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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샵레터 Nov 21. 2024

음악학자 계희승 인터뷰 PART I

의사가 될 뻔한 음악학자 이야기

  

                                계희승·에디터S

                                공동연구원·책임편집





일시: 2024년 10월 15일 (수) 15시-17시
장소: 한양대학교 제2음악관 계희승 교수 연구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지휘를 하는 사람,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 우리가 음악의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음악가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뉴스레터를 받아보고 있는 구독자라면 아시겠지만, 씨샵레터를 만드는 것은 ‘음악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음악학자는 뭘 하는 사람들일까요? 일단은 ‘음악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라고만 해두겠습니다. 그렇다면 음악을 학문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음악을 전공하신 분들이라면 대학에서 서양음악사나 음악이론 같은 수업을 들으셨을 텐데요. 그런 재미없고 따분한(쥬륵ㅠㅠ) 것을 다루는 것이 음악학자일까요?


다른 어떤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음악학의 세계 역시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충만합니다. 과거의 역사를 고리타분하게 나열하거나 어려운 이론을 기계적으로 다루는 게 음악학 아니냐는 선입견은 음악학에 관한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제게는 무엇보다도 유연하고 창의적인 작업인 듯 보이는 음악학에 관한 많은 진실들을 가리기도 합니다. 음악학적 작업들은 재미있고, 신선한데, 유익하고, 통찰력도 있습니다. 음악학은 음악을 좀 더 촘촘하게 이해하도록 돕기도 하지만, 때로는 음악만이 아니라 나와, 타인과, 세계를 다시 보이게 만드는 새로운 시야를 선물하기도 합니다.


이 인터뷰는 음악학자 계희승과 나눈 대화입니다. 2회에 걸쳐 공개될 이 인터뷰에 음악학에 관한 대화만이 아니라, 음악학을 하는 사람 계희승의 이야기도 담았습니다. 이번 첫 번째 인터뷰에서는 음악학에 관한 단상부터 음악학자 계희승의 음악 역사를 잠깐 엿볼 수 있습니다.




음악학이 뭔가요?

에디터S: 씨샵레터가 시작한 지 벌써 3년이 넘었어요. 이제는 구독자 규모도 꽤 커져서 독자층도 다양해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일 텐데, 씨샵레터 구독자 중에는 음악학이 정확히 뭘 하는 분야인지 궁금한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좀 보편적인 의미에서, 음악학이 뭔가요?

계희승: 보통 한 줄 정의가 있지 않나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음악에 관한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 당연하다는 건 그런 거 아닐까요? 물론 역사학자냐, 이론가냐에 따라 좀 다르긴 하겠지만.


역사학자들은 이를테면 역사적 단절이 일어나는 지점에 주목하겠죠.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거예요. “베토벤이 언제부터 베토벤이었지?” 같은. 가만 생각해 보면, 특히 음악 전공자들이 더 그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는 것 같아요. 베토벤은 당연히 위대한 작곡가라는 전제하에 모든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거든요. 연주자들 중에 뭐 베토벤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본 적 없어요. 음악학자들도 마찬가지예요. “베토벤이니까”라는 전제를 깔고 베토벤 작품 분석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고. 그런데 “그게 맞나?” 뭐 이제 이런 고민을 해볼 수 있잖아요.


음악학자 계희승 연구실의 책장. 이미지 출처: 에디터S


에디터S: 굳이 나누자면, 선생님은 음악 역사보다는 음악이론에 더 가깝잖아요. 선생님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해서 “음악학자로서 나는 이런 작업을 한다” 뭐 이런 이야기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해주실 수 있을까요?


계희승: 그게 진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요즘엔 약력에 ‘한때 음악에 관해 이것저것 다 관심이 있었지만, 최근엔 점점 순수이론으로 회귀하려고 한다.’ 이렇게 쓴단 말이에요. ‘순수이론’이라는 말이 되게 이상하지만, 뭐 이런 거예요. ‘이것저것 다 필요 없고, 음들의 세계만 보겠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원래 제 성향이 그쪽이기도 했고요. 또 최근에는 음악학계 안에서 벌어지는 논쟁들이 썩 건설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말하자면, 꼴 뵈기 싫기도 했고요. 음악학계 안에서도 굉장히 중요해진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든지… 이런 것에 문제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그런 연구를 하시는 분들의 작업이 분명히 필요한 것도 맞고요. 그렇지만 저같이 음악 외적인 어떤 것들이 개입되기 이전의 음들 사이 관계에 관심을 갖고, 그 작업을 통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어도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인 거예요.

어쨌거나 학문도 일종의 유행 아닌 유행을 타잖아요. 주류가 되는 방법론이나 특정 분야가 있다가도, 어느 순간 그것이 더 이상 주류가 아니게 되고.. 그런 식으로 계속 변화하는 것 같은데요. 제가 하고 싶은 그런 ‘순수이론’적 접근을 어떻게 하면 최근의 음악학계의 정서에 맞게 할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 있어요.



에디터S: 순수이론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런데 선생님 논문 중에 베토벤 계속 들어야 해?: 영화 《헌트》의 수사적 질문에 대한 음악학자의 변(辯) 같은 것은, 아마 선생님이 말씀하신 ‘꼴 뵈기 싫은’ 그런 이념 논쟁이 깊숙하게 결부되는 것도 같거든요. 아까 말씀하신 “베토벤이 언제부터 베토벤이었지?” 같은 질문도 선생님께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되는데, 그것 역시 베토벤이 살아간 시대와 상황, 조건들을 치밀하게 검토해 보는 작업인 것 같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좀 꼴 뵈기 싫긴 하지만, 그런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도 느끼시는 게 아닌가 싶어요.


계희승: 그런 것도 당연히 있죠. 그런데 어쨌든 사람은 타고난 성향이 있을 거고, 사람은 생긴 대로 산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편이에요. 요즘 음악학계의, 특히 북미 음악학계의 그런 이념 논쟁이 좀 지친다는 생각이 들면서, 제가 원래 좋아했던 게 사실은 (자꾸 순수라는 말을 써서 좀 그렇지만) 순수이론이라는 걸 생각하게 됐어요. 그냥 이런저런 고민 안 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왜 아름다운지’에 대한 답변을, 말하자면, 한슬릭(Eduard Hanslick)의 방법으로 해 보고 싶은 거예요.




의사를 꿈꾸던 어린 희승의 음악적 계기들

에디터S: 성향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어렸을 때 선생님은 어떤 아이였을지 궁금해요. 선생님이 기억하는 첫 번째 음악적 경험이 있나요?


계희승: 너무 명확하게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의사셨고, 어머니는 피아노를 전공하셨어요. 전 이분들의 결과물로 태어난 첫째였어요. 의대에는 대부분 의대 오케스트라가 있어요. 아버지는 치대 나오셨는데 치대 오케스트라가 또 따로 있고요. 아버지는 치대 오케스트라에서 클라리넷을 하셨고 클래식 음악을 워낙 좋아하는 데다 수집광이셨어요.


지금도 명확하게 기억하는 건 두 가지에요. 몇 살 때부터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지금도 기억할 수 있는 정도의 나이라면 한 네 살이나 다섯 살 정도였을 것 같은데요. 제가 자는 방에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항상 음악을 틀어 놓으신 다음 ‘잘 자’ 그러고 가셨어요. 이렇게 들으면 아버지가 다정하신 것 같지만, 별로 그렇지는 않고요. 음악을 틀기 전에 작곡가와 작품 제목, 그리고 그것에 대한 약간의 설명을 늘 해주셨어요. 이제 그만 들어도 될 것 같은데, 매일 똑같은 걸 해주셨어요. 아버지의 지론은 ‘클래식 음악은 최소한 100번은 들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래야 내면화도 되고요. 그래서 카세트테이프는 한 달 동안 안 바뀌었어요. 아직도 기억나는 곡은 이를테면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직’, 그리고 브람스 교향곡 같은 거.. 이런 걸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거의 한 달 꼬박 들은 것 같아요.


이미지 출처: Mattress Firm

에디터S: 잠깐만요. 자장가가 브람스 교향곡이요?

계희승: 자장가 목적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뭐 하여튼. 그런데 사실 저의 첫 번째 음악적 기억은 그것보다 훨씬 더 전이에요. 아마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최초의 기억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한 세 살이나 네 살 때가 아니었나 싶어요. TV에서 애국가가 5시나 6시경 나오는데, 그걸 듣고서 제가 피아노로 그걸 쳤어요. 똑같이. 그땐 그게 뭐 특별한 능력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냥 방금 들은 걸 똑같이 친 것뿐이었어요.

저희 어머니, 아버지는 ‘얘가 그래도 음악적 재능이 좀 있구나’ 하고 아셨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음악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어요. 피아노 학원도 다녔는데, 너무 싫어했고요.



에디터S: 왜요?


계희승: 거기서 치는 곡들이 다 재미없었어요. 어떤 거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뭐 바이엘 이런 거였겠죠. 우리 집안 남자들은 할아버지부터 전부 의사였기 때문에, 저도 당연히 의사가 되겠거니 생각했어요.


에디터S: 그럼 ‘나는 커서 의사가 되겠지’ 하시다가 그게 바뀐 계기가 있겠네요?


계희승: 그것도 너무 명확하게 기억나요.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인데요. 그때 처음으로 학교에 동아리가 생겼어요. 그리고 동아리 활동이 의무였어요. 종류는 여러 가지 많았는데, 어차피 전 공부해야 했고, 귀찮은 걸 너무 싫어해서 그냥 가볍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중창반에 가입했어요. 노래는 아니고 피아노 반주자로요. 그때도 그냥 그러고 지냈어요. 여전히 음악하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고요.


그러다 1학년 1학기 한 5월쯤이었나. 중창반 담당이셨던 음악 선생님이 저랑 우리 반 제 친구한테 서울예고 정기연주회 티켓이 생겼는데 다녀와 보라고 하셨어요. 그땐 음악회에는 관심이 없었고...



에디터S: 여학생들 보려고요? ㅎㅎ


계희승: 음. 그땐 정말 제 꼴이 말이 아니었거든요. 머리도 거의 삭발 수준으로 깎아야 했고.



에디터S: 선생님 한때는 자발적으로 그런 머리 하고 다니셨잖아요.


계희승: 그건 차라리 나아요. 고등학교 땐 머리 스타일에 대한 이상하고 까다로운 규정이 있었어요. 그렇게 머리 깎으면 되게 바보 같아 보이는.


하여튼 ‘여학생들 많이 있겠다’ 그러면서 갔는데, 거기서 초등학교 때 꽤 친했던 여자 사람 친구를 만난 거예요. 그 친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미 예고 가는 게 목표였던 친구였고, 저는 인문계 가면서 연락이 끊겼었어요. 그때 제가 같이 갔던 우리 반 친구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다 같이 다닌 친구라 우린 셋 다 아는 사이였고, 그 후로 자주 만나서 놀았어요. 가끔은 그 예고 친구가 다른 친구도 데리고 나와서 같이 만나기도 했고요.


여전히 음악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 친구들이랑 놀다 보니 이 친구들이랑 대화를 하려면 음악을 좀 알아야겠더라고요. 클래식 잡지식이라도 알고 싶었던 거예요. 그때도 뭐 주입식이긴 해도 클래식 음악에 대해 이래저래 아는 것들이 있었지만, 부족하더라구요. 그래서 괜히 음악 잡지도 사서 보고, 아버지 서재에 있는 음반들 가져다가 듣기도 하고.


아버지는 별말씀 없으셨지만 아마 좀 꼴 보기 싫으셨겠죠. 그런데 1학년 1학기 기말고사 때 성적이 조금 떨어졌어요. 아주 조금. 이것 때문에 의대를 못 갈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아버지에게는 저를 야단칠 수 있는 핑곗거리가 생긴 거죠. 맨날 예고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고, 집에 와서 공부 안 하고 음악만 듣고 있던 게 마음에 안 드셨을 테니까요. 그래서 아버지께 혼이 났고, 아마 홧김에 그러셨겠지만 “그렇게 음악이 좋으면 공부 때려치고 음악 해!” 이러셨어요. 근데 그때 묘하게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어요. 저도 거기에 반항을 해야 했어요. 그래서 다음 날 말씀드렸어요. 음악 하겠다고.


이미지 출처: NF Notícias


에디터S: 진심이셨어요, 아니면 반항이셨어요?


계희승: 반반이었던 것 같아요. 반쯤은 반항이지만, 또 반쯤은 그때 제 삶이 되게 피폐했거든요. 제가 다닌 학교가 공부 엄청 많이 시키는 학교였어요. 학원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게다가 말도 안 되는 머리에.. 그러다가 마침 친구들 만나서 노는 게 재밌고, 음악 하면 진짜 재미있겠다 그런 생각도 반쯤은 있었어요.



에디터S: 정말 그게 계기가 된 거예요?


계희승: 정말로 그게 계기에요. 그거 아니었으면 아주 조금도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할 이유도 없었어요.


그런데 사실 시작부터 계획이 틀어졌어요.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싶었기 때문에 예고를 가려고 했어요. 음. 사실은 예고를 ‘가는’ 게 목적이었어요. 친구들하고 노는 음악이 하고 싶었던 건지, 그냥 걔네랑 놀고 싶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런데 처음부터 예고에 입학시험을 보고 들어가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편입을 하려면 좀 복잡하더라구요. 그래서 부모님은 유학을 권하셨어요.




생애 가장 행복했던 2년

에디터S: 정말 처음 듣는 이야기예요. 흥미진진해요.


계희승: 그때 처음으로 본격적인 피아노 입시 선생님을 만나 보고, 입시 레슨도 처음 받아보고 그랬어요. 제가 미국에서 예고를 두 군데 다녔는데, 첫 번째 학교는 피아노로 갔어요. 미국 서부에 있는, 흔히 미국 3대 예고라고 하는 학교였는데 어떻게 붙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갔는데, 가자마자 아주 빠르게 알았어요. ‘이거 네 살, 다섯 살 때부터 전문적으로 하던 애들이랑 붙어서 승산이 없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음악 안 한다고는 할 수 없고, 여러 가지 고민을 하다가 작곡으로 전공을 바꾸게 됐어요. 그땐 이론이라는 게 있는지 전혀 몰랐고요.


그리고 작곡으로 조금 더 유명한 동부에 있는 예고에 다시 오디션을 봤어요. 그러고는 합격해서 그쪽으로 간 거죠. 거기서는 정말 행복한 2년을 보냈어요.



에디터S: 아름다운 여학생이 있었나요?


계희승: 물론 그런 것도 있었지만.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2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행복했던 건, 특별하게 어떤 일들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모든 게 만족스러웠어요.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그 2년 동안은 정말 작곡만 생각하고 살았거든요.


대학 오디션 보러 갔을 때 ‘지금 여기 오디션 보러 온 모든 사람들, 대학원 오디션 보러 온 사람들까지 통틀어서 나보다 더 현대음악 많이 들은 사람 없을 거다’ 이렇게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정도였어요. 그때 현대음악 정말 많이 들었어요. 하루에 CD 몇 장씩 들었으니까요. 또 미국에서는 대학 입시할 때 현대음악을 써야 한단 말이에요. 그때는 현대음악을 왜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입시를 하려면 알아야 하니까 많이 듣고 공부도 제일 많이 했던 것 같은데, 하여튼 그게 재밌었어요.


이미지 출처: decluttr


에디터S: 그때 들었던 음악 중에 특별히 좋았던 음악 기억나는 거 있으세요?


계희승: 좋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세상에 이런 음악이 있나’ 싶었던 건 영국 작곡가 브라이언 퍼니호흐(Brian Furneyhough, 1943~)라는 작곡가의 음악이었어요.



에디터S: 그 음악이 왜 좋으셨어요?


계희승: 너무 새로웠어요. 그때는 정말 세상에 있는 현대음악 다 들었나 싶을 정도로 많이 들었었는데, 그중에서도 ‘난 이런 음악 쓰고 싶다’ 했던 게 퍼니호흐의 음악이었어요.



에디터S: 악보도 같이 보시고요?


계희승: 아, 물론 당연히.



에디터S: 퍼니호흐 음악은 악보 보는 거 자체가 너무 어렵잖아요. 저는 그 악보 처음 봤을 땐 압도되는 것 같았거든요. 여기서 대체 뭘 봐야 하지, 그랬던 것도 같고요.


계희승: 그러니까. 그걸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이었던 시절에 저는..(ㅎㅎ) 근데 분석하면 명확하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이는 음악들이라서.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그 기저에서 작동하고 있는 음악적 원리는 생각보다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땐 어렸으니까 겉으로 보기에 화려해 보이는데 그렇지만은 않다는 점들에 또 매료됐었던 것 같아요.

Brian Furneyhough, Unity Capsule 중 일부. 이미지 출처: Edge of the Center

에디터S: 그런 음악들은 다 어떻게 들으셨어요?


계희승: 두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하나는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보스턴에서 그리 멀지 않았고 주말에는 외출을 할 수 있었어요. 주말에 타워 레코드에 가서 제가 쓸 수 있는 돈은 거기서 CD 사는 데 다 썼던 것 같아요. 또 그 고등학교가 좋았던 점은 뉴잉글랜드 음악원이랑 자매결연이 되어 있는 학교여서 그 학교 학생들은 뉴잉글랜드 음악원 도서관을 쓸 수 있었어요. 악보도 빌릴 수 있었고. 거기에 리스닝 라이브러리가 따로 있었어요. 악보만 보관된 곳, 음악 듣는 곳이 잘 되어 있어서 거기서 많이 들었어요.



에디터S: 정말 좋았을 것 같아요. 어떠한 압박에 의해서 한 것도 아니고 순전히 재미있었던 거니까요. 그리고 또 마침 그렇게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도 했고요.


계희승: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에디터S: 귀한 시간이었네요. 그러고 나서 대학 입학에 성공하신 거죠?


계희승: 성공했죠, 당당하게 자랑스럽게. 학교를 일곱 개인가 시험을 봤는데, 다 붙었어요. 그중에 어떤 학교는 ‘오면 4년을 책임지겠다’고 한 데도 두 군데 있었어요. 그렇지만 제가 제일 가고 싶었던 학교도 됐으니 거기로 갔죠.



에디터S: 대단하시네요. 이런 거 자랑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으셨어요? 대학 생활에 대해서도 듣고 싶어요. 이제 본격적으로 작곡을 공부하기 시작한 거잖아요. 밀튼 배빗 (Milton Babbitt, 1916~2011) 선생님과의 만남은 어땠는지도 궁금해요.


계희승: 일단, 원서 쓸 때 원하는 지도교수를 1지망부터 3지망까지 쓰게 되어 있는데, 저는 1지망, 2지망, 3지망에 전부 배빗, 배빗, 배빗 적어서 냈어요. (…)



...두 번째 인터뷰에서 계속...





음악학자 계희승의 두 번째 인터뷰는 12월 19일 목요일 오전 8시에 공개됩니다. 두 번째 화에는 작곡가로서의 대학 시절부터 음악학자로의 전향 과정, 그리고 음악학자로서의 주요 관심사와 그의 여러 활동들에 관한 대화가 담길 예정이에요. 두 번째 인터뷰도 기대해 주세요!








71호_VIEW 2024.11.21.

계희승·에디터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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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S 박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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