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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응급의료의 붕괴 상황입니다

211213 동아일보 칼럼

응급의료는 언제나 그랬습니다. 사회에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온 몸으로 그 위기를 받아들이는 분야이지요. 90년대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 재난 사건 사고가 그랬고, 1998년 IMF 경제 위기 때,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때 발생한 수많은 자살 시도자와 갑자기 늘어난 노숙인과 빈민의 사회 문제가 그랬습니다. 그런 응급의료에 2020년 초, 코로나19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상으로 2021년 말, 다시 한번 심각한 위기가 찾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까지 우리는 시민 여러분의 희생과 특히 소상공인 사업주 분들의 피나는 희생 덕분에 코로나19의 전파를 타국에 비해 비교적 잘 막아내고 있었습니다. 올해 중순 더 강력해져 나타난 델타 변종에 다시 한번 방역과 백신 접종, 거리두기를 강하게 시행하면서 감염자 수와 위중증 환자 수를 어느 정도 컨트롤하면서 어렵지만 위기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 11월 초, 위드 코로나 정책을 시행한다는 말이 나온 뒤 분위기는 급반전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억눌려 있었던 것일까요? 길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젊은이들의 거리엔 수많은 인파가 몰려 먹고 마시고를 다시 시작하면서 술 마시고 다친 환자들이 응급실로 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위드 코로나 정책을 할 만큼 의료 자원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나? 특히 응급의료의 경우에는 발열환자, 호흡기 증상 환자가 오면 경한 환자야 외래처럼 보고 집에서 대기하며 확진 검사 결과를 기다리라고 하면 되지만 중한 환자는 음압 격리실에서 확진 검사가 나올 때까지 길게는 24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큰 혼란이 벌어지겠다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11월 후반부터 문제가 심각해짐이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확진자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고 확진자를 생활치료센터에서 입소시켜 보는 것에도 자원이 모자라 결국 재택치료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확진자가 집에서 지내면서 하루 전화 두 번으로 상태를 확인한다는 개념인데 젊은 환자들이야 잘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기저질환이 있는 노인분들은 쉽게 바이러스성 폐렴 증상이 오면서 악화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초기부터 스테로이드와 항바이러스제, 항생제 치료를 통해 합병증을 막을 수 있었을 환자들이 악화되어 응급실의 음압 격리실에 실려오는 경우가 많아졌고 12월 들어 서울과 수도권 내 응급실의 음압 격리실이 가득 차서 환자가 응급실 내로 들어오지 못하고 119의 해당 지역을 넘어서 먼 거리로 이송을 가야 하는 일이 생기다 못해 이제 들어갈 병원이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겨울 들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아닌 다른 감염질환들도 늘고 있고 이 환자들도 결국 응급실의 음압 격리실 자리가 나야 진료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응급실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응급실 내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중환자실 병상 가동률이 90%가 넘어가면서 응급실 음압 격리실에서 빠지지 못하고 1주일씩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이것이 응급의료의 붕괴가 아니고 무엇일까요? 응급한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응급의료진들은 반복되는 확진자 노출과 이로 인한 자가격리, 남은 인원들의 연속 근무와 과중한 업무 부담으로 지쳐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상당수 응급실 간호사분들은 도저히 버티기 힘들다며 휴직, 퇴직에 들어가고 있어 근무 스케줄 표를 짤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분들을 욕할 수 있을까요? 제가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그럴 수 없습니다. 헌신적으로 에너지를 쏟다 못해 결국 자신의 직업적 사명조차 포기하기에 이른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지면을 통해 사회와 정부에 이렇게 요청드리고 싶습니다. 코로나19 환자들이 제때 진료받을 수 있는 시설 확충과 인력 확보가 시급합니다. 확진자가 아니어서 응급실 음압 격리실에 있다가 확진 판정이 나왔을 때 바로 이송되어 다음 응급환자를 받을 수 있는 도로의 정체 없는 흐름과 같은 원활한 프로세스가 필요합니다. 최근 각 병원에 코로나19 환자를 입원시킬 전담 병동을 만들도록 행정명령이 떨어졌다고 들었습니다. 행정명령만 내린다고 없던 시설이 뚝딱 만들어질 리 만무입니다. 병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의료진들도 자신의 직업적 사명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지원책이 필요합니다.


더하여 비코로나 응급 환자들이 응급실에서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준비도 위의 대책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음압 격리실이 있는 응급실을 추가로 확보하고 공간이 안되면 외부에 의료용 음압 텐트라도 만들어 119를 통해 이송되는 중증 발열 또는 호흡기 증상 환자가 바로 수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응급실에도 코로나 병동 못지않은 인력 확충이 필요합니다. 응급실 인력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대책이 필요합니다. 인력이 더 빠져나가선 이제 도저히 응급실이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시민들께도 요청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상황은 내가 아파도, 내 가족이 아파도 발열, 호흡기 증상이 동반된 상황이라면 제때 응급상황에 대한 치료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가능한 한 집과 직장에서 타인과 접촉을 피하고 피치 못하게 만날 일이 있다면 마스크와 손 씻기를 철저히 지키면서 발열, 호흡기 증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증상이 나타났다면 지체 말고 가까운 보건소에서 코로나19 확진 검사를 받아두셔야 합니다. 그래야 혹시라도 악화되었을 때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지병이 있는 환자나 보호자는 특히 필요한 의료적 도움을 주치의와 상의하여 미리 받아 두시고 예상되는 응급 상황에 대한 대처를 해 두고 계실 것을 권합니다.


지금까지 많은 위기를 견뎌내고 이겨낸 우리입니다. 이번 위기도 잘 이겨낼 것으로 믿습니다. 그 위기 극복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기록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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