICELAND] 발목을 붙잡던 것들 (EP.3)

간절함의 응답은 그렇게 쉽게 만날 수 없었다

자동차 내비에 목적지를 그로타 등대로 찍었다.

레이캬비크 시내에는 큰 호수가 있다. 물론 혹독한 겨울은 호수마저 덮어버렸다.
2022년 12월 18일 저녁, 레이캬비크


오랜만에 레이캬비크 시내를 둘러보고, 꽝꽝 얼어버린 레이캬비크 시청 인근 호숫가에서 해가 떨어지는 걸 느긋한 마음으로 보고 있던 내가 문득 생각한 것은 이곳에 오게 된 이유였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오로라 예보 앱이 있는데, 그날의 오로라 지수(높을수록 오로라 활동이 강력하다고 한다)와 내가 있는 지역에서 볼 수 있는 확률을 볼 수 있다. 물론 그 모든 수치를 떠나서 운이 나쁘면 보지 못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우리가 게임을 하다 보면 '운빨'이라고 자조 섞인 말을 내뱉을 때가 있는데 정확하게 이런 상황이었다.


적어도 그날의 오로라 예보가 알려주는 수치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레이캬비크 근처에 인공 불빛이 없고 인적이 드문 곳을 찾는 것이 문제였다. 날씨가 나빴던 탓에 인근 지역은 통제된 곳이 많고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곳이 대다수였다. 혹은 너무 먼 곳까지 운전해서 아예 다른 도시로 가게 될 수도 있었다. 


지난날의 수많은 사진들을 찍고 다닌 경험을 되짚어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기본적으로 별과 같이 빛의 방해가 없어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은 많은 인파와, 인공조명이 없는 곳을 가야 했고, 그러다 보니 레이캬비크 인근에서 유력한 장소 한 곳이 바로 그로타 등대였다. 시내 중심가와 거리가 멀지 않았지만 레이캬비크는 서울이 아니다. 즉 도시가 잠들면 깨어 있는 불빛도 많지 않은 도시였다. 


2주 동안 숱하게 나를 울리고 웃게 했던 오로라 예보


그로타 등대에 도착했을 때는 해는 이미 지평선 뒤에 사라졌고, 마지막 여명이 안간힘을 다해 아스라이 빛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낭만을 쫓아서 그로타 등대까지 저녁 시간에 도달해 냈지만, 웃기게도 아이슬란드의 기름값은 정말로 살인적이었던지라 (한국의 거의 2배였다) 시동을 계속 켜고 있으면 기름 때문에 추워도 그냥 일단 시동을 끄고 버틸까에 대한 너무나도 현실적인 생각을 계속 반복하며 첫 30분을 정차하며 그대로 흘려보냈다.


밖에서 부는 바람 소리가 정말이지 사납게 비명을 지른다고 생각될 무렵쯤에 차 문을 열고 잠시 나가 보았다. 세상의 끝에 가까운 곳까지 와서 보는 석양은 우리나라에서 정말 운이 잘 따라줘야만 볼 수 있는 시린 푸른빛과 타오르는 태양빛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빛깔이었다. 물론 한낮인 시간대에도 이런 하늘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사실도 늘 인지하고 있어야만 했다. 해가 떠 있어도 완전히 밝을 수 없었고, 반대로 밤이 왔다고 해서 낮과 아주 크게 다를 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곱씹게 되었다.


그로타 등대에서 첫 일몰을 맞이 했다.
이윽고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그로타 등대 위로 별들이 모두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정말이지, 너무나도 춥다. 그리고 오로라는 도저히 나타날 것이라 기대조차 못하게 하늘은 너무나도 깊은 푸른 빛깔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 멀리 등대까지 한번 다녀와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 추위 정말 장난 아니라는 생각에 다시 발걸음이 제자리에 묶이게 된다. 그렇게 매 10분을 시동을 켜고 몸을 녹였다가, 또 시동을 끄고 다시 버텨보고를 반복하다가 어느덧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그로타 등대 위로 별들의 향연이 펼쳐지게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오로라는 보이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정말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어가야만 볼 수 있는 쏟아질 듯한 별이 이곳에서는 이렇게도 잘 보이는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넋을 잃고 별들을 있는 그대로 즐겼다. 물론 이 글을 쓰며 같이 첨부한 이 사진 딱 한 장은 찍었다. '이 정도 사진이야 딱 한 장만 찍어도 제대로 담아낼 수 있지'라는 약간의 우쭐하고 오만한 생각까지 곁들이며 셔터를 눌렀다. 머나먼 옛날에는 정말 이 등대가 모든 어업과 모험을 하는 이들을 지금의 이 별빛들과 함께 안도의 감정으로 인도했을 것이다. 여행의 첫 순간에 이 불빛을 마주하며 나의 링로드 역시 잘 이끌어달라고 잠시 빌었다. 


이후에 장소를 옮겼던 2차전. 여기서도 별 구경만 실컷 했다.


그리고, 첫날부터 오로라를 잡겠다고 기세 등등 했던 나는 대차게 실패하고 말았다. 그로타 등대에서 결국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와 인근의 인적이 하나도 없는 공원으로 다시 나갔지만, 이곳에서도 별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잘 보였지만, 오로라는 보이지 않았다. 첫날이고 '앞으로 기회가 더 많겠지' 라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말 호사스럽기 그지없던 생각을 앞세우며 이 날의 나는 일정을 정리하고 숙소에서 여독을 풀었다. 돌이켜 여행을 되짚어 보는 이 시점에서는 모든 게 아쉽게 남는다. 물론 그 시점에선 이 것이 최선이었을 테다.




2022년 12월 19일 아침, 레이캬비크


다음 날 아침, 숙소에서 비교적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혼자서 쓰기에는 지나치게 넓은 공간에 나 혼자와 놀라우리만치 적막과 어두움만 가득한 공간에서 잠을 쫓아냈다. 하루하루의 일정이 불확실함이라는 안갯속에 있었기 때문에 일어나자마자 아이슬란드 도로통제 상황 안내 어플을 점검했다. 그런데 세상에, 레이캬비크 주변이 완벽하게 빨간색으로 표시, 즉 통제 중이었다. 쉽게 말해, 난 레이캬비크에 완벽하게 갇혀버린 것이다.


본래 이 날의 일정은 레이캬비크 인근의 골든서클 지역을 둘러볼 참이었다. 레이캬비크에서 비교적 가까운 지역에는 싱벨리어 국립공원 일대가 있는데, 이곳에 있는 국립공원 지역과, 게이샤르 간헐천, 그리고 굴포스 폭포까지 모두 엮어서 '골든서클'이라는 통칭으로 부른다. 지난날 처음 아이슬란드에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갔던 행선지여서 절대 잊을 수 없는 곳이었다. 


사실 난 MBTI J형 인간이었지만, 여행지에서 계획이 틀어지는 상황에 제법 익숙했다. 지난날 친구와 섬 여행을 다니면서도 배편이 악천후로 끊기거나, 우천으로 모든 야외 계획이 취소되거나 하는 상황들을 숱하게 마주하며 나름의 단련이 된 덕분이었다. 그렇지만, 이곳까지 와서도 이런 상황은 좀 가혹하지 않나 하며 혼자 읊조렸다. 


본래 나의 링로드 계획은 레이캬비크에서 동쪽으로 출발하며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도로 상황을 보아하니 레이캬비크 인근 서북쪽까지는 일부 구간이 통행이 가능한 것으로 표시 중이었다. 본래 계획대로면 레이캬비크로 귀향하는 길이 될 예정인 그 길을 일부 미리 구경하러 나가 보기로 했다. 별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으니까, 망설임 없이 나가보기로 했다.


앞을 가리는 안개 같은 저 것은 사실 강풍에 쌓인 눈이 흩날리고 있는 모습이다. 


2022년 12월 19일 오후, 레이캬비크 서북쪽 외곽 / 보르가네스 인근


레이캬비크에서 서북쪽으로 떠나면, 가장 인근에 만날 수 있는 도시는 보르가네스라는 도시이다. 운이 좋으면 보르가네스까지는 보고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차를 몰던 찰나, 강풍에 차가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글에 과장을 너무 섞은 거 아니야?' 할 수 있겠지만, 아이슬란드에서 강풍에 차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이야기는 놀랍게도 단 하나의 거짓 없는 사실이다. 또한 쌓인 눈이 강풍에 흩날리며 수시로 시야를 방해하는데, 이게 심할 경우 수 미터 밖에까지도 보지 못할 때가 있곤 했다. 만에 하나라도 흩날리는 눈보라가 심해져서 시야를 가려 길 밖으로 벗어나 눈밭에 차가 빠지거나, 앞 뒤에 있는 차와 충돌이라도 한다면 정말이지 아찔 했다.


아, 사진이라는 기록 수단에 유일하게 아쉬움이 있다면, 아마 소리와 공기를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그 비싼 라이카라는 브랜드에게만 주어지는 유일한 수식어가 '공기까지 찍는다'라는 허풍 가득한 말일까. 하지만 기록에는 없어도 내 머릿속에는, 앞으로의 여정에서도 수 없이 들어야 했던 끝없이 외치던 바람의 굉음, 매섭게 날아드는 눈보라가 뿌리는 눈앞이 하얘지는 시야와 강풍에 들썩이던 자동차 핸들이 이미 선명하게 각인되어 버리고 있었다.


바람이 그친 찰나, 잠시 차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본다.


다만, 아이슬란드에서는 이런 격언이 있다고 했다. "지금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 30분만 기다려라."라고 말이다. 그만큼 아이슬란드의 날씨는 매 순간순간을 알 수 없었고, 변화무쌍했다. 눈보라와 강풍이 일시적으로 그친 순간 잠시 차를 세우고 서부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저 멀리 보이는 피요르드들을 구경한다. 너무나도 치명적이고 위험하지만, 그 모든 걸 감수할 만큼 이 모험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링로드를 출발하지도 못했고, 다음 날의 내 운명도 알 수 없는데도 그냥 잠시 바람 그친 이 순간이 너무 황홀했다.


변화무쌍한 날씨에 걸맞게 문득 나의 황홀함은 이내 걱정과 한탄으로 같이 바뀐다. 전날에는 오로라도 못 만나고, 되려 이제 레이캬비크에 갇히게 되었구나라며 말이다. 거대한 대자연이 가진 압도적인 힘 앞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이 그저 무력했다. 역시 그 긴 시간의 간절함을 갖고 충분히 준비를 하고 떠나온 여정이었지만, 그럼에도 늘 계획은 100% 이행되지 않았고 내 예상을 벗어나는 일은 늘 존재했다. 또한, 간절함의 마음은 그렇게 쉽게 내가 꿈꿔오던 존재에 도달하지는 않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눈을 뒤집어 쓴채 해안가로 나가는 염소들이 귀여웠다.


한창 생각에 잠겨 주변을 산책할 즈음에 다시 강풍과 눈보라가 흩날리기 시작하였고, 이전보다 훨씬 거세졌기 때문에 얼른 차로 돌아가 레이캬비크로 다시 떠나야 했다. 꾸물거리다간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도 전에 내가 머무는 도로가 통제를 당해 그대로 갇혀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했다.


돌아가는 길에 나를 저 높이서 굽어보고 있던 거대한 아이슬란드 하이랜드 일대를 보며 생각했다. '간절함이 설령 닿지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현실을 헤쳐나가려는 우리의 도전은 무의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미 전날 밤과 이 날의 일정이 망가져버린 이틀 연속의 좌절을 경험한 내가 곱씹고 있던 질문이었다. 그 의미에 대한 가치 판단은 전적으로 그 과정을 온전히 지나온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지 않을까. 해보지도 못하고 마음이 아프거나, 모든 것을 다 해보고 부딪히고 깨져서 정말 몸이 아프게 되거나. 그래도 전자가 되어서 마음에 내내 회한의 아픔이 남는 것보다는 모든 걸 해보는 게 더 좋을 것이다.


보다 어린 시절에는 세상 모든 일에는 의미가 정해져 있다고 믿었다. 지금의 나 자신이 그 말을 다시 되짚어보자면, 그 명제는 보다 정확하게는 내가 직접 다가가 뒤집어져 있는 카드를 뒤집어 열어볼 때 그 정해진 의미도 규정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그 정해진 의미도 영영 알지 못한 채 떠내려 가게 될 것이었다. 


본래 계획에서 모든 것이 틀어졌고, 특별히 본 것도 없었으며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했지만, 그날 숙소 문을 따고 들어오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 그래도 오늘 나갔다 온건 정말 잘했어."




저 높이서 나를 내려다보던 하이랜드의 산등성이. 앞으로의 험난한 일정을 예고라도 하듯 근엄하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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