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이하 ‘케데헌’)의 열기가 뜨겁습니다. 6월 20일에 공개된 이후, 며칠 되지 않아 넷플릭스 차트 글로벌 부문 1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더니 다수의 OST 수록곡들이 빌보드 핫 100에 진입했습니다. ‘케데헌’의 배경 장소로 그려지는 남산과 북촌 한옥마을 같은 서울의 명소들이 재조명되고 있어요. 나아가 ‘호랑이 뱃지’나 ‘흑립 갓끝 볼펜’처럼 영화가 담아내는 한국 전통 문화 관련 굿즈를 사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에 이전 보다 더 많은 방문객이 몰리고 있습니다. 와, ‘케데헌’이 일으키는 열풍에 온 몸이 달아오르는 듯합니다.
놀라운 점은 가상의 케이팝 그룹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 애니메이션이 한국의 문화 산업계가 아닌 해외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케데헌’은 일본 자본에 기반하는 미국의 소니 픽쳐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케이팝에 많은 관심이 있는 두 감독이 공동으로 연출했지요. 한 명은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 다른 이는 부인이 한국계 작가인 미국인 크리스 아펠한스. 세계 대중문화계에서 담당하는 한국의 역할이 어느새 수신자에서 발신자로 바뀌었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듭니다. 케이팝이 현재 대중음악계에서 ‘하나의 음악 양식’으로 주류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요. 해외 문화산업계 중심지에서 한국 문화 풍경 속 케이팝 신을 환상적이면서도 유쾌하게 표현하는 만화 영화가 나왔다는 사실을 되새기니 말입니다.
‘케데헌’은 악마 사냥꾼 3인조 걸그룹 ‘헌트릭스’가 악령 세계에서 등장한 5인조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를 물리치는 이야기를 엮어냅니다. 먼 옛날부터 한국에서는 ‘귀마’가 악을 조종했고, 악귀는 그 산하에서 인간의 혼을 빼앗으려 해 왔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항하며 ‘헌터’는 대대로 다른 모습으로 거듭나며 악귀를 물리쳐 왔습니다. ‘혼문’을 만들어 오면서요. 그것은 노래로 사람들을 감동시켜 악귀가 지상으로 올라오는 것을 막는 정신적 방패막. 이번 대에 헌터는 ‘헌트릭스’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무대 위에서는 글로벌 스타, 무대 밖에서는 악마 사냥꾼으로 활동하면서요. 머지 않아 이들은 인간으로 가장한 매력적인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와 마주합니다. 그리고 이 그룹과 인기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피할 수 없는 한판의 승부를 향해 거세게 돌진합니다. 한 마디로 ‘케데헌’은 무당 ‘헌트릭스’와 저승사자 ‘사자 보이즈’가 화려한 케이팝 연행을 수행하며 벌이는 판타지이자 뮤지컬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케데헌’ 붐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케데헌’이 한국 문화 풍경의 조각들을 비교적 자세히 그려내는 가운데, 보편적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케데헌'이 포착하는 한국 문화적 신(scene)을 볼까요? 먼저 케이팝 콘서트장이 눈에 띕니다. ‘케데헌’은 실제 콘서트장에서 그룹과 팬덤을 연결하는 ‘케이팝 스타일’을 섬세하게 포착해 영화 안에서 생생하게 빚어냅니다. 그 스타일이란 힙합과 EDM 비트에 맞추어 마성의 ‘후크’를 들려주는 댄스음악, 다양한 형태의 조화를 보이는 군무,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서사가 긴밀하게 연결된 양식일 것입니다. 헌트릭스와 사자 보이즈는 이러한 케이팝을 위한 공연을 근사하게 펼쳐냅니다. 블랙핑크와 라이즈처럼요. 한편 극 중에서 팬들은 친숙한 케이팝 팬덤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드러냅니다. 헌트릭스 콘서트 현장에서 다양한 색깔로 반짝이는 응원봉을 들고 환호성을 지르며 대규모로 열광하는 그 모습을. 떼창의 여러 방식을 다 보이지는 않지만, 노래 중 자신들이 불러야 할 ‘팬 파트’는 놓치지 않고, 한목소리로 부릅니다.
조금 더 시야를 넓히면, 케데헌이 ‘고증’하는, 케이팝 콘서트장 바깥 저 너머의 풍경이 눈에 담깁니다. 우선 7호선 자양역, 유명인의 방문 인증샷이 벽면에 걸려 있는 한의원, 시원하게 몸이 풀리는 대중 목욕탕 같은 서울 시민이 거치는 장소부터 남산타워, 낙산공원 성곽길, 북촌 한옥 마을 등의 명소까지 ‘케데헌’은 집 주변 풍경을 효과적으로 담아냅니다. 그러다 영화는 한국에서 흔히 보이는 식탁 위를 흥미롭게 드러냅니다. 김밥과 컵라면의 찰떡 조합 메뉴와 티슈 위에 놓인 젓가락을 말입니다. 그러는가 하면, ‘케데헌’은 한국 문화적 맥락 속에서 쓰이는 한국어를 그대로 쓰기도 합니다. 예컨대, 헌트릭스가 후배 아이돌 그룹을 부를 때, ‘후배’라고 말합니다. 나아가 ‘케데헌’은 전통문화의 편린들을 장면 곳곳에 담아냅니다. 과거의 서민들부터 ‘사자 보이즈’가 표현하는 저승 사자, 헌트릭스의 루미와 사자 보이즈의 진우를 매개하는 독특한 캐릭터이자 조선 시대 호작도에서 악귀를 물리치는 동물로 그려진 호랑이까지 다양한 전통의 요소들을 흥미롭게 소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국 문화의 신에 ‘케데헌’이 곁들이는 보편적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고통, 대립, 화합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개인 및 소집단의 성장과 사회 차원의 권선징악의 서사로 보입니다. 이는 ‘문’(紋, 무늬)에서 ‘곰’(고함)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문’은 헌트릭스 멤버 루미가 자신의 상처인 악의 무늬를 그대로 수용하는 가운데, 자신과 타 멤버가 모두 성장하는 단계를 말합니다.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악령인 경우, 아이의 몸에 특별한 무늬가 생깁니다. 루미에게는 이 문양이 있습니다. 악령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지요. 그 무늬는 그에게 오랜 기간 감추어 온 상처입니다. 그 상처는 결국 멤버들에게 드러나고, 갈등의 씨앗이 됩니다. 그러나 루미는 자신의 상처를 쓸어안으며 스스로를 회복합니다. 그리고 노래 ‘What It Sounds Like’의 전반부를 나지막이 독창합니다. ‘상처는 나의 일부’(The scars are part of me)라고 하면서요.
이때, 잠깐 귀마의 유혹에 홀렸던 다른 멤버들도 루미의 진실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이어서 순차적으로 노래합니다. 그러면서 루미, 아니 헌트릭스는 더 강하게 거듭납니다. ‘곰’은 그렇게 성장하면서 같은 곡의 후반부를 헌트릭스가 악귀들에 대적하며 고함치듯 열창하는 단계를 말합니다. 곡이 끝날 때 이렇게 노래하지요. “마침내 진실을 마주해. 목소리를 모두 모아. 어둠이 빛을 만날 때 여기에 울려 퍼져”(Truth after all this time our voices all combined. When darkness meets the light, this is what it sounds like.)
흥미로운 점은 헌트릭스가 성장하고, 밖으로 나아가는 실천이 목소리를 통해서 수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헌트릭스는 대대로 내려오는 주문을 한 번씩 되뇝니다. “우리는 헌터, 강인한 목소리. 노래로 악령을 물리쳐, 망가진 세상을 바로잡네.”(We are hunters, voices strong. Slaying demons with our song, fix the world and make it right). 헌트릭스는 목소리를 통해 서로를 확인하고, 성장시켜 악마 퇴치의 목표를 이룹니다. 이들에게 목소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개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특별한 거울이자 사회적 이상을 구현하는 필수적 수단일 것입니다. 또한 개인 상처와 집단 갈등을 극복하고 새롭게 거듭나는 방법이겠지요.
어느 누구보다 루미가 그렇습니다. 루미의 목소리는, 다수 멤버들과 구별되는 흔적으로 인해 한때 주변으로 밀려난 소수자인 그가 본인의 상황을 딛고 힘차게 일어나도록 한 지팡이니까요. 루미는 숨기고 싶은 자신을 독특한 존재로 새롭게 바라봤기에 스스로를 회복하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은 것 같습니다. 마치 흥미를 잃은 ‘문’ 자에서 ‘곰’ 자를 발견해 즐거움을 느끼는 것처럼. 헌트릭스에게 목소리는 자신과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담을 수 있는 멋진 그릇인 것 같습니다. ‘케데헌’은 바로 이러한 목소리가 담겨 있는 케이팝 양식, 그 시대적 노래들을 들려주기에 지금까지 긴 감동을 남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88호_VIEW 2025.08.21.
글 권현석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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