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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성호 Cha sungho Jul 22. 2023

아버지의 무공훈장

 

어느 날 뉴스에서 화재사건을 보면서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만약 우리 집에 저런 화재가 난다면 난 가장 먼저 무엇을 가져 나올 것인가가족이 마침 아무도 없다는 상황에서의 이야기다가장 중요한 것가장 아끼는 것을 순식간에 가져 나와야 하는데 그건 무엇인가평소에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체크포인트였다.

아내는 지나가는 말로 자신을 보물 1호로 삼는 뻔한 얘기는 하지 말란다물론 아내는 나의 보물 1호가 아니다국보 1호니까. 국보와 보물의 중요도의 차이가 엄격히 있으니 아내와 가족은 국보급이므로 논외로 한다.

작년에 나의 회갑을 맞이하며 아내는 평소 내가 가지고 싶어 하던 비싼 트럼펫을 선물했다싸구려 트럼펫으로 연습하면서 물론 내 실력도 변변찮지만 악기의 세계가 만만치 않음을 실감했다비싼 악기는 확실히 퀄리티가 그 가격만큼이나 보장된다는 사실이다

트럼페터라는 유명 사이트의 중고악기 거래코너에서 스페인제 유명브랜드인 스톰비 트럼펫을 거금 2백만 원을 주고 구입했는데 거의 새 제품에 가까운 상태의 악기를 반값에 산 것이다.

이런 프로급 악기를 내 취미생활을 위해 선물한 아내의 통 큰 결정에 나는 정말 뛸 듯이 기뻤다트럼펫을 불고 나면 정성껏 닦아주며 애지중지 소중하게 다루었다악기는 실수로 부딪혀서 흠집(‘이라고들 표현한다)이라도 나면 그 가치가 급락하게 되므로 아주 세심하게 다루어야 한다평생 살면서 내 물건을 이렇게 소중히 여긴 적이 과연 있었나 싶었다정말 보물 1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어느 날 거실 소파에 앉아 보물 1호 생각을 하며 내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과연 이 나팔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내 눈이 간 것은 거실 한편에 걸려있는 아버지의 무공훈장 액자였다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큰 형님이 보관하던 아버지의 훈장을 이사 다니던 와중에 그만 잃어버린 것이었다십여 년 전 큰 형님마저 돌아가신 후 나는 행안부 주무부처에 수소문 끝에 아버지의 훈장을 다시 제작하여 액자에 넣어 보관하게 된 것이다나는 아버지의 훈장을 다시 만들기 위해 과거 아버지의 군복무 기록을 유품에서 찾아내어 해병대사령부와 행안부에 보냈고 해당부처에서 그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아버지는 함경남도 영흥에서 해방 후 남북간에 왕래가 어려워지던 시기에 18세의 나이로 단신 월남하여 해안경비대에 입대하면서 군 생활이 시작되었다해군사관학교에서 소위로 임관한 후 6.25 전쟁을 맞이하였고 급히 창설된 해병대 포병장교로 6.25 전투에 참전하였다인천상륙작전과 경기도 연천 전투에서 무공을 세워 2개의 충무무공훈장과 미국 동성훈장을 받으셨다이렇게 아버지는 빛나는 청춘을 조국을 위해 자신을 바쳤고 그 사실을 생전에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셨다. 해병 대령으로 전역하신 후 사회적응은 순탄치 않았고 다만 돌아가실 때까지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으로 사셨다


나는 5남매 중 막내였지만 위로 형님 두 분이 일찍 돌아가셔서 막내아들인 내가 가문을 이어가는 중차대한 사명을 띠게 되었다특히나 아버지께서 이북에서 월남하여 이곳 이남에는 일가친척이 없는 실향민 2세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오 남매 중에 아버지만큼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자식이 있었나 싶다아버지의 훈장은 그래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우리 차 씨 가문의 상징이고 정신적 유산이기도 하다내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이유다집에 화재가 나면 가장 먼저 들고 나와야 할 보물 1호는 아버지의 무공훈장이다트럼펫은 비교불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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