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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는 어디로 가 무엇이 될까

by 씨샵레터


글 ∙ 정이은

전임연구원



image (1).png 이미지 출처: How-To Geek


구정은 저에게 언제나 설레는 명절이었습니다. 항상 세뱃돈을 두둑이 챙길 수 있었거든요. 물론 군대 입대와 함께 “구정=세뱃돈”이라는 명절의 즐거움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저는 세뱃돈을 고스란히 클래식 음반을 사는 데에 썼습니다. 정확히는 클래식 음악을 담은 CD를 사 모았더랬죠. 예산은 한정되어 있었고, 최상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음반 가이드북을 참고해야 했습니다. CD는 닳을 리가 만무하지만 혹여 스크래치라도 날까 봐 틈틈히 닦아주는 일도 했고요(‘CD가 튄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신다면, 독자님도 CD 세대이시겠죠?). 음반 수집은 저에게 음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해준 창문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제 저에게는 CD 플레이어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용돈 모아 한두 장씩 사 모은 CD들은 여전히 제 책장의 몇 칸을 고스란히 차지하고 있습니다. 들을 수도 없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제 삶의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물건들이죠. 이사할 때도 차마 못 버리겠더라고요. 무덤까지 가져갈 것도 아니고, 가뜩이나 책장에 공간도 부족한데 말이죠. 일종의 ‘애착’ 관계라고 해야 할까요.




오늘은 무엇을 들을까

주변 사람들의 모바일폰에 각종 음악 스트리밍 앱들이 설치될 무렵에도 저는 이 새로운 존재들을 통한 음악 듣기에 의구심이 많았습니다. 내가 찾는 레퍼토리들이나 특정한 음반들이 스트리밍 앱 속에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설령 있다 한들 조악한 음질로 듣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 컴퓨터 스피커나 모바일폰으로 플레이되었을 때 그 ‘순수한’ 경험이 와그장창 깨지는 것 같기도 했었구요. 짐작하시겠지만 저는 정말 tech person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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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이미지 출처: Apple Music / (우) 이미지 출처: Spotify

하지만 언젠가부터 저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서 제가 가진 대부분의 음반들이 있음을 알고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같은 음악을 수많은 다른 버전으로 듣기도 합니다. 과거에 ‘최상의 음반 구매’를 위해 쏟아부었던 시간과 노력이 아까울 정도가 되었죠. 음질 문제도 이제는 컴퓨터나 모바일로 음악 듣기에 익숙해지고 연결 가능한 오디오 도구들이 좋아지다 보니 더 이상 큰 문제는 아니더라구요. 이제는 이 거대한 스트리밍 바닷속에서 오늘은 무엇을 들을까 하는 게 새로운 고민거리네요.




좋아요, 나의 음악듣기 일기장

이 글을 쓰면서 제가 사용하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저의 라이브러리를 한 번 살펴봅니다. 제가 누른 최초의 ‘좋아요’는 2017년 10월, 베르너 귀라(Werner Güra)가 노래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앨범이었습니다. 어떤 경우는 앨범 전체를, 어떤 경우는 개별 트랙으로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그 결과 지난 7년간 총 2천 개가 넘는 음원들에 ‘좋아요’를 표시했네요(다악장의 클래식 음악 작품은 제가 이용하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모두 별도의 트랙으로 카운트됩니다). 대개의 경우 제가 들었던 음악들을 바탕으로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음악들 중에서 나중에 다시 듣기 위해 표시한 것들입니다.

image (4).png 저자 정이은의 <스포티파이> 계정 내 ‘좋아요’ 리스트. 이미지 출처: 정이은

신기한 것은 그중 대부분이 제가 이전에 이미 들어본 적이 있는, 혹은 원래부터 좋아했었던 음악이라는 사실입니다. 중간중간 빌보드 핫 100이나 멜론차트 Top 100에서 접했을 것 같은 음악도 보이네요. 이 음악에 ‘좋아요’를 눌렀던 날은 분명 대중음악을 들었던 날일 겁니다. 저의 ‘좋아요’ 목록에는 날짜가 기록되어 있으니, 이 기록들은 저의 음악 듣기 일기장이기도 한 셈입니다. 그 기록들을 시간 순서대로 정렬해서 한 곳에 모아놓고 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제가 어떤 음악 취향을 가졌는지는 물론이구요, 제 삶의 어떤 순간에 특정 음악을 듣고 있었는지 같은 것들이요.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일기장’이니 누구와도 공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 그 음악을 들었던 제 상황과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는 저만의 감정이겠지요.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을 듣다

image (5).png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 ‘스포티파이’의 사용자 개인 데이터 분석 예. 이미지 출처: Raddit의 사용자 willyw0nka_

하지만 이제는 그 감정마저 오롯한 ‘개인의 기억’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껄끄러운 지점이 있습니다. 제가 서비스의 플랫폼 안에서 하는 모든 행위는 일종의 ‘데이터’로 남으니까요. 음악을 스트리밍할 때에는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음반처럼 유형의 재화가 존재하지 않기에 저는 제 듣기 행위를 기록하기 위해 ‘좋아요’를 누릅니다. 이 거대한 음악 듣기의 플랫폼을 제어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제가 누른 ‘좋아요’는 그 음악에 대한 데이터입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데이터는 무형의 재화로, 광고주를 위해 사고파는 상품으로 인식되기도 하죠. 저는 무료로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지만, 사실상 제가 이 플랫폼에 남긴 흔적들은 모두 사고팔 수 있는 데이터들일 테니 저는 충분히 플랫폼의 이익에 기여하고 있는 셈입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입장에서 보자면 제 계정에 있는 2천 개의 ‘좋아요’ 만큼이나 음악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다음 음악으로 건너뛴 그 순간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행위도 음악에 대한 저의 생각이 반영되는 데이터니까요. 물론 저는 건너뛰기를 누른 그 찰나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플랫폼은 제가 어느 순간에 건너뛰기를 눌렀는지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 데이터는 저에게 적합한 음악을 찾기 위해, 혹은 제가 관심을 둘 만한 광고를 매칭하는 데에 사용할 겁니다. 제가 주로 클래식 음악을 듣다 보니 저의 건너뛰기가 스트리밍의 수익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겠죠. 하지만 만약 그 음악이 이제 막 출시된 유명 뮤지션의 따끈따끈한 신곡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겁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특정 플랫폼을 이용할수록, 플레이리스트와 같이 플랫폼에서 유도되거나 이제는 AI가 생성해 내는 음악의 배열은 이제 우리의 듣기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이 오늘날 음악 산업의 복잡한 권력 사슬의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죠.




You are what you listen

image (6).png 이미지 출처: Security Industry Association

독일 속담에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Man ist, was man isst)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이 언어유희를 음악 듣기에 적용해서 “당신이 듣는 것이 곧 당신이다.”(You are what you listen to)라고 말합니다. 스트리밍을 통한 음악 듣기가 우리의 일상을 깊이 파고들수록, 플랫폼은 우리의 일상을,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점점 더 면밀하게 들여다볼 것입니다. 이 플랫폼 속에 기록된 저의 개인적인 기억들이 더 이상 저만의 것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감시되는 기억이라는 사실이 썩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지난 7년간 스트리밍 서비스의 압도적인 편리함과 그들의 자본과 기술이 제공한 음악의 감흥을 마음껏 누렸으니 그만 의심의 목소리를 거둬야 하는 것일까요. 이제 플랫폼 자본주의를 연구하는 수많은 목소리들에 좀 더 귀 기울여 봐야겠습니다.









76호_VIEW 2025.02.20.

글 정이은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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