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광경을 만나게 된다. 분명 벼만 자라야 할 자리인데, 어느새 벼보다 더 빠르게 세력을 키워가는 식물이 있다. 바로 '피'다.
조·수수와 함께 신석기 시대부터 우리 곁에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작물과 잡초의 경계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잡초라고 부르기에는 사연이 길고, 작물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자리를 잃어버린 이름이다.
논에서 피는 쉽게 눈에 띈다. 곧게 위로 뻗은 벼가 메타세쿼이아라면, 옆으로 몸을 벌리며 퍼져 나가는 피는 느티나무를 닮았다.
다만 그 느티나무 같은 식물이 이곳의 주인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봄에는 벼 사이에 섞여 잘 보이지 않다가, 한여름이 가까워질수록 갑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며 논의 풍경을 바꿔 놓는다.
피의 진짜 강점은 성장 속도 그 자체에 있다. 강한 햇빛과 고온에 최적화된 C4 식물이기 때문이다. 같은 햇빛 아래에서 벼가 여름을 버텨 내는 동안, 피는 여름을 연료처럼 쓴다. 물마저 넉넉한 논에서 피는, 벼가 숨을 고르는 여름밤에도 조금씩 키를 늘려 간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해진다. 논에서 인간이 쉽게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성장 초기 모습이 벼와 비슷했던 덕분에, 피는 우연히 살아남았다. 그렇게 시간을 벌어 둔 피는, 줄기가 억세질 무렵이 됐을 때 그제야 벼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피는 인간의 육종을 거의 거치지 않은, 사실상 야생 상태의 식물이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는 야생의 생존 법칙이 피에서도 적용된다.
피의 씨앗은 한 해에 모두가 발아하는 게 아니다. 일부만 싹을 틔우고, 나머지는 땅속에서 휴면하며 다음 해를 기다린다. 그래서 논에는 언제나 피가 준비된 상태로 존재하고, 벼와 경쟁할 준비를 갖춘 채 여름을 맞는다.
아이러니하게도 피는 원래 논의 침입자가 아니었다. 한때 오곡 중 하나로 여겨지며 흉년마다 사람들의 끼니를 이어 주던 곡식이었다. 그러나 더 맛있고 소화 잘되는 쌀이 선택되면서 피의 자리는 조금씩 사라졌다.
이름은 그대로 남았지만 역할이 바뀌었고, 결국 ‘잡초’라는 낙인이 붙었다. 한때 식탁을 지키던 존재가 이제는 논의 주인을 위협하는 불청객이 된 셈이다.
피는 특별히 악의를 가진 적이 없다. 그저 자신에게 유리한 계절을 놓치지 않았을 뿐이다. 논을 바라보면, 인간 눈에는 반칙처럼 보이던 풍경도, 자연의 시각에서는 그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일 뿐임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자연에게 '반칙'이라는 개념 자체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