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계속 흐릅니다. 적어도 그렇게 느낍니다. ‘시간이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뭐 언젠가 있었던 것도 같지만, 실제 멈춘 적은 없습니다. (혹 시간이 멈춘 경험을 하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죄송합니다.) 어김없이 오늘도 어제의 해가 떴고, 내일도 여전히 오늘 그 해가 다시 뜰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어제가 연장된 시간이고 또 내일은 오늘이 지속된 후에 또 찾아오겠죠. 그사이에 어떤 경계 같은 건 없습니다. 자정이 지난다고 갑자기 마법이 풀린다거나 유리구두가 벗겨지는 일은 없습니다. 그냥 우리가 우리 맘대로 흘러가는 시간에 숫자를 붙여, 11시 59분이 12시 00분이 되고… 그밖에는 아무 일도 없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일입니다. 그렇게 늘 시간은 경계 없이 흘러갑니다.
그러나 또 새해가 되었습니다. 12월 31일이나 1월 1일이, 그날이 그날 같은 별다를 것 없는 날이라는 거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그렇지만 또 새해가 되었고, 괜히 어제와 다른 마음가짐, 작년과는 또 다른 삶을 결심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촌스럽다구요? 네, 벌써 반세기가 넘게 이렇게 촌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바로 그것이 ’음악성‘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물리적으로, 일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시간, 나나 나의 상태, 나의 생각과는 달리 그저 늘 같은 식으로 흘러가고 있는 시간(혹 ’상대성이론‘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면… 잘 모르겠고… 죄송합니다.)에 다양한 방식으로 악센트를 주어 내 것으로 만드는 그것 말입니다. 매일 같은 날을 살아가면서, 이날은 생일이라는 둥, 저 날은 우리가 만난 지 100일이 되는 날이라는 둥, 이날은 법이 만들어진 날이라는 둥 하면서 기념하는 것 말입니다. 그냥 똑같이 흘러가는 날들을 그냥 놔두지 않고 그날에 뭔가 의미를 부여하고 그날을 특별하게 만들고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거나 빨간색으로 표시해 강조하는 것, 그게 악센트를 부여하는 행위라면 말입니다. 나와 관계없이 물리적으로 동일하게 흘러가는 시간에 악센트를 주어 그것을 나와 관계있는 시간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음악이니까요.
이렇게 생각하면 음악은 사실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을 나의 것, 나와 관계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멜로디, 박자, 강약, 화성 등을 통해서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니까요. 다시 말하면 저나 여러분이나 우리 어머님이나 어제 수영장에서 만난 할아버님도 늘 하고 계시는 일이니까요. 그분들이 적어도 설날, 추석, 결혼기념일, 생일 같은 날을 특별히 여기신다면 말이죠. 그러니 우리 모두는 이미 음악가인 셈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피아노를 잘 치거나 성악가처럼 노래를 부르거나 베이스 기타, 드럼을 끝내주게 연주하지는 못합니다. 그걸 잘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서 연습을 해야 하죠. 그렇게 길러지는 음악성이 있는가 하면, 원래 우리가 가지고 태어나는 음악적 감수성으로서의 음악성이 있습니다. 제가 저나 여러분들 모두가 음악가라고 할 때는 바로 이 두 번째 음악성을 말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자를 musicianship, 후자를 musicality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musicality를 가지고 있는 거죠. 피아노, 노래, 드럼 등을 잘하고 싶다면, 그러니까 musicianship을 기르고 싶다면, 별수 없습니다, 연습하세요!
우리 모두가 음악성(musicality)을 가지고 있으니 음악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음악성은 저나 여러분만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여러분의 반려견이나 반려묘는, 안타깝지만 여러분의 생일을 기억하고 챙겨주지 않습니다. 여러분과 만난 그 기념비적 날짜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100일을 기념하자고 졸라대지도 않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음악성은 다른 생물이 갖지 않는 인간 만의 독특한 특성이라는 거죠. 어떤 책의 제목을 빌자면 우리는 호모 무지쿠스(Homo Musicus)인 거죠. 음악성은 곧 우리가 인간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지나간 2024년과 새로 살게 된 2025년이 뭐 다를 것이 있겠냐, 새해를 한두 번 맞은 것도 아닌데 웬 호들갑이냐 이러지 말고, 좀 촌스럽게 새해에 걸맞은 새로운 생각과 결심을 해보자고 제안합니다. 작심삼일이 될지도 모르고 잘하면 몇 주 혹은 몇 달쯤 지속될지도 모르는 그 생각, 그 결심, 매해 실패했다 하더라도, 지치지 말고 또 그렇게 해 보자구요. 새로운 희망도 가져보고 꿈도 꿔 보고 작년 같았으면 생각도 못 해봤을 그런 계획도 좀 가져보자구요. 새해는 ‘새’ 해니까 작년의 흔적과 그림자가 사라질 거라고, 세상이 좀 더 살만한 곳이 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 보자구요. 그게 촌스럽고 어리숙해 보여도, 바로 그게 내가 음악적이라는 것, 그리고 바로 그게 내가 그래서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니까 말이죠.
2025년은 제발 2024년 말과는 다르길, 음악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마음을 다해 기원합니다.
74호_VIEW 2025.01.16.
글 정경영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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