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고전을 읽는다는 건 깊은 바다로 뛰어드는 모험과 같다. 심해 저편에 찬란한 지적 보화가 기다리고 있다는 건 알지만, 물속에 들어가기도 전에 압도적인 수압에 숨이 막힌다. 그 버거움은 고전이 본질적으로 지닌 특성에서 비롯된다.
현대 소설의 간결한 문장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고전의 문장은 거대한 미로처럼 느껴진다. 수식어가 겹겹이 쌓이고, 문장이 끝없이 길게 늘어져 한 번에 의미를 잡아내기 어렵다. 마치 고딕 대성당처럼 세밀한 장식 하나하나가 아름답지만, 전체를 조망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작가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드러내지 않고 천천히 풀어내며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빠른 기승전결에 길들여진 오늘날 독자에겐 그저 "빌드업이 너무 길어…"라는 한숨만 나올 뿐이다.
현대 서사는 독자를 배려해 배경과 인물 관계를 친절히 설명해 준다. 반면 고전은 그런 배려가 거의 없다. 튜토리얼 없이 보스전으로 직행하는 게임처럼, 독자를 맨바닥에 던져놓고 "직접 맞춰보라"는 태도다.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고 숨겨두는 방식은 당시엔 자연스러운 미학이었지만, 지금은 그 자체로 진입 장벽이 된다.
이름 하나로도 버거운데, 한 인물이 본명·부칭·애칭·관직명·호까지 수시로 바뀌면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러시아 소설에선 이반 이바노비치가 갑자기 반카로, 또 표트르 표트로비치로 불린다.
일본 전국시대물 『도쿠가와 이에야스』32권을 읽다 보면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 외에는 다 포기하게 된다. "얘가 쟤야? 쟤가 얘야?" 하다 결국 족보를 외우느라 본 이야기를 놓친다.
'성진우', '김독자'처럼 이름 하나로 깔끔한 현대 주인공에 길들여진 우리에겐 그 혼란이 가혹하기만 하다.
제목마저 불친절하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 이름인지 과학자 이름인지, 『오만과 편견』은 무슨 이야기인지, 『테스』 ,『나나』는 대체 누가 주인공인지 제목만 봐서는 알 길이 없다.
반면 요즘 웹소설은 ‘회귀했더니 SSS급 헌터가 된 아내가 나를 버림’ 식으로 제목이 시놉시스 전부를 말해 준다.
당시 작가들은 제목에서 모든 걸 드러내는 걸 천박하다 여겼을 테고, 독자가 직접 펼쳐서 ‘발견’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 의도는 아름답지만, 스크롤 한 번에 줄거리를 파악하고 싶은 현대 독자에게는 그저 또 하나의 관문일 뿐이다.
결국 외국 고전은 문체·전개·인물명·제목까지 온갖 장벽으로 무장하고 우리를 가로막는다. 그러나 그 벽을 넘어섰을 때 만나는 풍경은 확실히 다르다. 수백 년을 건너온 문장 하나가 가슴을 때리고, 당시 사람들의 고민이 지금 우리의 고민과 맞닿아 있는 순간이 온다.
처음엔 숨이 막힐 듯 버거워도, 그 심해를 헤치고 나면 건져 올린 보물 한 조각이 평생 빛을 발한다. 조금 힘들어도, 한 번쯤은 그 깊이를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