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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Jun 28. 2021

나도 너 만큼 잘 커야 하는데

조바심이 나는 엄마

아이를 키우면서 자꾸만 조바심이 난다.

다섯 살 아이는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잘 놀기만 하면 되는데, 무슨 조바심이 나느냐고?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딸아이의 또래 아이들은 학습지를 하고, 몇 군데 학원을 다닌다. 그래서 조바심이 나느냐고? 아니다. 그럼 아이의 성장 속도가 다른 또래 아이들보다 느려서 조바심이 나느냐고? 아니다. 


나는 '나 때문'에 조바심이 난다.


아이가 8개월쯤 되었을 때, 그러니까 아이를 낳은 해의 연말, 한 해를 돌아보며 스스로 연말 정산을 했었다. 정산의 끝 무렵,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다이어리 끄트머리에 이렇게 적어놨었다. 


나중에 아이가 어느 정도 컸을 때, 혹여나 아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너 대체 뭐가 되려고 그래?" 같은 어리석은 질문을 하면, 아이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엄만, 대체 뭐가 되려고 그래?"

돌도 안된 8개월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썼다기엔 이상하리만치 시트콤 같은(?) 지난날의 내 기록은, 정말이지 진심이었다.


아이가 크는 만큼 '같이' 성장하는 엄마가 될 것. 

이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아이는 그동안 많이 자랐다. 본인의 성장통을 꿋꿋이 잘 견뎠고, 나를 비롯한 타인의 도움으로 걸을 수 있게 됐고, 스스로 먹을 수 있게 됐고, 자신의 생각을 전할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을 갖게 됐다. 유치원에 다니며 사회생활을 통해 자신의 인간 관계도 넓혀 가는 중이다. 지난 1년, 2년이 놀랍도록 나날이 새롭게 성장하고 있다.


그럼, 그동안 나는 무얼 했나? 아이와 남편을 서포트하며 그 틈 사이사이에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았을까. 사실 스스로를 들들 볶으며 쉬이 내버려 두지 않았다. 시간이 생기면, 아니 시간을 만들어 책과 신문을 읽고, 전화 영어를 하고, 공모전에 도전하고 브런치에 글을 기록하며 시야를 넓히려고 노력했다. 다양한 글과 매체를 접하며 시야는 넓어지고 있지만 제대로 된 아웃풋이 없어 자꾸만 스스로를 채근하고 만다.


지난 주말, 본가(많은 사람들은 본가라고 하면 "시댁?"이라고 하지만, 나에게 본가는 친정이다.)에 다녀왔다. 아이는 처음으로 엄마 아빠 말고 할머니랑 잠을 잤다. 본인이 스스로 할머니와 자겠다고 호언장담하더니 정말 그 말을 지켰다.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잠들어버린 우리 부부를 뒤로하고, 아이와 나의 엄마는 밤 열두 시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잤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덧붙여 말하셨다. 아이가 책을 많이 읽어서 표현력도 대단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씨가 다섯 살 아이 같지 않다고. 너무 잘 컸다고.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인데, 이렇게 잘 키우느라 네가 고생 많았다고.


아이는 잘 크고 있다.


그 사실이 내 마음 한편에 든든히 자리 잡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조바심이 난다.


나도 너 만큼 잘 크고 있을까?


이 질문에 나는 여전히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 열심히 지내고는 있지만, 제자리걸음에 불과한 것 같아서. 언제쯤 뚜렷한 아웃풋이 이러한 조바심을 잠재워 줄 수 있을까. 


신문 보는 엄마, 책 읽는 엄마가 익숙한 아이는 유치원 가기 전, 내게 말했다.

"엄마, 내가 유치원에 갔다가 집에 올 때까지 신문 보고 책 읽고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응. 엄마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게."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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