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경기로 치면 추가 시간이다
끝이었지만 완전히 끝은 아니었던 시간대의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2022년 12월 28일 이른 아침, 올라프스비크 숙소
치열하고 아찔 했던 밤은 눈 깜짝할 사이에 금방 지나가 이내 동이 트고 있었다. 다시 레이캬비크로 돌아가기 위해 모든 짐을 챙겨 차에 실었다. 내일이면 다시 케플라비크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했기에 식재료는 이제 모두 소진된 상태였고, 짐이 여행 중간일 때보다 훌쩍 가벼워졌다는 것을 가장 먼저 느꼈다. 가벼워진만큼 섭섭하고 아쉬운 감정이 들었지만, 전날 밤 론드란가르에서 보았던 어선이 내게 던지던 메세지를 이내 기억했다. 다시 일상으로 무사히 돌아가는 것 또한 여행의 일부이고 중요한 길이라는 것을.
스네이펠스네스 반도의 이 작은 동네에서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를 남겨놓고 가게될 것이라고는 사실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귀향에 대한 감정과 별개로 떠나기 전에 잠시 숙소에서 보이던 동네의 전경과 저 멀리 바다까지 잠시동안 바라보았다. 22년 겨울의 대숲사진가의 일부를 이 동네에 두고 간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니 바다 반대편으로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다시 해가 뜨기전에는 스네이펠스네스 반도를 벗어나야 했기에 이제 더는 지체하지 않기로 마음 먹고 차에 올랐다. 약 이틀 동안 얼굴도 본적 없었지만, 좋은 숙소를 마련해 주었던 에어비엔비 호스트에게도 마음 속으로 인사를 전했다.
스네이펠스네스를 벗어나던 날도 하늘이 유독 맑았다. 전형적인 '시리도록 푸른', 그리고 순수함마저 투영 됐다고 느낄 수 있을만큼의 청명함이었다. 약간 어둑함이 까린 그런 빛깔의 하늘이 이내 내가 차를 몰아가던 방향으로부터 떠오르는 해가 쏘아대는 빛깔에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마치 어두웠던 공간에 불을 키는 듯한 장면, 그럼에도 또 다른 하루가 시작 되었다고 알리는 모습이었다. 마치 나에게 '너에겐 아직 하루가 더 있어' 라고 속삭이는 듯 했다.
스네이펠스네스를 완벽히 벗어나기 직전 쯤에는 한 휴게소를 만났다. 이 곳에서 화장실을 들릴 참이었는데, 동시에 기념품점이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그 곳에서 지금까지도 하고 다니는 화산석으로 된 묵주 팔찌를 구매 했다. 행운의 상징이라나. 행운보다도 난 서부의 '열정과 냉정'이 빚어낸 그 산물이 마음에 들었었기 때문에 고민 없이 구매했다. 지금도 그 팔찌를 차고 있을 때면 가끔 여행을 회상하게 되곤 한다. 특별한 기념품까지 챙긴 후에 다시 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다시 완연한 주간으로 들어설 때쯤 스네이펠스네스를 벗어났다. 위험과 고난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마음 속 좋은 기억만 남겨둔 채로 작별했다. 아직 레이캬비크로 돌아가지 않았는데도 벌써 링로드는 끝난 기분에 그토록 자주하며 익숙해졌던 혼잣말도 하지 않은 채로 말없이 굳은 표정으로 차를 몰았다.
스네이펠스네스 반도를 벗어나 귀향하는 길은 북부에서 서부로 넘어오던 이동거리 만큼이나 아주 긴 거리였기 때문에 이동에만 꽤나 많은 시간을 썼고, 여행의 막바지라는 사실에 조금은 나른하던 찰나였다. 잠시 차를 세우며 쉬고, 소소한 사진들도 찍기를 반복하며, 어느덧 서부를 완전히 벗어나 레이캬비크로 향하는 중간 도시인 보르가네스까지 다다랐다.
이 곳에서 아크라네스라는 도시를 거쳐 계속 내려가면 곧바로 레이캬비크였지만 나의 행선지는 곧바로 레이캬비크로 들어 가는 것이 아니었고, 마지막 행선지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거기서 한번 더 방향을 틀어서 나는 골든서클로 차를 몰고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이 여행의 가장 초반부에 거쳤을 곳이었지만, 레이캬비크의 기상악화로 모든 도로가 통제되어 들리지 못한 채 그대로 링로드를 출발하며 지나쳐야만 했던 바로 그 장소였다.
골든서클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이 여행의 시작이 아닌, 모든 서사의 시작이기도 했다. 7년 전의 대숲사진가가 아닌 아무 것도 모르는 '그냥 조수홍'이 왔을 때 가장 먼저 들렸던 장소 역시 이 곳이었다. 이미 링로드를 한바퀴 돌면서 굴포스 폭포도 내가 알던 힘차게 흐르는 모습이 아닐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이 장소는 볼거리를 떠나 시작과 끝이라는 서사의 완성이라는 의미였다. 반드시 가야만 했다.
골든서클의 모든 곳을 찬찬히 둘러보면 좋았겠지만, 서부에서 다시 레이캬비크로 넘어오는 거리가 또한 만만찮았기에, 나에게는 딱 굴포스 폭포 한 곳만을 둘러보고 갈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나는 축구 경기로 치면 짤막하게 남은 마지막 추가 시간을 이 곳에 사용하기로 했다. 7년 전의 나를 다시 만나고, 동시에 이제는 그 아이를 놓아주기 위해서.
굴포스 폭포에 도착한 시각은 약 2~3시 경이었다. 새벽 바람을 맞으며 바쁘게 달려왔는데도 정말 예상한대로 굴포스 폭포 단 한곳만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만이 내게 주어졌다.
골든서클, 싱벨리어 국립공원 일대와 게이샤르 간헐천, 그리고 굴포스 폭포를 아우르는 지역을 말한다. 이곳에서 바로 7년 전 이 곳에 처음 왔던 나 자신이 머물고 있었다. 본래의 계획은 이 여정의 가장 첫 구간에 이 아이를 다시 만나고, 그 이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링로드 길에 오르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거창한 마음 속 계획을 비롯한 미리 세워두었던 거의 대부분의 계획이 여기까지 돌아오는 동안 지켜지지 않았다.
하지만 순서가 어떻던 이 부분 만큼은 상관 없었고, 오히려 더 의미 있는 서사의 완성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난 2014년의 11월 이 곳에서의 나는, 나름 어른 같다고 생각했으며 그 순간에는 그 때 내렸던 의사결정들의 모든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다시 보니 참으로 어렸고 엉성하기 그지 없었다. 7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의 내가 그 때의 나와 마주 했을 때 많은 허점과 엉성함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만 그 때의 부족함과 불완전함은, 그 비어있는 여백을 채워내겠다는 각오로 내가 지난 세월을 거쳐오게 만들었고, 조금은 더 노련하고, 현명해진 채로 기어이 이 곳까지 다시 와서 이 장면을 만나게 했다. 그리고 그때보다는 훨씬 더 양과 질에서 우월한 경험과 시간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시간들의 불완전함은 끝없는 가능성이었고, 그 가능성으로부터 뻗어나온 시간들이 지금에 닿았다.
이제는 2014년의 11월 어느 날 밤에, 미숙하여 기회를 놓쳤다는 자책감과 아쉬움만을 가득 안고 있던 그 때의 나에게 말할 수 있었다. '더 이상 그 날 밤의 미련을 남기지 않아도 돼. 그 때의 너는 불완전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완전함을 향해 달릴 수 있었지. 지금 이 순간조차도 그러해. 이제는 그 날의 밤을 후회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간들과 또 다른 밤을 더 자주 추억하게 되겠지. 부족하다는 일념으로 늘 뒤를 돌아보곤 했지만 도리어 완전함을 향해 이끌었던건 그 날의 너였어. 지금까지의 나로 이끌어줘서, 고마웠어'
그렇게 굴포스에서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축구 경기로 치면 추가 시간의 추가 시간 같은 정말 밑바닥에 남은 시간까지도 모조리 소모했다. 굴포스에서부터 이미 해가 지기 시작하던 것을 보았고, 유난히 그 날의 하늘과 석양은 푸른빛에 핑크빛을 섞어 놓은 듯한 빛깔이 참 예뻤다. 해가 져가는 것에 쫓기거나 아쉬워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날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싱밸리어를 빠져나오는 길에는 손톱달이 저물어가는 하늘 위에 걸린 것을 보았다. 마치 마음 한켠에 비어 있던 조각을 채운 것 기념이라도 하는 듯한 그런 달의 조각이었다.
차를 천천히 몰며 나는 틈나는대로 그 달을 응시했다. 모든 몸과 마음의 짐을 털어낸 채로 향하는 행선지는 이제 정말로, 레이캬비크였다.
2022년 12월 28일 밤, 다시 레이캬비크
레이캬비크 시내에 들어선 내 눈에는 다시 저 멀리 할그림스키르스캬 교회가 삐죽 솟아 있는 것이 보였고, 나는 구시가지 한복판에 있었다. 아이슬란드의 살인적인 물가 때문에 여행 중 단 한번도 외식을 하지 않았던 나는 여행에서 유일한 외식을 했다. 조촐할 수도 있었지만, 이 여행과 이 상황에서는 제법 특별한 자축 방식이었다. 이 계절과 이 날씨와 모든 위험을 뚫고 약 1300km에 달하는 링로드를 '어쨌든' 완주 해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나의 유난히도 험했던 아이슬란드 겨울 링로드는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
저녁을 먹고 나와, 그날 따라 유독 사람이 적어보이고 다소 쓸쓸해 보였던 레이캬비크 시내를 나는 마치 집에 무언가를 두고 나온 사람처럼 정처 없이 계속 빙빙 돌며 거닐고 있었다. 집에 가져갈 기념품과 적당한 선물들도 천천히 여유 있게 구매하며 시간을 보내고도 한참이 지난 시간이었다.
여전히 이 곳의 밤거리를 서성이던 이유는 미련이 남았다는 이유가 아니라, (다시 링로드를 처음부터 돌라고 하면 단연코 하지 못할 것이었다.) 아마 이 이후의 나는 다시 한국에 돌아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나 하는 고민이 더 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떠한 일이나 추억을 곱씹곤 하는 나의 특성상, 아마도 한동안 이 여행에서 겪었던 일들과 시간 속에 한동안 갇혀 살게 될 것이다. 그 되새김질을 통해 나오는 것들을 나의 일상들에 덧붙이고 좀 더 다채로운 나를 향해 나아가려 하고 있을테다.
2022년 겨울의 아이슬란드가 내게 남긴 것은 결국 연이 닿는다면 그 존재와 나는 어떻게든 만난다는 것과,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큰 바람과 태풍은 늘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그에 상응하는 더 큰 준비가 늘 필요하단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이 담긴 미래의 나는 결국 기억 속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딛고 넘어가야 만날 수 있다. 이 날 이후의 시간에 내가 어디에서 어떤 장면을 만나던, 그 것은 결국 이 장면 이후의 내가 걸어갈 수 많은 다른 길들 중 하나일 것이다.
결국 대숲사진가는 자신이 그렸던 세상의 끝에 다다랐지만 어찌보면 그러한 대전제도 그래서 오만했다. 결국 그 조차도 또 다른 하나의 시작이었고 늘 그러했듯 어느 날 오로라를 만나겠다는 외침과 같은 또 다른 목표를 찾아 다시 출항할 것이었다. (오로라 이후의 나는 아직도 또 다른 큰 목표를 찾지 못한 채 열심히 두리번거리만 하고 있는 중이지만 말이다.) 그 모든 이야기를 담아온 2022년 12월 어느 날 레이캬비크에서 링로드를 완주한 채 서 있던 나 자신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 날의 대숲사진가에게, 안녕. 그리고 또 다른 길을 걸어갈 대숲사진가에게도 계속 응원을 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