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ELAND] 마지막 승부 (EP.17)

끝자락에서 또 한 번의 만남, 그리고 나를 노리던 가장 큰 위험

by 대숲사진가
마지막 기회라는 말이 그쯤부터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디우팔론산뒤르에서 론드란가르로 가던 길. 이 길이 어찌나 마음에 들었던지.


2022년 12월 27일 오전, 스네이펠스네스 반도 론드란가르(Lóndrangar) 인근 도로


앞서 디우팔론산뒤르(Djúpalónssandur)에서 마지막으로 오로라를 만나겠다는 약속을 한 이래로 나는 다시 지체 없이 차를 달려 다음 행선지인 론드란가르라는 해안 주상절리로 향하는 중이었다. 키르큐펠에서의 계획을 망쳤다는 기분 따위는 온데간데없었고 그저 마음이 평온했다. 이 날의 오로라 예보를 기상청 공홈에서 아직 확인하기 전이었지만,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스네이펠스네스의 하늘은 청명하기 그지없었고, 지금 이 순간 달리고 있는 도로 또한 서부의 광활함과 그 뒤편에 바다가 걸린 채 보이는 장면이 마치 한 편의 영화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어떤 조연도 출연하지 않고 있던 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을 만끽이라도 하겠다는 듯, 나는 자연스럽게 창문을 내리고 왼손을 창가에 걸치며 차를 몰았다. 담배를 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 손끝에 담배 한 개비까지 걸쳐져 있었다면 정말 영화의 한 장면이라 할 만한 그것이었을 것이다.


구글맵에서 확인한 바로, 론드란가르에 도착하기 전에는 필시 그 직전에 있는 등대를 지나치게 되어 있었는데 마침 그 등대도 슬슬 시야에 저 멀리서부터 들어오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마을을 벗어나 어둠 속을 헤매던 시간에 익숙해진 나에게 이제는 오히려 뻔한 이야기였지만, 아마도 저 등대가 해가 완전히 지고 칠흑 같은 밤을 지나는 시간대에는 이 인근에 유일한 불빛일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곳의 밤에 저 등대는 정말이지 크나큰 의지와 위안이 되겠어'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이제 혼잣말도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론드란가르까지 남은 거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던 구글맵을 잠시 동안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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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바다 위에 내리 깔리는 햇살에 질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론드란가르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나의 뒷편으로는 스네이펠스네스 요쿨의 만년설이 마치 거인과 같은 거대한 존재감으로 나를 변함없이 굽어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분명 북부나 동부의 피요르드들이 험해도 더 험했을 텐데, 스네이펠스네스 요쿨 외에는 그 어떤 높이 솟은 존재가 없는 이곳 서쪽 땅에서 저 만년설의 존재감은 독보적이었다. '그래 내 여행의 끝이니까 오늘만큼은 날씨 좀 잘 붙들어줘'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이내 다시 요쿨을 뒤로 한채 론드란가르가 보이는 절벽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론드란가르의 깊게 파인 곳과, 그와 반대 극점에 날카롭게 수평선을 향해 겨누고 있는 날 선 기암괴석들을 바라본다. 그 사이사이로 파고들며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는 제법 큰 소리지만 귀에 거슬릴 정도의 빠르기와 소음은 아니다. 정말로 오랜만에 이곳의 바다를 바라보며 평온함을 느껴본다. 이곳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연신 기록으로 담고 있었지만, 이 순간의 시공간이 주는 감정, 평온함, 그리고 겨울바다의 온도 등은 끝내 기록으로 남지 않을 것이었다. 사진을 잘 담아냈지만, 끝내 그 사진에는 담기지 않은 채 나의 오감만이 기억하게 될 그 느낌들에 집중해 본다. 최대한 오래오래 기억에 남기기 위해. 그와 동시에 디우팔론산뒤르 해변에 이어서 이 장소 역시 꼭 밤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남기며 금방 다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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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드란가르 이후에도 서부의 바닷가를 따라 달리며 내가 만났던 순간들은 끝없는 시원시원함을 선사했다. 다만 이쯤부터 여행의 막바지쯤부터 느껴지는 묘한 씁쓸한 감정이 함께 했다. 그것은 마치 커피를 과추출 했을 때 나는 쓰디쓴 뒷맛과도 같은 그것이었다. 서부의 모습은 계속해서 펼쳐지며 내 눈앞에 나타났고, 그것들의 끝은 도저히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오늘 밤이 사실상 아이슬란드에서 제대로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에 나는 다소 느릿느릿 집중해서 셔터를 누르면서 초조함을 곱씹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헬나르(Hellnar)와 아르나르스타피(Arnarstapi) 등은 론드란가르 만큼이나 놀라움을 주기 충분했다. 슬슬 조급해지는 마음에 나의 속도도 빠르게 달리듯 이곳들을 지나왔기에 상기할 추억과 감정이 많지는 않지만, 제법(?) 잔잔하고 얌전했던 겨울바다와 맑은 날씨는 다른 계절에서의 이곳을 또한 기대하고 궁금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모습들이었다. 그런 궁금증과 동시에 새어 나오는 욕심에 '과연 이곳을 내가 다시 올 수 있을까?'라는 스스로에게 되묻기를 이미 수십 번이었다.


초조해지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볼 건 다 보고 가야지'라는 마음으로 움직이던 나의 하루는 이트리 퉁가(Ytri Tunga) 해변까지 되어서야 비로소 속도를 늦췄다. 이 해변가는 물개들의 서식지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당연하게도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던 이 추운 겨울 해변가에 물개들이 있을 리는 없었다. 물개들은 없었지만 유독 일순한 끓어오르는 홍염과도 같은 적색 빛깔의 노을이 아름다웠다. 그마저도 유독 거세지고 있던 바람에 오래 밖에 서 있기가 어려웠지만 이게 아이슬란드에서 만나는 나의 마지막 석양일 테니, 운명의 실타래가 또 한 번 허락하지 않는 한 아마도 이것은 마지막일 테니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마지막 1분까지 천천히 거닐며 만끽했다. 그렇게 서부에서 허락된 마지막 나의 하루를 다 소모했다. 기약 없는 인사를 저무는 태양과 함께 실어 보내며 마지막 석양이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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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르스타피의 아담한 항구, 꼭 웅장해야만 멋있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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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트리 퉁가에서 마지막 석양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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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7일 저녁, 올라프스비크 숙소


하루의 마지막에 찍은 사진, 그리고.

스네이펠스네스 반도를 구석구석 한 바퀴를 돌아보고, 올라프스비크의 숙소로 돌아오던 길에 문득 달려오던 길을 잠시 돌아보며 찍은 마지막 사진에는 푸른빛 위에 점점 먹먹한 어둠이 짙어져 가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 사진 이후부터 깊은 밤이 오기까지의 잠시 동안 그 사이의 기억은 지금의 내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이의 필름이 끊긴 이유는 아마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었을 수도, 혹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은 식재료를 거의 다 털어서 숙소 부엌에서 저녁을 해 먹은 나는 숙소에 가만히 앉아 오로라 예보만 주시하고 하고 있던 중이었다. 아까 낮에 지나오던 길에 했던 약속을 이제는 지키기 위해, 거둬들이기 위해 다시 떠날 생각뿐이었다. 오로라가 보이기 시작할 시간으로 보이는 시각은 약 11시, 디우팔론산뒤르 해변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35분. 10시가 좀 넘은 시간에 나는 다시 모든 방한구를 껴입고, 삼각대와 카메라 장비들을 챙긴 채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다.


마지막이나 끝이라는 단어에 이토록 긴장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긴 시간을 달려와 어렵게 연이 닿은 이 땅에서 보내는 약 2주의 시간도 이제는 마지막 한 줌 정도만 남아 있었다. 그 과정이 어떻든 후회 없는 단 한 번을 만들어 내고 레이캬비크로 돌아가고 싶었다. 지난 2주간 많이 지치고, 좌절도 많은 여정이었지만, 마지막 남은 모든 것을 짜내야 할 시간이었다. 그 모든 것을 다 준비 한 채로 나머지는 운에 맡기며 띄워 보낸다. 그런 생각들이 뒤엉킨 채로 이 여행의 네 번째 오로라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모든 아이슬란드의 도로들은 밤이 되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기고 누구나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스네이펠스네스의 밤은 유독 더 그러했다. 무의식 중에 더 움츠러드는 느낌이었달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이때의 내가 이미 이런 분위기 속에 곧 다가올 위험을 감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어야 했다.) 이내 디우팔론산뒤르로 향하는 길에 마지막 샛길 진입만이 남았다. 단 2km에 불과한 샛길이지만 어찌나 어둡고, 눈보라는 날리던지. 그러나 그 위험함에 느끼는 두려움보다 지금 내 눈앞에 모든 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욕구가 더 강했다. 내 몸속의 모든 도파민이 솟아오름과 동시에 두려움에 내 모든 신경이 바짝 곤두선 것을 느끼며 이내 낮에 도착했던 주차장 공터에 도착했다. 시동과 모든 라이트를 끌 때쯤 '창밖에는 무언가 푸르스름한 게 보인 것도 같은데' 하는 마음에 서둘러 차 문을 먼저 열고 내렸다. 그리고.


서부에서 만난 마지막 날 밤의 빛. 약속은 지켜졌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본 것은 나의 여행 마지막 날 밤을 실망시키지 않던, 아니 오히려 그에 상응하는 가장 환한 인사를 건네는 아이슬란드의 밤하늘이라는 생각이 들던 모습의 환한 초록빛 오로라였다. 차에서 내려 그 뒤편으로 가장 먼저 본 것은 주차장으로 들어오던 길을 따라 보이던 것은 오늘 하루 내내 나를 가장 높은 곳에서 굽어 내려다보던 스네이펠스네스 요쿨, 그 위에 잠시 걸터앉아 머물고 있던 구름, 그리고 그 위로 사선으로 펼쳐져 쏘아져 가던 오로라 빛줄기였다.


눈앞의 광경에 약 5분간 멍하니 바라만 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차 문을 열고 카메라와 삼각대를 꺼내기 시작했다. 바람이 너무나 거세게 불고 있었고, 낮에도 무릎까지 차오르던 눈이 쌓인 내리막길을 탔었기 때문에 이 시간에 해변가의 검은 모래밭까지 내려가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었다. 낮에 봐두었던 해변가가 내려다 보이는 나무데크길로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디우팔론산뒤르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할 때쯤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챘다. 지금 보고 있는 이 오로라는 디우팔론산뒤르 뒤편으로 보이는 바다에서부터 솟아오르고 있는 중이었다는 것을. 낮에 했던 그 약속이 마치 운명적이라고 이야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동부에서 만났던 오로라가 마치 부채처럼 넓게 펼쳐지며 하늘 가득 퍼져나가는 모습이었다면, 이 날의 빛은 강력한 한 줄기가 저 바다 뒤편으로부터 솟아나 내 뒤의 스네이펠스네스까지 뻗어가고 있었다. 그 강력한 한 줄기의 빛 주변으로 은은한 빛들이 감싸며 신비로움을 더 했다.


이따금씩 함께 쏘아져 나오는 불그스름한 빛은 이 날의 오로라가 정말 강렬함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표와도 같았다. 강도 높은 오로라에서만 나오는 붉은빛이었다. 오로라 사진을 찍어보며 함께 고려하는 많은 요소들 중에 구도, 함께 담기는 은하수의 방향, 도심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불빛 등이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찍어도 좋았다. 그냥 이 순간을 거머쥘 수 있었다는 것과, 바렘이 끝내 가장 마지막 순간에 닿았다는 것 그 자체로 기쁘다고 느꼈다. 디우팔론산뒤르를 낮에 만났을 때 느낀 나의 직감이 결국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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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은 지켜졌다.




2022년 12월 28일 새벽, 디우팔론산뒤르


추위를 잊은 채 약 한 시간을 넘게 디우팔론산뒤르의 오로라가 해변가와 요쿨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있을 때쯤 시계는 자정을 넘어 있는 시각이었다. 마저 론드란가르로 이동해서 이 밤의 불빛이 허락하는 시간을 끝까지 만끽할 참이었다. 차에 서둘러 장비를 모두 던져 넣은 채 다시 차를 샛길로 몰아 큰길로 나가야만 했다. 그리고 가장 흥분했을 때가 가장 침착할 때였음을 나는 알아야만 했다. 차가 샛길을 반쯤 빠져나가고 있을 때쯤이었다.


'푹-'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퀴가 크게 헛도는 것을 느꼈고. 나는 일순간 얼어붙었다. 앞서 두 번이나 지독하게 당하고도 어찌 이 느낌을 모르겠는가. 차가 또다시 눈밭에 빠져 바퀴가 헛돌고 있었다. 그것도 약 새벽 한 시를 향해 가고 있는, 아무도 없는 깊은 밤의 이 외진 길 한복판에서.


온몸에 소름이 돋은 채 차에서 내려서 상황을 살폈다. 어쩐지 이 움푹 파인 곳을 들어올 때쯤에도 한번 차가 이 구간의 눈구덩이에 살짝 빠지는 느낌이 들었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다만 불과 한 시간 만에 달라진 점은 그 한 시간 사이 바람이 너무나도 많이 불어서 주변의 눈이 날려와 이곳에 더 많은 눈을 덮어두어 더 크고 깊은 눈구덩이를 만들어 두었던 것이었다.


상황은 너무나도 절망적이었다. 새벽 한 시에 이곳에 나를 구하러 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최악의 경우 해가 뜰 때까지 이곳에서 차에 탑승한 채로 버틴다고 해도 절반 정도 남아 있는 기름은 히터를 밤새 돌리는 동안 모두 동이 나버릴 것이 분명했다. 얼굴도 마주친 적 없는 에어비엔비 호스트에게 전화라도 해봐야 할지도 고민해 보고, 동시에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손으로 바퀴 주변에 눈을 마구 퍼내고 있던 나는 스스로에게 정신 차리라며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왔다.


'딱 한번. 딱 한 번만 다시 해보자'


스스로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며, 기어를 후진으로 넣고 (여태 직진으로 두고 액셀만 밟고 있었던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풀악셀을 밟기 시작했다.


위이잉-

위이잉-


나는 사실 운전을 하면서 '진짜 풀악셀'을 밟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악셀이 더 이상 눌리지 않을 때까지 끝까지 밟아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이번에 후진으로 풀악셀을 밟는 동안에는 정말 끝까지 페달을 부러트리기라도 할 것 마냥 밟아대고 있었다. 그렇게 한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째 밟는 순간.


위이이이이이잉- 쿠르르릉


기적적으로 차가 후진하여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육성으로 소리를 지르며 고요한 운전석 안에서 아무도 봐줄 일 없는 세리머니를 하며 환호했다. 하지만 뒤로 빠져나온 것이지 앞으로 빠져나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약 1분의 고민을 다시 눈구덩이를 앞에 두고 고민하다가 문득 도로 옆으로 나 있는 자갈밭이 눈에 들어왔다. 자갈밭은 차가 빠질 일은 없었지만, 말 그대로 '자갈밭'이었기 때문에 차 하부가 긁히거나 심할 경우 타이어의 손상까지 있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별 다른 수가 없었다.


'이건 차 밑바닥을 긁더라도 어쩔 수 없다'


생각을 했고 빠르게 실행을 옮겼다. 순간적으로 재빠르게 눈구덩이 앞에서 차를 우측으로 꺾어 잠시 길 밖으로 돌렸고, 자발밭 위를 밟은 차는 마치 지압슬리퍼를 신은 사람처럼 덜컹거리며 몸부림쳤다. 하지만 우측으로 꺾었다가 이내 얼른 다시 왼쪽으로 핸들을 돌려 길 위로 차를 올렸고, 어느새 눈구덩이를 뒤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짧았지만 치명적이었던 악몽과도 같은 순간을 이겨냈다. 가장 결정적 순간에 도사리고 있던 최고의 위험과 맞섰던 '마지막 승부'였다. 계속 이 순간을 넘어 길을 재촉한다.




2022년 12월 28일 새벽, 론드란가르


너무나도 위험한 일을 겪었지만 이 날의 별과 밤하늘은 잊을 수 없었다. 여러 의미로.


크나큰 위험을 빠져나와 이미 기진맥진했지만, 이 날 밤의 나는 계속 총력전을 외치고 있었다. 그대로 차를 달려 지근거리의 론드란가르에 다다르고 있었다. 다소 아쉬운 점은 앞선 일과 피 말리는 사투를 벌이는 동안 차창으로 내다보니 오로라 불빛이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참으로 아쉬웠지만 지금은 무사히 빠져나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이내 론드란가르 주차장에 차를 세웠고, 해변가보다는 훨씬 안전한 길이었기에 나는 고민의 여지없이 얼마 남지 않은 짧은 시간을 직감하며 빠르게 삼각대와 카메라를 쥐고 달리기 시작했다.


좀 전에 보던 모습보다 오로라는 현저히 옅어져 있었지만 론드란가르의 등대와 여전히 남아 있는 다양한 빛, 그리고 오로라가 옅어진 만큼 훨씬 더 알알이 박혀 빛나고 있던 은하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만 론드란가르의 주상절리가 보이는 방면과 오로라는 완벽히 정반대를 향하고 있어 주상절리와 오로라를 함께 담을 수는 없었다. 렌즈도 이제는 초광각렌즈에서 조리개가 더 밝은 단렌즈로 교체했다. 불빛이 옅어진 상황에서는 조리개 한 스톱이 더 중요했고, 넓은 화각의 존재는 어찌 보면 무의미했다. 모든 장비와 실력보다 가장 끝에 남은 1초라도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했다.


가장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 한 줄기 빛. 고마웠어 날 여기까지 이끌어줘서.


그렇게 초록빛깔 마저 사라져 갈 때쯤 마지막 분홍과 자줏빛이 일순간 더 알록달록 해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이 날 밤의, 그리고 이 여행의 마지막 오로라였다. 나에게 7년이라는 시간을 사진 세계에서 모험하게 했고, 결국 그 시간의 끝에 나를 이곳까지 오게 만들었던 존재와 다시 기약 없는 인사를 건넸다. 다시 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다음에 또 만나자'라고 되뇌었다. 그렇게 밤하늘의 빛은 이내 소등되었다.


가장 끝의 1분 1초까지 이제는 더 이상 후회 없다고 느끼며 나는 돌아가기 전, 미처 오로라와 담지 못했던 론드란가르의 주상절리를 보고 가기로 하여 이내 몇 분을 더 걸어 다시 마주 섰다. 그런데 그 순간에 어찌 보면 오로라 보다도 가장 귀중한 순간을 만날 수 있었는데, 주상절리를 따라 뒤편으로 보이던 등대가 불을 밝히고 있고, 그리고 그 등대를 바라보며 환한빛을 마주 쏘며 해안가로 들어오고 있던 한 어선이었다.


길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시커먼 겨울바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망망대해 속에서 길을 인도해 주는 모습. 그리고 그 길잡이 역할의 빛을 따라 무사히 귀항하고 있는 어선의 장면에 나는 또 한 번 집중하여 다시 기록으로 남겼다. 우리는 늘 모험을 갈망하지만, 결국 무사히 돌아가고 다시 일상을 되찾아야만 우리는 그 변화를 일상에 녹여내고, 새로움을 머금은 우리가 되어 삶을 더 다채롭게 살아갈 것이었다. 이 사진을 담던 그 순간 여행의 마지막 순간을 의연하게 마주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비로소 하게 되었다.


숨 가쁘게 달려오고 허둥댔던 템포를 식히며 다시 차로 돌아가 이내 숙소로 향한다. 그리고 눈을 돌려 이제는 다시 돌아가야 할 길을 바라본다. 유유히 정박을 위해 미끄러져 들어오던 그 론드란가르에서 본 어선을 생각 속에 계속 띄워둔 채였다.


이 여행의 모든 의미를 한 장으로 담았다면 아마도 이 사진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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