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언론사에서 일하면서 월급 못 받은 경험은 없었다.
너 때문에 내가 손해 본 게 얼마인지 아냐?
"성진 씨는 왜 굳이 기자가 되려고 해요?"
어느 작은 언론사에서 면접 볼 때 대표님이 물어보시더라.
"그래도 여긴 돈 때 먹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양심에 털 난 사람들은 없잖아요"
라는 말이 무의식적으로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도저히 목소리에 힘이 안 들어가더라.
내가 있던 밑바닥이 이런 수준이었다는 걸 스스로 드러내는 게 창피해서-
"너 때문에 내가 손해 본 게 얼마인지 아냐?"
너의 노동력을 착취했지만 땡전 한 푼도 지급할 생각이 전혀 없으신 클라이언트가 자주 애용하는 대사이다.
몬트리올 같았으면 '노동자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행위 자체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겠지만 한국에선 아직까지 디자이너를 개똥으로 생각하는 건지, 이런 비극적인 소식들이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린다.
공평한 조직문화, 효율적인 프로세스, 그리고 무엇보다 혁신을 이야기해야 할 4차 산업혁명의 파도 속에서 사회 전반에 걸친 극심한 스트레스는 한국사회의 우울증과 자살률에 가장 중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France 24에서, 한국의 갑질 문화를 주제로 제작된 르포르타주를 접한 적이 있다. « Le gapjil »에 대한 France 24 뉴스는 한국인으로서 정말 부끄러운 소식이었다. 보다 경력이 짧고 젊은 나에게 욕을 할 때, 화를 낼 때, 혹은 부당하고 과도한 요구를 할 때, 심지어 폭력을 쓸 때, 그 어떤 항의도 할 수 없던 것이 현실이다. 물론 항의를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고 활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섣불리 행동으로 옮겼다간 그쪽 필드에서 영원히 Out이 될 수도 있는 리스크가 있지 않을까 싶어 함묵할 수밖에 없었다.
갑질에 대한 규제를 객관화시키기 모호한 이유는 상대방의 행동에 반응하는 수준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갑질을 하며 화를 내더라도 어떤 이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또 어떤 이는 그냥 한번 꾹 참고 넘어가며 이해하려 한다.
영상디자인과 UX 디자인을 공부했기에, 용돈벌이를 위해 간혹 프리랜서 활동을 하곤 했다. 나이도 어렸고 경험도 부족했던 탓일까? 당시 클라이언트로부터 많은 갑질을 많이 당했다. 욕을 해도, 화를 내도 꾹꾹 참았다.
하지만, 노동계약서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내게 돈을 지불하지 않고 클라이언트가 갑자기 잠수를 탔을 때의 낙심과 절망감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처였다. 물론 이런 경험이 한번 두 번이 아니다. 다방면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했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사실 이건 한국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고충이기도 하다.
그래도 인턴기자로 활동했던 9개월 동안 월급이 1시간이라도 늦게 들어왔다거나 적게 들어온 경험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나의 한없이 부족한 테크닉과 지식과 경험 때문에 선배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은 적이 더러 있긴 했지만 항상 월급은 정확하게 입금됐다. 부끄럽지만 내가 과거에 있던 밑바닥은 그런 바닥이었고 디자인 전공인 출신인 내가 굳이 뉴스 생산자가 되려는 가장 솔직한 고백이고 미천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