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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샵레터 Dec 19. 2024

시위의 소리, 기억의 노래

          

                         

글: 강지영

전임연구원





※ 이 글은 정치 칼럼이나 에세이가 아닌 전 국가적 혼란을 초래한 사태에 대해 '소리'와 '노래'에 초점을 맞춘 한 음악학자의 성찰을 담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임을 미리 밝힙니다.





계엄령이라니!?
2024년 12월 3일에 무슨 일이 있었나?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2024년 12월 3일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대한민국의 어느 한 밤, 뜬금없이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계엄, 그것도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발휘되는 비상계엄령이라니… 40대 후반에 접어든 저도 직접 겪지 않아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낯선 단어인데, 21세기가 시작된 지 한참 지난 2024년에 소위 MZ세대라 불리는 이들이 경험하게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요? 국회에서 바로 계엄 해제 결의안이 가결되어 계엄령이 무효화 되지 않았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바뀌었을지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아마 출판 언론의 자유가 사라져 정치적 소신이나 발언은 물론이고, 개인의 소소한 일상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뿐이겠어요? 지금과 같은 자유로운 문화예술 행위는 꿈도 못 꾸었겠지요.


서양음악사를 돌이켜 보면, 음악이 사회적 현실 및 정치와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를 여럿 봅니다. 스탈린 독재 체제하에 프로코피예프와 쇼스타코비치는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제약받으며 작품을 검열받아야 했고, 히틀러와 나치의 문화예술정책 역시 자신들만의 잣대로 검열하여 수많은 예술가를 탄압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대중음악 검열과 금지도 같은 맥락이겠네요. 이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권력의 유지와 정당화를 위해 음악을 지배의 ‘수단’으로 여기고 무력으로 대중의 눈과 귀를 막았다는 점인데요, 결과적으로 예술 작품과 창작 행위에 신체적, 정신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폭력이 작동되었습니다.

시위 현장에서 마주친 소음의 폭력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여의도의 시위 현장, 형형색색 나부끼는 깃발과 여기저기서 외치는 구호, 노래와 풍물패의 사물놀이 등이 눈과 귀를 사로잡습니다. 다양한 세대와 성, 사회집단만큼 저마다의 개성을 한껏 드러낸 글귀와 외침은 한국 사회의 다양성을 드러내는 목소리였습니다. 그 와중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소리가 있었는데요, 음향기기나 장비도 없이 생목소리로 조용히 시국선언을 하고 있는 집단을 향해 날아든 욕설을 포함한 고성, 그것도 앰프를 통해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소리였습니다. 이는 단지 너무 큰 소리여서 혹은 듣기 싫은 소리여서 거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흔히 너무 큰 소리나 듣기 싫은 소리가 소음으로 규정됩니다만, 이는 상당히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이지요. 그래서 음악학자이자 소리연구 학자인 한양대 음악연구소장 정경영은 소음은 정의된다기보다 구성된다고 주장하면서, 주체와 문맥에 의해 그때그때 만들어진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1)

(1) 정경영,『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생각합니다』 2장. 소음의 정치학 중


이미지 출처: 정경영,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생각합니다』 (곰출판, 2021), 52.

그러니까 그 소리가 ‘소음’이어서 견디기 힘들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일단 상대를 비하하는 온갖 종류의 욕설은 너무 상스러웠고, 제게는 상대의 목소리를 더 큰 데시벨로 뒤덮어 제거해 버리겠다는 폭력적 발상이 읽혔습니다. 폭력을 동반한 소리는 실제로 신체적인 공격 행위로 이어지는 듯했으나 다행히도(?) 공권력에 막혀 더 이상의 불상사는 없었습니다. 계엄령이 선포된 지 딱 일주일만인 지난 10일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발표한 소감은 폭력이 예술 그 어디에도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 줍니다. “폭력의 반대편인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여러분” 문학을 읽고 쓰고 이해하는 모든 이들과 이 상의 의미를 나누고 싶었다는 그의 말을 곱씹어 봅니다.




노래와 음악을 통한 현대 한국의 문화적 기억

알다시피, 음악은 청취자로 하여금 집단의 소속감을 강렬하게 경험하게 하고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데 일조합니다. 얀과 알레이다 아스만 부부(Jan & Aleida Assmann)의 ‘문화적 기억’(cultural memory)이라는 개념이 있는데요, 문자로 기록된 텍스트나 이미지, 기념비와 박물관 등의 공간, 혹은 의례나 축제와 같은 문화적 재현에 의해 저장되고 전승되는 기억을 말합니다. 문화적 기억을 만드는 여러 다양한 문화 예술적 행위 중에서 음악은 강력한 감각적 육체성으로 인해, 특정 시대와 장소의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탁월한 힘을 발휘합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한국 현대사와 민주화의 흐름에 크나큰 발자취를 남긴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들은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무게감으로 다가옵니다만, 당시 절박했던 구호와 현장의 분위기는 어떤 매체를 통하더라도 같은 무게로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당시의 이야기를 내러티브의 힘을 빌려 재구성하는 소설과 연극, 영화와 같은 재현에 능한 매체에 비해, 비재현적 장르인 음악은 메시지 전달에 가장 취약합니다. 그러나 음악은 당시의 분위기와 정서를 현재로 가져오면서 기억을 소환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이미지 출처: 서울의 소리

80년 광주에서 불렸던 ‘훌라송’은 70년대 초중반부터 시위 현장에서 자주 불린 노래로, 아일랜드 민요 선율을 가져와 새로운 가사를 붙여 불렸는데요, “독재자는 물러가라 훌라 훌라”와 같은 알아듣기 쉬운 가사로 시민군을 단합시키는 투쟁가로 쓰였습니다. 노가바(노래 가사 바꾸기)의 관습도 이후 보편화되었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만들어져 집회의 대표적인 노래가 되었고, ‘아침이슬’은 민중가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87년부터 집회에서 불리기 시작해 2016년 박근혜 탄핵 때까지 대중을 결속하는 용도로 널리 활용되었습니다. 이 노래들은 당시 시위 현장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한 소절만 들어도 울컥하게 되면서 내가 직접 겪지 못한 과거의 사건에 감정적으로 깊이 공유하고 공감하게 됩니다.




시위 현장에 K팝도 괜찮은데?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사건과 이로 인한 대통령 탄핵 집회는 향후 어떻게 기억될까요? 분명한 것은 과거의 시위 문화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라는 건데요. 1980년대생부터 밀레니엄 전후로 태어난 이들까지 포괄하는 MZ세대는 대체로 군사정권 시기를 겪지 않은 사실상 민주화 이후의 세대를 의미합니다. 이들이 주도하는, 혹은 이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시위는 과거 세대의 그것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보다 조금 전에 태어난 저만 해도 대학 시절에 각종 시위를 경험한 반면, 2000년을 기점으로 시위 문화는 급속도로 쇠퇴했으니까요. 독재 타도, 반미, 통일, 노동 해방 등 강한 이념성을 띠거나 정치적 요구를 내세운 과거 세대의 시위와 현재의 시위는 조금 달라 보입니다. 물론 메시지가 단순하고 분명하기에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여든 것은 사실입니다만, 메시지의 전달과 함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집단의 정체성과 공동체성을 강조하고 확인하는 데 훨씬 치중합니다. 그 중심에 문화적 퍼포먼스가 있죠.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좌), 한겨레(우)

최근 시위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색색깔의 각종 K팝 그룹들의 LED 응원봉일 겁니다. “바람 불면 촛불은 다 꺼지게 돼 있다”는 새누리당 한 의원의 발언으로 시작된 ‘촛불 대신 응원봉’ 문화는 권력을 둘러싼 이념과 힘의 격돌인 시위 현장을 단숨에 유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콘서트장으로 변모시켰습니다. 무겁고 투쟁적인 민중가요 대신, 싸이의 ‘챔피언’,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손담비의 ‘토요일 밤에’, 최근 아이들 노래인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나 뉴진스의 노래까지 연이어 나와 마치 ‘K팝 플레이리스트’를 연상하게 합니다. 심지어 발매된 지 십 년이 훌쩍 지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집회의 핵심 노래로 불리면서 5060 세대가 노래를 배워 오기도 한다고 하는데요, 반대로 2030 젊은이들은 신해철의 ‘그대에게’,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를 배우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광야에서’ 등 민주화운동 때 불렸던 민중가요를 익히기도 합니다. 노래의 장르나 가사의 내용보다는 이 시국을 이 사태를 ‘함께’ 헤쳐 나가겠다는 각오와 열의의 표출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투쟁도 신나게! 시위 퍼포먼스의 놀이됨
(Gespieltwerden)

엄중하고 진지한 시위 현장에서 신구 세대 할 것 없이 함께 부르는 대중가요와 K팝은 90년대 민중가요의 새 시대를 열었던 노래들과 겹쳐집니다. 1990년대 초에 나온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나 ‘바위처럼’은 친근한, 어쩌면 오글거리는 가사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투쟁과 이념적 색깔이 옅어지고 대신 일상과 보편성이 중시되던 90년대의 분위기의 반영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예 선동, 일명 ‘문선’이라 불리던 율동이 가미된 것이었습니다. 쉽고 가벼운 율동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었으며, 그럼에도 선전, 선동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몸짓이기에 투쟁의 분위기를 고취하는 데 큰 힘을 발휘했던 거죠.


신나는 노래와 가벼운 율동은 집회의 내용이나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의적, 집단적 열의를 끌어올려 즐거움을 얻는 신체적, 정신적 활동인 ‘놀이’와 오히려 가까운데요. 독일의 철학자 가다머(Hans Georg Gadamer, 1900-2002)는 “놀이의 본래적 주체는 놀이하는 사람이 아니라 놀이 자체”이며, “놀이의 존재방식은 자기표현”이라 말했습니다. 여기서는 노래와 몸짓이라는 ‘놀이’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정치적 구호와 메시지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놀이하는 사람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표현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투쟁도 신나게! 놀이처럼! 이번 탄핵을 위한 시위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뿐 아니라, 그 어떤 폭력도 배제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는 평화로운 연대의 자유로운 ‘놀이’로 기억되길 진심으로 소망해 봅니다.









72호_VIEW 2024.12.19.

글 강지영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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