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라디오 95.9] 건강한 아침 이진입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각종 질환에 대한 정보와 궁금증 풀어보고 있는데요.
매주 수요일에 긴급한 순간, 당황하지 않도록 미리 알아두면 도움될 만한 정보 알려드리고 있죠?
오늘도 응급의학과 전문의, 최석재 선생님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 오늘은 결핵과 관련된 응급상황에 대해 말씀 드려볼까 합니다. 결핵 하면 잘 못 입고 못 먹던 시절에 걸리던 병 아닌가 하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요,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결핵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폐 사진을 찍어보면 결핵을 앓았던 흔적이 있는 분들도 많고 특히 무료진료소에 봉사진료를 나가보면, 결핵을 진단받고 나서도 제대로 치료받지 않는 분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결핵에 대해서 발생률, 유병률, 사망률이 OECD 국가들 가운데 부동의 1위인 상황입니다. 결핵에 있어서 우린 아직 후진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특히 중요한 결핵과 관련한 응급상황을 좀 짚고 넘어가려 합니다.
>> 결핵의 증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객혈, 피가래지만 그 외에도 결핵의 증상이 다양합니다. 결핵균이 장이나 신장, 척추에도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데요, 이런 폐외결핵은 다른 사람에게 감염을 일으키진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경우는 폐로 오는 폐결핵이라서 오늘은 폐결핵을 중심으로 설명 드리겠습니다.
결핵에 걸리게 되는 과정은 환자 폐에 있던 결핵균이 기침할 때 나와서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다른 사람 폐에 호흡기를 통해 들어가 전염되게 됩니다. 건강한 사람은 바로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잠복 결핵이 되고요,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2주 이상의 기침과 미열, 피로감이 있을 수 있고 앞에 말씀드린 선홍색 객혈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증상만으로는 감기인지 결핵인지 알기가 어려워서 2주 이상 기침이 지속되면 호흡기 내과에서 가래검사와 혈액검사를 시행해 보는 게 안전하겠습니다.
치료는 6개월에서 9개월 정도 약을 꾸준히 복용해야 하는데 약 복용하고 2주가 지나면 전염력이 사라져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꾸준한 약 복용인데 약이 개수가 많고 부작용이 있는 경우가 있어서 어떤 분들은 치료를 자의로 중지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러다 2차 결핵약에도 치료 실패하면 소위 슈퍼결핵이라 해서 내성 결핵으로 넘어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객혈 때문에 응급실에 오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객혈이 있다고 다 결핵은 아니고요, 기관지염이 심한 경우나 피를 묽게 만드는 와파린이라는 약을 복용하는 경우에도 객혈로 오시기도 합니다. 출혈양이 적으면 지혈제를 쓰면서 입원치료를 하게 되고 양이 많으면 응급 시술이 필요한 경우도 생깁니다.
한번은 동료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근무하는 중에 대량 객혈 환자가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젊은 남성인데 오래전 결핵을 앓고 치료를 다 받았지만 합병증으로 객혈을 경험한 적이 있는 분이었어요. 이번에도 기침을 하다 갑자기 다량의 출혈이 발생해 119 구급대원의 도움을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 결핵에 의해 녹아버린 폐조직이 공동, cavity 라는 공간을 만들면 그 안에 노출된 작은 혈관들이 기침할 때 쉽게 찢어져 출혈이 발생하게 됩니다. 산소와 결합된 밝은 선홍색 피가 기침할 때마다 울컥울컥 나오게 되죠. 기침이 계속될 땐 차라리 환자가 버텨주는 상황입니다. 이 출혈이 멈추지 않으면 순식간에 저산소증으로 의식을 잃게 되고, 그럼 기침 반응조차 없어지면서 피를 뱉어내지 못해 사망하게 됩니다. 다른 질환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객혈 환자를 보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죠.
>> 네, 지혈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팔다리에 출혈이면 밖에서 누르면 되고 하다못해 배 안쪽 출혈이면 급히 배를 열면 접근이라도 할 수 있잖아요? 객혈은 당장 호흡이 안 되니까 초 단위가 급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단 환자의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서 양쪽 기관지 중 한쪽으로 호흡이 유지될 수 있도록 두 개의 통로를 가진 특수 기관 삽입술을 해야 합니다. 다음 치료 순서로 제가 배울 땐 출혈이 발생한 한쪽 폐 일부를 응급 수술로 묶어 지혈한다고 배웠습니다. 문제는 수술방까지 무사히 환자를 살려서 올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죠.
다행히 요즘은 의학의 발달로 수술보다 좋은 방법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혈관 내 시술이 발달해서 다리에서 혈관을 타고 들어가 기관지 동맥을 막는 방법이 생긴 건데요, 이걸 기관지 동맥 색전술이라고 합니다.
>> 이런 위험한 환자가 온다는 연락이 오면 솔직히 당황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폐엽 절제 수술이나 동맥 색전 시술도 거의 하지 않는 병원이라 야간에 이런 환자가 오면 대책이 없는 상황이긴 했죠. 당연히 대학병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또, 다량의 객혈을 한 환자를 아무 조치 없이 긴 거리를 이동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 기도확보라도 하고 봐야겠단 생각에 환자를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 환자가 도착하고 나서 다시 한번 자세히 확인하니 출혈량이 상황실에서 들은 것보다 더 많았습니다. 집에서 쏱은 출혈량만 우유팩 세네 개는 족히 되었고 119 이송 중에도 한차례 피 가래를 쏟아냈다고 하네요. 일단 호흡이 잘 유지되는 게 확인되어서 낮아진 혈압을 유지시키기 위해 급히 양쪽 팔에 굵은 혈관을 잡고 지혈제 섞은 수액과 응급수혈 치료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다음으로는 흉부외과 수술이나 혈관 내 색전술 시술을 시행하고 중환자실에서 지켜보는 과정이 필요했죠.
>> 출혈이 계속 지속된다면 고려했어야했죠. 다행히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출혈은 잠시 멈춘 상황이었습니다. 산소마스크만으로 산소포화도 수치가 유지되어 기관삽관술을 하진 않아도 되었습니다. 환자분은 동맥 색전 시술 받고 중환자실에서 며칠 계시다 지혈이 잘 된 걸 확인하고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 구분법이요? 그게 참 어렵죠. 날이 추워서 감기에 걸린건지 요즘 또 고열나는 독감도 돌잖아요? 독감에 걸린건지 결핵균에 감염된건지 단번에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일반적인 감기면 1~2주 이내에 낫는다고 하는데 그것도 푹 쉬었을 때 얘기지 2주 넘어가는 감기도 많죠. 객혈이나 체중감소가 좀 특징적인 소견인데 그런 게 없더라도 2주 이상 넘어가는 기침이면 일단 호흡기내과에서 검사받아보는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 결핵을 앓고 계신 분들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딱 한가지입니다. 결핵약 드시기 쉽지 않으시겠지만 본인을 위해서도 타인을 위해서도 끊지 말고 끝까지 복용해주셔야 한다는 거. 그리고 식사도 잘 하셔야 결핵 합병증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결핵이 이렇게 만연되어 있어도 우리 사회가 결핵에 대한 대처가 아직도 부족합니다. 음압 격리병실이 준비되어 있어야 초기 감염력이 있는 결핵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는데 준비 안 된 병원도 많고요. 무료진료소에서 결핵환자를 진단해서 의뢰하면 감기증상 말곤 특별한 증상이 없으니까 환자가 협조가 안 되어서 그냥 퇴원해 버린 걸 나중에 확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핵에 대해서는 협조가 잘 안 되는 환자들도 많기 때문에 공적인 영역에서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