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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광펜 Sep 17. 2022

외신기자에서 삼성전자, 아마존까지

미국에서의 작은 동양 아이 (3)

이유는 아직 정확히 모르지만 초등학교 5학년이 된 후 잠시 한국에 귀국하게 되었다. 오하이오에서 겪고 있었던 학교 생활이 완벽하진 않았어도 자세한 설명 없이 미국을 떠나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미국에 남아 홀로 학업을 마치기로 결정했던 아버지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친가가 있던 경기도 안양으로 갔다. 


한국에서는 새 학기가 막 시작된 상황이어서 학교에 잠시 갔던 것 같다. 한국말이 서툰 나를 보며 신기해하던 아이들과 학교에서 나눠준 초록색 우유팩이 기억난다. 하지만 이게 내가 기억하는 전부다. 갑작스럽게 친구들과 헤어져 낯선 곳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 이 당시 받았던 스트레스나 우울함이 다른 기억을 모두 잠식시켜버린 것 같다. 이러한 내 상태와 다른 요소들을 고려하여 엄마와 나, 동생은 다시 짐가방을 챙겨 몇 달 만에 다시 오하이오로 돌아간다. 


영영 떠날 것처럼 인사하고 몇 달만에 다시 돌아온 학교에선 친구들이 다행히 반겨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은 또 이사를 가게 된다. 이번에는 미국 남부, 조지아 주로. 


나는 중학교 때까지 다른 가족들도 최소 1년에 한 번씩 이사하는 줄 알았다. 그만큼 자주 이사를 다녔는데, 오하이오에서 조지아로 이사 갈 때 우리는 차에 큰 유홀(U-HAUL) 셀프 이사 트럭을 매단 채 출발했다. 오하이오는 겨울에 눈이 극심하게 올 때가 많은데, 이사 갈 당시도 눈이 많이 온 상황이라 타이어가 눈 속에 파묻혀 꼼짝 못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버지가 페달을 밟을 때 어머니는 밖에서 꽃무늬 플라스틱 접시로 눈을 파내 우리는 간신히 출발할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를 떠났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관광보다 빠른 도착을 목적으로 우리는 조지아로 향했다. 도착 후 나는 나무와 수풀이 무성한 우리 가족이 새로 살 동네를 보고 이곳엔 눈이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미국 남부에 위치한 주답게 조지아는 1년 내내 기온이 거의 일정하게 따뜻하다. 그래서 바로 아래 붙어있는 플로리다와 마찬가지로 은퇴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새로운 공립학교로 전학 온 나는 처음으로 교복을 입게 되었다. 한국 교복처럼 모든 요소가 통일된 게 아닌, 옷의 특정 색상과 형태에 대한 규정만 정해진 등교용 복장이었다. 우리 학교는 카키 슬랙스에 상의는 연노랑, 감색 또는 흰색 폴로셔츠를 입게 했다. 내가 전학 간 학교 학생들은 거의 모두 유색인종, 캘리포니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새로 만난 반 아이들은 대부분 순해 친구도 빨리 사귀었고, 그중에 마리아와 케이티라는 두 친구는 내가 적응하게끔 많이 도와주었다. 


조지아에서는 마당이 앞뒤로 있는 1층짜리 주택에 살았는데, 엄마가 뒷마당에 심은 깻잎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자라나 우리 가족이 몇 주동안 깻잎 반찬만 먹었던 기억이 난다. 또 어느 날 동생과 나는 밖에서 놀고 있었는데 거대한 검은색 이웃집 개가 우리 마당에 침범해 엄마는 빨리 들어오라고 소리치고 다소 위험할 뻔했던 상황도 발생했다 (별일은 없었다). 이 시절엔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 아래 땅 파는 것도 재밌었던 것 같다. 교회 아이들과 닌텐도 게임이란 것도 해보고, 스파이스걸즈 등 그 당시 제일 인기 많았던 팝스타들의 앨범도 사모으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나만의 취향이란 게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음악에 무지 심취해 살았는데, 주말 밤마다 라디오에서 발표되었던 미국 팝 차트 순위는 잠을 마다하고 1위가 발표될 때까지 매주 챙겨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까지도 1990년 대에 자주 들었던 노래가 어디선가 들려오면 로봇처럼 가사를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중얼중얼거린다.


미국에서 엄마는 동생과 나를 도서관에 굉장히 자주 데리고 갔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나는 음악과 더불어 책도 굉장히 사랑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에피소드도 여럿 발생했다. 


학교 수업시간에 책상에 교과서 펼쳐놓고 그 아래 다른 소설책을 몰래 보다가 선생님에게 걸려 혼나기도 했고, 반 친구들이 나의 책 읽는 속도가 신기하다며 옆에 와서 책장 넘기는 속도를 시계로 잰 적도 있다. 밤에 이불속에서 책 보다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안경을 쓰게 된 건 온전히 내 탓이다. 오하이오에 살 때부터 나는 픽션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조지아에서 부터는 집안 컴퓨터 사용이 원활해져 플로피디스크에 열심히 저장하며 일기, 짧은 소설 등을 썼다. 차라리 손으로 쓸걸 그 수많은 플로피디스크는 안타깝게도 사라진 지 오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몇 달 전 조지아로 전학을 간 탓에, 새로운 친구들과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우린 모두 졸업을 하고 각자 배정된 중학교로 뿔뿔이 흩어졌다. 나 또한 7학년을 시작했고, 사춘기로 접어들 무렵 아버지는 우리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한다. 이번에는 정말, 정말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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