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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Dec 17. 2021

나를 삥뜯은 어린 소녀에게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듯이,

올해 1월에 선물 받은 <어떤 양형 이유>라는 책을 최근 들어 읽었다. 박주영 판사님께서 수년간 법정에서 있었던 경험을 토대로 쓰신 글이다. 왜 이제야 읽었을까 혹은 이제라도 읽어서 다행이다 라는 심정으로 활자를 따라잡았다. 소설과 드라마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은 현실의 사건과 사연을 마주하며 자세를 바로 고쳐 앉고 미간 사이에 잔뜩 힘을 주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읽는 내내 무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다 결국엔 아이들의 사연 앞에 참을 수 없는 눈물을 떨구고야 만다.


책장의 마지막을 덮으며, 박주영 판사님의 신간 <법정의 얼굴들>을 주문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밤마다 악몽을 꾼다. 이전에 비해 적은 시간 수면을 취하는 것도 아닌데, 자고 나면 온 몸의 기력이 빠져나간 것처럼 꿈속에서 온갖 힘을 다 쏟아낸 것 같다. 살인, 성매매, 도박, 사기, 아동학대, 청소년 범죄 등 우리 삶 도처에 널린 죄악을 마주하며 나는, 희읍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파에 앉아 가벼운 책을 읽고 있었는데 십몇 년 전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중학생 때 있었던 일이다. 하교하던 길에 처음 보는 두 명의 얼굴이 나를 불러 세웠다. 내가 그때 중1인가 중2였고, 그들은 근처에 위치한 다른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때 당시로도 '언니'라고 느껴질 법한 외모 혹은 차림새였고 본인들보다 약해 보이는 표적을 불러 세웠을 테니 미루어 짐작하건대 나보다 나이가 한 두 살 많았을 것 같다.


어쨌든 나를 불러 세우더니 가진 돈을 전부 내놓으라고 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두 명 중 한 명의 목에 있던 상처를 봤다. 열몇 살 소녀의 하얀 목에 생길만한 상처가 아니었다. 손톱 따위로 생기는 작은 생채기에 비유할 상처가 아니었다. 칼이나 그에 상응하는 날카로운 어떤 것으로 그어서 생긴 상처였다. 분명 그 상처는 붉었고 보는 것만으로도 아팠다.


그 상처를 발견하고는 고민하지도 않고 주머니에 있던 천 원짜리 몇 장을 모조리 건넸다. 둘은 이게 전부냐고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용건을 끝냈다는 듯, 이제 가보라고 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재촉하여 집으로 왔다.


그때가 누군가에게 돈을 빼앗긴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었다. 당시엔 그저 '나도 이런 걸 다 당해보네' 또는 '아, 식겁했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다음 날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번 같은 길로 하교했지만 그 둘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약 보름이 지나면 새 해가 되고, 나는 서른 중반이 된다. 그리고 이 일은 약 20년 전 이야기가 된다. 무모한 생각일 수 있지만, 나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그 두 소녀를 다시 만나고 싶다. 서른 중반이 된 지금의 나로 말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내게 있는 돈을 다 내놓으라던 소녀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밥은 먹었니?"

"목에 난 상처는 괜찮아?"

"춥다. 우선, 밥 먹으러 가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어떤 양형 이유>의 한 문단을 나누고 싶다.


보스턴 천주교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을 보도한 <보스턴 글로브>의 실화를 옮긴 영화 <스포트 라이트>의 잘 알려진 대사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듯,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 이 말은 소년범을 대할 때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말이다. 여기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한 아이가 망가지는 데도 온 집안과 마을이 필요하다. 이 아이들이 모두 엄벌을 받아야 한다면, 아이들을 유기하고, 방치하고, 학대하고, 눈길조차 주지 않은 부모와 가족, 그 아이들 중 누군가와는 같은 마을 사람들인 우리도 함께 엄벌을 받아야 한다"라고 말이다.



덧붙여, 박주영 판사는 이렇게도 말했다.


"아이들을 사회적으로 완전하게 출생시키는 것은 우리의 의무고, 이 아이들을 완전히 태어나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은 꾸준한 관심과 지지였다" 고 말이다.



글을 마치며, 두 소녀가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여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부디, 붉은 상처에 하얀 새 살이 돋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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