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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학자는 왜 오픈 소스를 주목해야 할까?

by 씨샵레터


글 ∙ 계희승

공동연구원




image (1).png 이미지 출처: Freepik

개강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준비할 것도 많고 새로운 학생들을 만날 생각에 마음이 급합니다. 대학에서 처음 강의를 시작한 게 2009년 9월. 벌써 16년 전의 일입니다. 저도 나이를 먹었지만 그 사이에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때는 강의실에 노트북 들고 오는 학생들도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8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나 볼 수 있었던 태블릿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합니다. 우리 몸(혹은 뇌)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 아닌가 싶은 스마트폰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대학’이라는 곳의 기능과 가치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비단 학령인구 감소만의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뭐 다 좋습니다. 세상이 변하는 건 당연한 일. 고민은 우리가 학습하는 방식도 함께 변했다는 사실입니다. 몇 년 전 이와 관련하여 오세정 전 서울대학교 총장이 기고한 기사를 보고 통감한 적이 있습니다. 기사 제목은 “21세기 학생을 20세기 교수들이 19세기 방식으로 교육”하고 있다는 것. 그러니 교육이 잘 될 리가 없다는 게 요지였습니다. 물론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시대 학생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각자 소신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저는 저대로 해야 한다고 믿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할 이야기입니다.




누구를 위한 코딩 교육인가?

image (2).png 이미지 출처: Shutterstock

대학에서 신입생의 코딩 교육을 권장 또는 의무화하기 시작한 게 불과 몇 해 전의 일입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시 키워드는 ‘4차 산업혁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새 시대를 맞아 대학에 입학할 정도의 지식인이라면 코딩 능력은 기본 소양이라는, 뭐 그런 단순한 논리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제 AI 시대가 도래하니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이제 “코딩 배울 필요 없다”고 겁을 줍니다. AI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회사의 대표가 그렇게 말했다고 또 화들짝 놀라 하루아침에 코딩 수업이 사라질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젠슨 황이 무슨 뜻으로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전후 맥락을 살펴야 합니다. 요약하면 더 이상 “전문적인 직업인이 되기 위한 코딩”은 배울 필요 없다는 것.


그런데 적어도 아직은 코딩(정확히는 프로그래밍) 교육이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 ‘음악학자’로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프로그래밍은 원하는 일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문제 해결 과정을 공부하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지 이걸 하려면 컴퓨터와 대화해야 하고, 그러려면 기계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구사해야 하니 코딩이 필요할 뿐입니다. 축음기가 발명되었다고 연주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음악학자가 예외가 될 이유는 없습니다.



image (3).png 이미지 출처: College of Arts and Technology

그런데 이게 잘 안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수강하는 코딩 수업에서는 ‘코딩’ 그 자체를 배우기 때문입니다. 이건 별로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예컨대 전공과 관계없이 학생들에게 파이썬을 가르치고 피보나치수열을 구하는 함수를 짜라고 해 봐야 이거 어디에 써먹으라는 것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아주 드물게 여기서 중요한 건 피보나치수열 자체가 아니라 재귀함수(Recursion)의 원리를 학습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공에 맞게 응용할 생각을 하는 기특한 학생을 만날 수도 있지만 전적으로 그걸 기대하는 건 좀 무책임한 일 같습니다.


전교생에게 일률적으로 프로그래밍의 기초를 가르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으니 전공 수업에 코딩, 더 나아가 프로그래밍을 접목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최근 대학에서 강조하는 몇 가지 권장 혹은 의무 사항 덕분에(?) 매우 정당하게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지난 몇 학기 동안 제 수업에서 단계적으로 테스트를 거쳐 2025학년도 1학기부터 거의 모든 수업에서 적용하는 방식입니다.




PBL과 SDG

대학에서 PBL (Problem/Project Based Learning) 수업이 강조된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입니다. 강의 중심의 전통적인 이론 수업 대신 실제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프로젝트를 완성하며 학생들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진행되는 수업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PBL만큼 코딩 교육에 적합한 수업 방식도 없습니다. 더불어 최근 많은 대학에서는 교과목이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달성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하는지 지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단과대학, 학과, 전공 특성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저는 이러한 요구사항들이 코딩 교육을 효과적으로 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제가 진행하는 학부 ‘서양음악사 3 & 4’ 수업은 영어 전용 PBL 수업입니다. 이 수업의 목표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온라인, 멀티미디어 오픈 소스 교과서를 제작하는 것. 더불어 이 수업은 SDG 4 ‘양질의 교육’을 달성하는 데 기여합니다. 흥미롭게도 유엔은 SDG 4 달성에 필수적인 요소로 공개교육자원(Open Educational Resources)을 명시합니다. 누구나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활용 가능한 교육 자원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image (4).png 이미지 출처: Engineering at Meta

오픈 소스(Open Source)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요약하면 소프트웨어의 소스 코드(Source Code), 말하자면 설계도가 공개되어 있는 겁니다. 상업용 소프트웨어는 기본적으로 오픈 소스가 아닙니다. 소스 코드가 공개되면 원칙적으로 누구나 코드를 들여다볼 수 있고 심지어 특정 조건 하에 그 코드를 바탕으로 더 나은 상품을 개발할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돈 못 법니다. 거의 대부분의 상업용 소프트웨어가 오픈 소스 언어나 도구를 사용한다는 게 흥미롭지만 이건 다른 이야기이니 패스. 다만 지금 이 글에서 강조하는 교육이 목적이라면 그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PBL로 진행되는 서양음악사 수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학생들이 ‘자신이 읽고 싶은 교과서’를 직접 쓰는 데 있습니다. 수강생의 전공과 성향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음악회 ‘프로그램 노트’ 형식으로 쓰기도 하고, 보다 전통적인 교과서 방식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고로 ‘서양음악사 3 & 4’ 수업은 안타깝게도 더 이상 필수 교과목이 아니어서 반드시 수강할 필요도 없고, 필수 과목인 ‘서양음악사 1 & 2’를 수강한 학생들이 주로 선택하기 때문에 이런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덧붙입니다.




'지옥에서 온 문서 관리자'

image (5).png 이미지 출처: Medium

교과서 집필은 깃허브(GitHub)에서 이루어집니다. 깃허브는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사용하는 버전 관리 툴 깃(Git) 플랫폼입니다. “입사할 때 모르면 X욕 먹는” 대표적인 툴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전 세계 수많은 기업, 개발자들이 사용합니다. 프로그램을 완성하는 과정은 한 편의 글을 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매일매일 크고 작은 수정이 이루어지고 중요한 시점에 저장을 합니다. 글을 쓰다 보면 그런 적 있지 않나요? 한참 쓰고 보니 지난주 삭제한 부분 중 다시 살리고 싶은 내용이 있는데 계속 같은 파일에 저장하는 바람에 되살릴 방법이 없는 경우. 최근 많은 글쓰기 도구들은 이럴 때를 대비해 수시로 저장 포인트를 기록하고 언제든지 되돌릴 수 있도록 해 줍니다. 하지만 깃을 사용하면 이 과정을 조금 더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특히 협업이 필요한 경우(그리고 대부분의 프로그램 개발은 협업으로 이루어집니다) 깃/깃허브는 더욱 빛을 발합니다.


깃허브가 놀라운 진짜 이유는 많은 개발자들이 자신의 저장소에 소스 코드를 저장하고 공개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코드와 역량을 자랑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플랫폼은 없기에 개발자들 사이에서 깃허브 저장소는 종종 CV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다른 개발자들의 저장소를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코드를 발견하면 그렇게 흥분될 수가 없습니다. 많이 배우기도 하고 또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특정 라이센스에 따라 소스 코드를 자신의 저장소로 복사(Fork)해서 원하는 방식으로 수정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경우 그렇게 작성된 코드 역시 오픈 소스로 공개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기도 합니다.

image (6).png 음악이론 교재 Open Music Theory의 목차. 이미지 출처: Open Music Theory

좋은 예가 Open Music Theory라는 음악이론 교재입니다. 제목 그대로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소스 코드 전체가 깃허브 저장소에 공개되어 있고, 실제로 그 소스 코드를 가져다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수정해 Open Music Theory, ver. 2를 공개한 이론가들도 있습니다. 저는 실제로 이 교재들을 수업에 사용합니다. 이유는 많지만 오픈 소스 교과서, 즉 공개교육자원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교재 구입비를 절약할 수 있습니다. 내용도 훌륭하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제가 보충합니다. 그리고 그건 어떤 훌륭한 교재를 사용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실천하지 못하고 있지만 부족한 부분을 학생들과 함께 보완해 Open Music Theory, ver. 3을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서양음악사 수업에서 학생들과 함께 오픈 소스 교과서를 제작하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재는 비싸고 적어도 학생들 기준에서 읽기 어렵거나 재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다 떠나서 스마트폰 시대에 아직도 그 두꺼운 종이책을 읽으라고 하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놀라운 건 ‘지옥에서 온 문서 관리자’라고 불릴 정도로 악명 높은 깃을 배우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학생들이 곧잘 한다는 겁니다. (요즘 학생들은 선생님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똑똑합니다.) 교과서 집필은 기본적으로 마크다운(Markdown) 문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것도 배워야 하지만 노션(Notion)에 자신의 삶을 통째로 입력할 정도의 학생들에게는 어렵지 않습니다. 깃허브 스타일의 마크다운은 다소 제한적이기 때문에 HTML/CSS도 조금 알아야 하지만 ‘자신들이 읽고 싶은 서양음악사 교과서’라는 단서가 붙어서인지 학생들도 의욕을 갖고 합니다.




음악학자가 오픈소스에서 배울 수 있는 것

물론 코딩이 프로그래밍은 아닙니다. 하지만 코딩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나면 프로그래밍에 대한 장벽도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봄 학기 처음 개설되는 교양과목 ‘질병과 장애, 고통의 음악학’에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목표는 학생들과 함께 NYU LitMED에 필적하는 음악 의료인문학 DB를 구축하는 것. 역시 깃허브에서 대부분의 작업이 이루어지겠지만, 이번에는 오픈 소스 DB 관리 시스템 MySQL에 대한 교육도 병행합니다. 첫 학기라 어려움도 있을 테지만 첫술에 배부를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음 학기, 그다음 학기, 자신이 직접 작성한 데이터가 누적되고 활용되는 모습을 보며 학생들도 뿌듯함을 느꼈으면 합니다.


이왕 하는 김에 이번 학기부터는 오래전부터 주장한 Open Syllabus 프로젝트도 시작하려고 합니다. 문자 그대로 강의계획서를 오픈 소스로 공개하고 나누는 겁니다. 흥미롭게도 이공계 분야에서는 전혀 놀랍지 않은 전통이지만 음악학을 포함한 인문학 분야에서는 다소 보수적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강의계획서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한 해외 학자를 본 적도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공개’하고 ‘공유’했을 때 발전할 여지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음악학자들도 남들이 뭐 하는지 잘 몰라요. 저 사람은 강의를 어떻게 할까, 궁금할 때도 많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졌군요. 2025년. 연구도 해야 하는데 교육과 관련된 계획만 벌써 한가득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연구와 교육은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요즘’ 학생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이라서 더욱 절박합니다. 이에 대한 논의는 물론 늘 있었습니다. 하지만 관건은 단발성 논의가 아니라 지속가능성에 있습니다. 음악학자들이 오픈 소스 개념을 수용하고 실천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프로그래머’가 될 시간입니다.




� editor’s note
이 글이 흥미로웠다면, 음악학자 계희승의 2023년 논문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을 위한 공개음악학”을 함께 읽어보세요 �









76호_VIEW 2025.02.20.

글 계희승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공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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