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바질프로젝트
도돌이표를 멈추다
우리가 4년 가까이 연애를 하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 뭘까? 애정 섞인 말들은 잠시 제쳐두고 순위를 매긴다면 아마 이 말이 압도적 우승 후보일 것이다.
이 말은 우리를 지탱하는 믿음이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확인시켜 주는 주문 같은 말이었다. 닮은 듯 다른 우리 둘은 서로의 강점과 단점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확신했다. 우리는 함께하면 시너지가 폭발할 거라고.
영상 촬영을 하는 케빈과 연기를 하는 은서. 우리는 이미 여러 번의 작업을 통해 알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 하면 얼마나 즐겁고 단단한 팀이 되는지. 그래서 반복되던 그 말, 그 도돌이표 같은 메아리.
우리 같이 일하고 싶다
이 말을 2026년엔 멈추기로 했다. 이제는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인생을 파스타라고 치면
은서: 케빈은 살면서 킥이 되는 게 뭐가 있어?
케빈: 나? 나는 글쎄, 여행이지 않을까? 1년 반 동안 여행 다녔던 게 큰 거 같아.
은서: 여행도 좋은데 좀 뭐랄까, 거창한 거 같기도 해. 나는 일상에서 우리 막 카페 가고 안 가본 동네 가보는
거 있잖아. 그것도 다 킥인 거 같아.
케빈: 그렇지, 또 기록하는 것도 킥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또 그런 일도 했었으니까.
은서: 우리 인생을 파스타라고 치면 진짜 바질 하나만 들어가면 확 달라지잖아. 우리 바질 프로젝트 하는 거 어때?
케빈: 좋아! 삶에 바질 하나 더해보자!
연신내, 그리고 인생 커피
새로운 프로젝트를 이야기하러 새로운 동네에 왔다. 한 번도 데이트하러 와본 적 없는 동네, 연신내. 내가 연신내를 오자고 한 이유는 분명했다.
케빈: 여자친구가 가베향주 커피를 지금까지 먹었던 커피 중에 제일 맛있어하더라고요.
바리스타: 가베향주 사장님이 감사하게도 저희 원두를 써주시고, 한 번씩 와주세요. 오늘 커피 열심히 내려드릴게요.
우리가 트리퍼(TRIPPER)에서 일할 때, 경주가 옆 동네인 양 자주 경주를 갔었다. 경주로 ON SNS에 올라갈 영상을 찍으러 가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낙이라면 새로운 카페를 가보는 것. 우리라고 하기엔 내가 커피를 더 좋아해서, 은서는 나를 따라 커피를 마시러 다녀줬다. 경주의 많은 카페들 중에 왠지 황리단길과는 어울리지 않는 차분함이 느껴지는 카페가 있었다. 가베향주. 이곳에서 마신 커피는 우리 둘의 인생 커피가 되었다.
그때 커피와 함께 원두에 대한 설명이 적힌 종이를 주셨다. '와인 같은 산미....' 대충 이런 설명이 적혀있었고, 귀퉁이에는 커피 원두를 생산하는 곳의 상호가 적혀있었다. 그 작은 종이 한 장이 우리를 연신내까지 이끌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어?
은서: 바질 프로젝트에서 콘텐츠를 위해서가 아니라 뭘 해보고 싶어?
케빈: 그동안 바쁘다고 핑계 대면서 마음속에만 뒀던 영상을 찍어보고 싶어. 회사 다니면 사실 일하고 퇴근하면 주말에는 카메라를 안 들고 싶거든? 근데 이제 뭐, 퇴사도 했고. 스냅 웨딩이나, 바질 프로젝트에서 이야기 나온 주제로 단편영화나 우리 브랜드 영상을 찍어보고 싶어. 나 이제 시간 빌게이츠, 워런 버핏이거든. 넘어져도 이번에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고 넘어질래.
은서: 요새 자주 드는 생각이 있어. 시간이 곧 돈이라는 것. 옛날에는 그냥 돈이 더 앞선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시간이 돈이고, 돈을 벌어다 주는 거구나 깨달았어. 그 이후로 의미 없는 일로 돈을 버는 것보다 시간에 가치를 두고 일하고 싶어졌어.
케빈: 맞아. 그래서 내가 퇴사한 거잖아. 맨날 회사 가서 다른 사람의 콘텐츠를 만드는 게 너무 무의미하다고 느껴졌어. 내 걸 만들고 싶었어.
은서: 연기도 마찬가지야. 연기자는 항상 다른 사람의 선택을 받아야 하잖아.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연기가 따로 있는데, 그것보다는 원치 않은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사실 나는 독백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어. 내가 하고 싶은 연기를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보자는 거지. 그리고 작품에 지원할 때도 포트폴리오를 요구하는데, 포트폴리오는 어디서 쌓아? 연기는 하고 싶은데 포트폴리오가 없으니까, 우리가 누군가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주면 되지 않을까.
케빈: 목표를 정해볼까? 이 프로젝트는 언제까지 해볼까?
은서: 못 먹어도 고. 잃을 게 없으니까. 난 있는 게 없거든. 그래서 잃을 게 더 없어.
케빈: 나도 그래. 어쨌든 아무도 안 보더라도 우리 둘의 추억은 되잖아.
우린 앞으로 모든 과정, 고민, 성장, 시행착오, 영감을 영상과 글로 담아가기로 했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영상들, 그리고 우리가 만들고 싶은 작은 브랜드,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견할 우리의 낭만
이 모든 것이 결국 우리 삶 위에 올려두는 바질 한 잎이 될 것이다.
우린 지금 어떤 일을 벌이고 있을까?
그 이야기는 이제 바질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