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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 vs. 잘하는 일

by 인문학도 최수민

진로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 친구 중 한 명은 재수를 할 거라고 하다가, 학교는 그대로 다니면서 복수 전공을 할 거라고 하더니, 웨이트 트레이너를 해야겠다면서 같이 독일 유학을 가자고 한다. 내 사촌 동생은 전공은 경영학이긴 한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뭘 해야 될지 모르겠고, 더 좋은 대학으로 편입할 거라면서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대학, 더 유망한 분야로 가기 위해 재수, 삼수를 한다. 어릴 때부터 "앞으로 뭐 해먹고 살래?" 같은 얘기를 듣고, 학교에서 진로 교육 같은 것도 받았지만, 여전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뭔가를 결정하려면 기준이 필요하다. 진로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일을 할까, 잘하는 일을 할까?"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오래된 진로 고민 중 하나다. 정말 알쏭달쏭 하긴 하다. 좋아하는 일을 기준으로 삼자니 잘 못할까 봐 자신이 없고, 잘하는 일을 기준으로 삼자니 즐겁지 않을까 봐 걱정이다. 어떤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한다. 인생은 한 번뿐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된다면서. 어떤 사람은 잘하는 일을 하라고 한다. 잘하는 일은 하다 보면 저절로 좋아지게 된다면서. 그러면서도 제일 좋은 건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거라고 한다. 그런 일이 뭐가 있지 생각하다 보면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잘하는지도 잘 모르겠는 지경에 이른다.


나는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대신 해야겠다 또는 해 볼 만하다 싶은 일을 기준으로 삼으라고 제안한다. 잘하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일은 직업보다 취미로 삼는 게 적당하다. 왜냐하면 직업은 기본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직업으로 삼으려면 그 일을 대가로 남들에게 돈을 요구할 수 있을 만큼 자신 있는 일이어야 한다. 하지만 잘하지는 않으면서 좋아한다는 이유로 하는 일을 가지고 남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건 부적절해 보인다. 반대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잘하는 일은 직업보다 특기로 삼는 게 적당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일하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지와 상관없이 제일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생산성은 좋을 것이다. 하지만 생산성만으로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다. 인간은 감정적인 존재이고, 최대한 많은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또한 오히려 억지로 하다 보면 생산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나는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의 절충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해야겠다, 해 볼 만하다 싶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해야겠다, 해 볼 만하다 싶다는 건 어느 정도 잘하고 자신이 있으면서 또 어느 정도 즐길 수 있다는 뜻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우리가 진짜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은 놀고먹는 일이지 않을까? 집에서 뒹굴뒹굴하고, 친구랑 놀러 다니고, 게임하고 드라마 보는 등의 일 말이다. 그렇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얘기했을 때 우리가 진정으로 좋아한다고 말하는 일은 우리의 직업으로는 기대하기가 어렵다. 잘하는 일도 사실 잘한다고만 해서 곧장 직업으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 많은 직업들이 한 가지만 잘한다고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음대나 미대, 체대에 가려고 해도 입시 공부를 잘해야 되고, 똑똑해서 의사가 되려고 해도 수술을 용감하게 잘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나는 직업으로 기대하기에 가장 적절한 대안이 바로 해야겠다, 해 볼 만하다 싶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반문할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해서 잘하게 되면 되지 않을까? 아니면, 잘하는 일을 해서 인정을 받고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나는 그래도 결국 기준은 해야겠다,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을 실제로 열심히 해서 점점 잘하게 되는 것 같다 싶으면 해야겠다,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면 그때 직업으로 삼으면 된다. 잘하는 일을 실제로 해 보다가 나름 재미가 쏠쏠하다 싶으면 해야겠다,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면 그때 직업으로 삼으면 된다. 어쨌든 기준은 해야겠다,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지인 것이다.


나는 철학을 진로로 정하기는 했지만, 막 철학을 좋아한다고 할 수도 없었고 철학을 잘한다고 할 수도 없었다. 나의 솔직한 마음은 '아, 철학이 이런 거라면 열심히 해 볼 만하겠는데? 계속 해 봐야겠는데?'였다. 진로라는 게 막 언제나 짜릿하고 즐겁기만 한 일이 될 수도 없고, 지금은 잘 못한다고 해도 앞으로 잘하게 될 자신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짧은 경험 때문에 이런 선택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모르지만 말이다. 나의 이러한 생각이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라는 우리의 오래된 고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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