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ELAND] 다시. 서울. (Epilogue)

다시 서울에 돌아온 이후. 필름 현상을 했다.

by 대숲사진가
2023년 1월 어느 날, 서울


나는 퇴근 후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충무로의 한 현상소 문 앞에 서 있었다. 2022년의 마지막을 아이슬란드와 함께 보내고 다시 일상을 찾은 지금은 2023년으로 해가 넘어왔고, 여느 때와 평범한 서울 도심의 쌀쌀한 겨울날 저녁이었다. 더 이상 나에게는 거센 바람 소리도, 적막과는 상반된 길거리의 소음이 가득했으며, 동네 어귀만 벗어나도 가로등 불빛 하나 없어 칠흑 같던 어둠이 나를 감싸던 밤하늘도 수많은 도심의 불빛들로 가득했다. 이제는 다시 현실과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조금씩 다시 받아들이고 원래의 나로 돌아가던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아직은 아이슬란드와 조금 더 정리할 일(?)이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여정의 중간중간 디지털뿐 아니라 충실하게 담아둔 필름을 현상하는 일이었다. 디지털과 똑같지만 질감과 색만 조금 다른 색도 있을 것이었고, 디지털로는 찍지 않았던 일부 장면들도 있던 기억이 났다. 그렇게 한롤 한롤씩 꽉꽉 채워 찍은 채 손안에 쥐어져 있는 필름들은 무려 다섯 통이었다. 그것도 전부 코닥의 포트라 필름으로만. 다른 필름보다 갑절은 더 비싼 코닥 포트라 필름을 이렇게 펑펑 찍을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이 여행이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아마 이 이후로 내가 포트라 필름을 걱정 없이 마구 찍을 날이 다시 올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봤지만 명랑하게 확신하기 어려웠다. 새삼 이 여행이 나에게는 그만큼의 중요한 의미가 맞았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현상소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필름 현상 맡기려고요. 다섯 롤이고, 현상한 필름은 나중에 모두 다시 찾으러 올게요. 스캐너는 코닥 스캐너로 할게요."


스캐너에 이제는 크게 집착하지 않는 편이지만, 언젠가 가의도라는 섬을 갔다가 찍었던 코닥 엑타 필름을 코닥 스캐너로 찍었을 때 현상본에 나오던 그 몽환적인 푸른색과 고즈넉한 초록색이 주던 환상에 꽤나 오래 사로잡혀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현상 스캔이 오래 걸리는 (코닥 스캐너를 고르면 작업이 늦는다고 늘 안내를 주셨다.)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코닥을 고집하기로 했다. 여느 때처럼 현상비를 결제하고, 진열된 여러 종류의 필름들을 잠깐 구경하다가 다시 현상소를 나섰다.




언제나 현상은 빠르게 맡기러 가지만,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는 어서 현상본을 보고 싶다는 집착 같은 것은 하지 않았던 나였지만, 이번 현상만큼은 기다리는 것이 참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뭐든지 빠른 대한민국 치고는 제법 긴 시간이 약 이삼일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메일함을 확인하던 나의 눈에 마침내 현상본 첨부파일이 담겨 있는 메일이 도착한 것을 발견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경건한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첨부파일 다섯 개를 차례로 열어본다.



첫 번째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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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캬비크의 숙소와 그 주변 동네는 아늑함 그 자체의 느낌이었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숙소이자 가장 좋았던 숙소. 단 하나의 불편함도 없이 레이캬비크에서 휴식을 취했고 덕분에 링로드도 편안하게 출발할 수 있었다. 특히 입욕제를 구매할 수 있는 곳을 물어봤더니 "내가 쓰는 거 몇 개 화장실에 놔둘 테니 네가 머무는 동안 쓰렴"이라며 흔쾌히 친절을 아끼지 않았던 에어비엔비 호스트에게 지금도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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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장은 링로드를 출발할 때 헬라라는 첫 번째 거쳐가는 도시에 들어갈 때쯤 찍은 기억이 난다. 모든 도로가 통제될 만큼 거칠었던 날씨가 비로소 조금씩 하늘이 열리며 잠시 잦아드는 모습이 제대로 담겨서 기분이 좋았고, 포트라 필름 특유의 유한 색 표현으로 담긴 하늘이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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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의 비행기 잔해를 보기 위해 들어가던 길에 찍었던 길. 아직도 이곳에서의 사람이 날려갈 정도의 엄청난 강풍을 잊지 못한다. 압도적인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은 한없이 무력함을 처음으로 느끼며 겸손함을 새기던 바로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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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한 시간을 걸어 들어가서야 나타난 비행기 잔해. 흐릿하게 찍힌 사진은 사진의 기술적 오류가 아닌 흩날리던 눈보라가 같이 찍힌 것이었다. 그 부스스한 질감으로 사진에 담긴 것이 그때는 악몽이었지만 이제는 미화된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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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크에서의 숙박은 예정에도 없던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 없던 우연에서 인연이 나온다고 농장집 다락같은 아늑한 방에서의 숙박은 아마 쉽게 겪어볼 수 없을 그런 계획이었을 것이었다. 지쳐서 일찍 잠들어버리는 바람에 결국 호스트를 따라 밤에 가축들을 돌보는 체험을 따라가지 못한 것과, 내 카메라 렌즈캡을 하나 흘리고 나온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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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쿨살론에서의 기억은 단 한 장도 흘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디지털과 필름 모두 셔터를 바쁘게 눌렀던 기억이 난다. 지난날의 나와 현재의 내가 꾸던 자각몽의 가장 끝자락에 있던, 절대 잊지 않고 있었던 빙하 호수. 이제는 어렴풋한 실루엣만 머릿속에 남아 자각몽과 같은 헤맴을 겪는 일은 없을 것이다.



회픈에서 과거의 시간들을 모두 답습하고 동부라는 가보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로 떠나기 직전의 사진들. 회픈은 조용히 묵묵히 내 옆자리를 지켜주는 오랜 친구 같은 동네였다. 언젠가 인연이 닿아 다시 방문하게 되더라도 이때의 고즈넉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나를 다시 반겨줄 것만 같았다.


첫 오로라를 만나게 해 주었던 스톡스네스와 그곳을 함께 지켜보던 베스트라호른도 이제는 술자리 단골 메뉴가 될 것이다. 그곳에서의 희열, 그리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출발한다는 그 설렘과 두려움의 감정까지, 다채로운 감정이 섞인 장소의 기억이 함께 사진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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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필름


두 번째 필름은 스톡스네스 중간에 필름을 교체하면서 장면이 이어졌다. 전날 밤 바이킹 카페 앞의 바리케이드를 통과하여 이곳으로 차를 몰아올 때는 이런 장소와 지형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런 모습이었다. 다시 생각하면 이 날도 조난만 당하지 않았을 뿐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했나 하는 생각에 반성도 조금 했다.

전날 밤 이 검은 모래 둔덕 어디에선가 오로라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톡스네스를 빠져나가기 전 들렸던 바이킹 카페. 이곳에서 핫초코를 마시며 함께 이야기 나눴던 프랑스 승마선수 친구는 잘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 여행에서 얻은 의미로 너의 일상도 한층 더 강해졌기를 바랄게.



그다음부터는 새로운 땅인 동부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동남부 해안선을 끼고 가는 길이 정말 아름다웠었다. 사나웠던 겨울바다가 나를 집어삼킬까 두려워하던 그 감정마저도 이제는 감성을 자극하는 추억으로 남았다. 실제로 이 길을 지나는 도중에 이 여행의 첫 번째 조난도 당했지만, 이제는 그 조차도 추억의 한 켠으로 자리 잡았다. 이 길을 지나면서 어찌나 많은 사진을 찍었던지, 많은 미사여구가 필요 없이 그냥 쭉 내려만 보아도 여행의 기억이 다시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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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돌아볼 때마다 '내가 이런 길을 지나왔나' 하는 생각을 자꾸 했다.
가장 무서워했던 길. 바로 옆은 천길 낭떠러지.
흔치 않은 실수. 핀을 잘못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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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사진을 찍을 때쯤 차가 눈밭에 빠지는 조난을 한번 당했을 것이다.




세 번째 필름


세 번째 필름은 에이일스타디르의 근교였던 세이디스피오르에서 첫 컷을 시작했다. 늘 보고 싶어 마지않았던 바다를 끼고 있던 작은 마을. 내게 그 도시가 갖고 있던 모든 것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아무도 밟지 않은 그곳의 눈을 내가 혼자 다 밟고 다니며 담긴 기록들이 생겼다. 아직도 사진에서 이른 겨울 아침 그곳의 한기가 느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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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를 다시 갈 기회가 온다면 주저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겨울철 에이일스타디르에서 세이디르피오르로 넘어가는 이 고갯길은 두 번 다시 운전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참으로 아찔했다. 물론 자연은 고되고 위험한 만큼 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나에게 보여줬다. 그 높은 고갯길에서 내려다보이는 드넓은 도시와 그 도시를 끼고 있는 큰 강의 모습. 마치 온 세상이 내 발아래 있는 것만 같았다.



라가르플요트를 돌던 길. 이곳에서 만난 오로라는 이 여행의 정점이었다. 모든 것이 틀어지고 빗나가던 여행이었지만 그럼에도 그것만큼은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잠시 올랐던 헨기포스. 너무나 추워서 카메라도 배터리가 방전되는 바람에 필름이 이곳에서 나름 든든한 역할을 해주었다. 기계식 카메라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작동한다는 카메라 호사가들의 이야기를 이곳에서 직접 체험했다.



동부를 벗어나 북부로 넘어가는 시점까지 이 필름에 담겨 있었다. 온통 하얀 설원, 그리고 그 위에 나라는 작은 점 하나뿐이던 이곳의 여정. 차에 내려서는 30분 이상을 머물기가 힘들다고 느낄 만큼 너무나도 추웠다. 그 무시무시함은 쏙 빼놓고 필름에는 참으로 아름답게만 담긴 것 같아 좀 억울한 기분도 살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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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표지판 위에 낀 서리가 그래도 무시무시한 추위를 잘 담은 기분이들어 좋았다.


미바튼 호수에서 정처 없이 떠돌 뻔했지만, 어렵사리 찾아낸 근처의 숙소. 그리고 이 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호스텔 가족들과, 함께 머물고 있던 독일인 부부와 함께 했던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를 잊지 못할 것이었다. 어찌 보면 이 여행에서 가장 특별한 모먼트가 아니었을까.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식사 이후 아큐레이이로 넘어가던 길. 미바튼 호수는 나에게 특별한 겨울철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반대로 내가 쉽게 떠나가게 내버려 둘 생각도 없던 듯했다. 마치 미바튼 호수가 꾸고 있는 악몽에 나를 빨아들이기라도 하는 듯 거센 힘을 어렵사리 뿌리치고 나아가야 했던 시간의 기록들이 세 번째 필름의 마지막에 담겨 있었다.





네 번째 필름


미바튼 호수가 꾸던 악몽을 벗어나 간신히 들어간 아큐레이리. 그리고 이곳에서의 아주 성난 폭설이 맞아주던 크리스마스 밤이었다. 크리스마스 밤이었기 때문에 도시의 밤을 전혀 즐기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글로스터의 재봉사처럼 눈보라 휘날리던 도시를 혼자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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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를 벗어나 서부로 벗어나던 날의 컷들이 필름에서 이어진다. 즉흥적으로 잠시 1번 국도를 벗어나 극지방 해안선 길을 선택했던 이 날 나의 작전명 '궤도 이탈'.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아마 필름이 담아낸 색 중에서 이 구간의 사진들이 가장 아름답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구름, 하늘의 붉은빛, 푸른 겨울빛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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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에 도착해갈 때쯤 잠시 기름을 넣던 순간. "너는 대체 왜 이리도 기름을 많이 먹니" 라며 내가 혼잣말로 차에게 투덜거렸다.


서부에 도착해서 스네이펠스네스 반도까지 네 번째 필름에 담겨 있었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올라프스비크 숙소의 부엌이 찍힌 모습에 만족스러웠다. 그다음으로는 내가 스네이펠스네스의 분화구에서 내려와 하루를 시작하여 하루를 시작할 때부터의 동선이 이어진다.


디우팔론산뒤르 해변으로 들어가던 샛길
이 길이었다! 밤에 눈이 쌓여서 내 차가 빠졌던 그 움푹 파였던 도로 구간.
어찌 이 해변가를 잊겠어. 이제 서부에서 이곳은 내게 가장 특별한 장소다.
칠흑 같던 밤에 이 길에서 삼각대를 둘러메고 오로라 아래에서 바쁘게 뛰어다녔다



다섯 번째 필름


서부에서 필름을 미처 다 쓰지 못한 채 레이캬비크까지 귀향하던 날에 다소 급하게 찍은 감이 있는 마지막 필름 롤이었다. 서부에서 골든서클을 거쳐 레이캬비크까지 돌아가던 귀향길이었다.


보르가네스를 지나며 본 이정표. 이때쯤부터 이정표에 레이캬비크가 보이는 것에 대해 슬슬 가까워지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마지막 해 질 녘에 어렵게 어렵게 짜내듯이 찍은 싱벨리어 국립공원의 마지막 석양. 필름으로 찍을 감도는 이미 한참이나 벗어난 사진이었지만, 노이즈가 자글자글해도 난 이렇게 기록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좋다.



마지막 레이캬비크. 스스로 이 여행이 어땠나 시내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스스로 회고하기 전에, 시내를 마지막으로 구경하며 돌아다니며 그 찰나의 빈 시간대의 사진들이 이 필름에 담겨 있었다.





총 다섯 롤의 필름을 그렇게 정리하며 빨리 감기로 지나왔던 링로드를 다시 돌아봤다. 모든 사진도, 이 글들의 묶음도 마침내 끝이다. 첫 순간의 바람이 이 날에 닿았듯, 또 한 번의 기회가 있을까?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나는 또 한 번의 바람을 미래와 막연함 사이 그 어디에 다시 한번 실어 보내며 지난날 보다 난 훨씬 더 내실 있게 만들어진 사진첩을 닫는다.


언젠가 생각날 때쯤 또 꺼내보러 올게, 안녕.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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