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다산만 읽는가

연암을 지워버린 이유

by 어제와다른오늘
제미니 AI가 만든 연암과 다산

프롤로그: 성역이 된 도덕주의

오늘날 『목민심서』는 가장 안전한 고전으로 소비된다. 누구도 반대하기 어렵고, 누구나 그것을 인용함으로써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책에서 풍기는 것은 ‘깨어 있는 시민’의 긴장감이 아니라, 질서를 관리하는 '유능한 관료'의 체취에 가깝다.

깨진 기와 조각 하나에서도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포착했던 연암 박지원의 파격은 사라지고, 체제를 수선하려는 다산의 도덕주의만이 남았다. 이 글은 우리가 성역처럼 떠받들어온 주류적 사유에 비주류의 시선으로 작은 균열을 내려는 시도다.


대륙의 바람과 유배지의 창살

조선 후기의 두 사상가,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은 엇갈린 풍경 속에서 각기 다른 리얼리즘을 구축했다. 연암의 『열하일기』는 대륙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관직의 굴레 밖에서 쓰인 기록이다. 반면 『목민심서』는 18년 유배 속에서 집필된, 좌절된 개혁가의 행정 설계도였다.

이 배경의 차이는 단순한 개인사의 대비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의 차이를 낳았다.


연암의 체제 전복

연암은 노론 명문가라는 보호막 안에 있었기에, 역설적으로 체제 내부를 가장 신랄하게 조롱할 수 있는 '내부의 이단아'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성리학이라는 당대의 패권을 ‘저자거리의 언어’로 끌어내렸고, 버려진 기와 조각을 재활용하는 벽돌 공정에서 백성의 삶을 실질적으로 구원할 리얼리즘을 발견했다.

『허생전』에서 허생은 국가 개혁을 논하기보다 유통을 장악함으로써 사회 질서를 뒤흔든다. 양반 질서가 도덕이 아니라 경제의 흐름 위에 서 있음을 드러내는 이 설정은, 연암이 신뢰한 것이 국가의 훈계가 아니라 현실 세계의 역동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의 시선은 훈계가 아니라, 옆에서 세상을 의심하고 관찰하는 비주류적 전복에 닿아 있었다.


다산의 권력 설계

반면 다산 정약용이 조선 후기 행정과 제도 개혁을 가장 치밀하게 사유한 인물이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 그는 유배 이후, 주류적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한 정교한한 국가 설계도를 집대성했다. 경전의 본래 의미를 복원함으로써 행정과 법률을 바로잡고자 했고, 『목민심서』는 그 집념의 결정판이다.

다산은 탐관오리를 누구보다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그의 해법은 체제를 넘어서는 데 있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각성한 민중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단련된 목민관이었다. 여전론 역시 평등을 지향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국가라는 거대 권력이 개인의 노동과 토지를 관리해야 한다는 강한 통제 논리가 깔려 있다.

다산의 리얼리즘은 피지배층의 각성보다는, 지배층인 목민관이 갖추어야 할 도덕적 규범, 즉 '이상적인 관리(官吏)의 시선'에 머문다.


훈계에 길들여진 시대

오늘날 우리가 연암의 풍자보다 다산의 훈계를 더 선호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목민심서』의 메시지는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윤리 문제로 환원하기 쉽고, 그래서 누구나 스스로를 '더 나은 관리자'로 상상할 수 있게 만든다.

다산의 글은 '공부해서 유능한 官吏가 되라'는 메시지로 손쉽게 치환되며, 기득권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도덕적 방패로 활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반면 연암의 조롱은 지금 우리가 상식이라 믿는 질서와 가치가 한낱 허구일 수 있음을 폭로한다. 질서를 중시하는 주류 교육이 연암을 변방으로 밀어내고 다산을 성역화해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복귀

『열하일기』의 자유가 노론 주류의 안락함에서 나왔고, 『목민심서』의 치밀함이 비주류의 고통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우리는 연암을 읽으며 해방감을 느끼지만, 실제 삶에서는 여전히 다산의 세계를 요구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스템을 보수하는 官吏의 훈계가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위선을 드러내는 관찰자의 서늘한 웃음이다. 나는 그 안락함 대신, 벽돌 한 장에서도 진실을 벼리던 연암의 고독한 길을 다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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