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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썰, 환자 몸에서 기생충 파낸 이야기

응급실 이야기


(응급의학과 전문의인 동료로부터 전달 받은 이야기 입니다.)



전공의 1년차때에 겪었던 일입니다.



여느 때처럼 이제 곧 밀어닥칠 환자를 맞이할 준비를 하며 긴장하고 대기하고 있던 와중에, 이른 아침에 한 40대 남자 환자가 아침에 자꾸 엉덩이 주위를 긁으며 마치 술취한 사람처럼 다리를 이리저리 베베 꼬면서 응급실로 들어왔습니다.



환자의 때깔만 봐도 무슨 병인지 알아맞출 수 있다는 응급의학과만의 자신감으로 충만해있던 시기에, 여태 봤던 환자와는 달리 어떻게보면 우스꽝스러워 보였던 환자의 그 모습은, 환자의 때깔로는 도대체 어떤 병일지 종잡을 수 없었으며, 어디가 불편해서 응급실로 왔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호기심이 일고 의욕이 넘쳐 신환이 들어오면 한창 몸부터 나가던 혈기왕성 했던 저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먼저 환자에게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그랬더니 돌아오는 환자의 대답은 "엉덩이랑 그 안쪽이 이상해요" 라고 하며, 마치 한 개그프로에서 대중을 웃기기 위해 걷는 듯하게 갈지 자로 휘청이는 발걸음을 하며 몸을 배배꼬는 등 여전히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1년차였지만 당시까지 수없이 많은 경증 환자를 마주했던 저는 나름대로 경증환자를 보는데는 도가 텄었지만 여태까지 한번도 보지못한 그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본 저는 의사로서 제일 처음 접근해야 하는 주호소(Chief complaint)를 뭘로 해야 하나 하는 첫번째 문제에 곧바로 직면하게 되면서 머릿속이 새하얘졌습니다.



좀 더 간단히 얘기하면, "대체 이게 무슨 경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과연 신체적 문제가 있긴 한 환자일까, 정신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그냥 나를 떠보려고 하는걸까?" 등등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었던 것 같습니다.



주호소를 파악해야, 그 다음 신체검진을 하고, 추정되는 진단을 내리고, 그 진단을 내리기 위해 어떤 검사를 해야 하는지 계획을 세울 수 있었지만 주호소 조차도 제대로 파악이 안되니,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당장은 어떻게 해야할지 뾰족한 수가 없어, 일단 신체검진이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에 환자의 엉덩이부터 보기로 했습니다.



사방에 커튼을 치고 환자에게 팬티까지 다 내려보라고 하였고, 환자의 엉덩이를 눈으로 마주하였습니다.



외관상 엉덩이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혹시 몰라 엉덩이를 손으로 직접 만져보았으나 딱히 이상한 점은 찾을 수 없었지만 환자는 그 와중에도 몸을 배배꼬며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환자에게 재차 물어보았습니다.



"환자분, 엉덩이에는 육안적으로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기가 불편한 것이 맞나요?" 라고 했더니 환자는 "아, 거기가 아니고, 항문 안쪽인 것 같아요" 라고 하더군요. 알고봤더니 엉덩이가 아니라, 항문 안쪽을 이야기하는 듯 했습니다.



항문 내부 및 직장을 손가락으로 촉진하는 것을 "직장수지검사" 라고 하는데, 보통은 환자가 혈변을 주소로 왔을 때 직접 항문 내부로 손가락을 넣어 대변 색깔을 확인하고, 항문 내부에 치핵이 있는지 확인하는 정도로 시행하는 신체검진입니다.



이 환자의 경우에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았으나, 항문 내부가 이상하다고 하니 제가 환자를 위해 지금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리 생각을 쥐어짜내 보아도 직장수지검사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어, 결국 뭐가 문제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 채 일단 해보기로 했습니다.



"자, 이제 손가락이 들어갈 텐데, 좀 아플 수 있어요" 라는 말과 함께 젤리를 듬뿍 묻힌 세번째 손가락을 환자의 항문에 조심스럽게 넣었습니다.



이리저리 손가락을 휘저어보았지만 처음에는 아무 이상한 점이 없는 듯 했습니다.



몇번을 휘저어보다가 빼려는 찰나,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손가락 끝에 뭔가 딱딱한 굵은 실 같은 것이 걸렸습니다.



그것은 여태 수많은 직장수지검사를 해보았으나 한번도 느끼지 못한 새로운 감촉이었습니다.



"어? 이거 뭐지?, 이물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여러번 그 감촉을 느끼며 뭔가 항문 밖으로 빼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가락을 한개밖에 넣지 않은 상태라, 손가락을 하나 더 넣어서 손가락 두 개를 이용해서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들듯이 그것을 잡아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환자분. 항문 안에 뭔가 이물질 같은게 걸려있는 것 같은데, 손가락 한 개를 더 넣어서 한번 빼내보겠습니다. 통증이 좀 있을 수 있지만 조금만 잘 참아주세요" 라는 말을 환자에게 하고, 검지손가락에 젤리를 듬뿍 묻혀 검지손가락을 항문 안에 하나 더 넣었습니다.



두 손가락으로 드디어 그 물건을 잡았고, 그대로 빼내보려 하였으나, 생각했던 대로 역시나 잘 되지 않았습니다.







몇 번 시도해보다가 잘 안되어, 두 손가락으로 그 물건을 잡은 상태에서 상하좌우로 이리저리 흔들어보니 조금씩 조금씩 빠져나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드디어 항문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세상에, 눈으로 본 그 물건을 처음 봤을 때 든 생각은 끊어진 노란 일자 고무줄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손으로 그 물건을 잡아당길 때마다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이 계속 그것이 빠져나오는 것을 보면서 틀린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나온 그 물건의 길이는 무려 2.3m 나 되는 거대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더 충격적인 것은 꺼낼 당시에는 몰랐지만 다 꺼낸 뒤 일자로 쭉 펼치고 보니 심지어 그 녀석이 제자리에서 조금씩 꿈틀거리기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아, 기생충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꿈틀거리는 괴상한 녀석의 모습에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소리지를 뻔 했습니다.



그 녀석을 꺼내고 나니 환자는 이후 굉장히 편안해하면서, "아 이제 좀 살것같다" 라고 하며, 마치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 듯한 상쾌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커튼 친 그 비좁은 공간에서 한명은 경악해하고, 또다른 한명은 그 어느때보다 상쾌해하는, 역설적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하튼 환자의 주호소인 "엉덩이가 이상해요" 는 결국 상상치도 못했던 방법으로 말끔히 해결이 되었고 저는 의국에서 한번도 없었던 역사를 써낸 위인(?)이 되었습니다.



알고보니 환자는 낚시를 좋아해 민물회를 자주 먹는 분이었고 최근 10년 간은 한 달에 2-3회는 꼭 먹을 정도로 자주 민물회를 즐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회충약은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하시네요.



환자는 추후 소화기내과 외래로 나와서 진료를 보기로 하고 퇴원을 하였고, 저는 그 기생충을 들고 저희과 의국원 및 교수님들께 보여드렸으나 의국에서는 교수님을 포함하여 그 기생충에 대해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고, 결국 저는 임상과를 하면서 한번도 접촉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기생충학 교수님께 그 괴상한 녀석을 보여드리게 되었고, 교수님께서도 흥미로워하시며, 한번 파악해보고 연락을 줄 테니 며칠정도 시간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이후 약 3~4일 뒤 "광절열두조충" 이라는 명쾌한 답변을 얻게 되었고, 이 조충의 특성상 위장관의 어느부위에서도 기생할 수 있는데, 몸안에서 조용히 자라며 수없이 번식을 하다가, 공간이 모자라면 입이나 항문으로 한두마리씩 튀어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환자는 추후 소화기내과 외래에서 시행한 내시경에서 위와 십이지장에서 광절열두조충을 추가로 발견하여 시술적 치료로 무사히 제거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생충 #광절열두조충 #조충 #민물회 #항문 #고무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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