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이름으로 넷이서 같은 곳인
이 곳 제주에 온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가족 여행도 집 안 어른 행사도 제주에서 했다.
멀지 않은 곳인데 비행기 타고 갈 수 있으니 여행의 기쁨도 설렘도 두 배.
가는 곳마다 눈이 시원해지는 바다, 테디 베어, 소인국, 귤 농장, 동굴 체험 등
아이들 데리고 다니기도 어른들 모시고 다니기도 더없이 좋은 곳이다.
공항부터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제주다.
발길 닿는 곳마다 눈으로 맘으로 담을 풍광이 펼쳐져 있다.
나머지 가족은 어딜 가든 콩굴리시라도 되지,
나는 소통 안돼서 어쩌나(?) 하는 걱정 한 가지 덜 수 있어
미리 겁먹을 게 없으니 맘 편히 다녀올 수 있는 곳.
지금은 번역기가 있어 어딜 가든 소통 안 될 걱정 없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염려 말랐지만, 그땐 그마저 쉽지 않은 때였으니.
아이들이 고학년을 거쳐 중학생이 되면서 가족 여행이란
장식장 서랍 속에 방치되었다.
날짜 맞춰 보려 해도
“어무이와 아부지랑 다녀오세요. 우리는 빠질게~요.”
같이 다니고 싶지 않다며 싫은 내색을 바로 드러냈다.
‘주말마다 어디 갈 거냐며 조르던 녀석들 다 어디 가버렸나(?)’
중학생이 되면서 중간고사, 기말고사에다
주말이면 모둠별 과제하느라 친구들 만나기도 바빴으니
가족여행은 언감 생신이다.
어쩌다 겨우겨우 날짜 맞춰 실행해 보자고 하면
마마보이, 파파보이가 되기 싫다며 뭐든 친구들이랑 하는 게
우선순위가 되어 버렸다.
하다못해 외식하자 하면 시큰둥한 반응으로
가족 전체가 움직이는 일은 해서는 안 되는 일처럼 되어버렸다.
애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알바비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이름 대면 알만한 나라 여행을 다녔다.
한 달 이상 휴가를 낼 수 없는 우리는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다.
가족 안에서도 자기 시간 맞게 혼자 또는 둘이 셋이 떠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넷이 여행을 가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딸냄이 대학 졸업하고 직장 생활하면서 가족 통장을 만들기로 했다.
야무진 딸냄이 총무를 맡았다.
매달 3만 원씩 가족 여행 가는 경비에 보태거나 가족 모두
필요한 무언가를 집에 들여놓을 때 쓰자는 취지였다.
매달 3만 원씩 넣어둔 통장이 쪼금 묵직해졌는지
떠날 때가 되었다며 따닝(딸냄의 애칭)이 소식을 전해왔다.
장소는 어디로 갈 것이며, 가서 무얼 할 건지 의견을 냈다.
아드닝과 따닝은 띵까띵까 먹방 먹방 오로지 먹방 탐방 가는
제안을 했다. 거기서 나는 같이 갈 이유가 없어졌다.
그이는 여유 자작한 곳으로 나는 한라산 등반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애들도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며 발을 빼려 했다.
순간, 내가 따닝이 한 말을 기억해냈다.
공인중개사 시험 합격하면 한라산 같이 가 준다고 한 말을.
따닝은 나이 든 엄마의 합격은 한라산 등반만큼 쉽지 않을 거라
뱉은 말이었을 거다. 그 엄마는 어찌어찌 해냈고.
거미줄의 먹이처럼 꼼짝없이 걸려들었다며 장소는 한라산으로 정해졌다.
11월의 정상은 무척 추울 것을 대비해 모은 돈으로
등산화와 도톰한 바지를 준비했다.
가족이 한 마음 모아 함께 해주는 것만도 시험공부 때의 힘듦은
충분히 보상받는 듯했다. 더구나 가족이 함께 명산을 오르는 일.
막연히 꿈꾸던 일이 현실이 되다니 더없이 좋았다.
설렘은 거기까지였다.
각자 자리에서 자유시간 가진 게 너무 오래였나(?)
비행기를 타면서부터 낯설었다.
바깥나들이 때는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게 신기해 똘망똘망한 눈으로
“우와~ 비행기다!”
“선새이임, 저건 뭐예요?”
“우와~ 우와~”
같이 반응해주고 호응해 주는 것이 생존본능처럼 몸에 밴 나는
대자연을 느끼지 않고
휴대폰 속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세 사람 모습이 적응되지 않았다.
비행기 착륙부터 가만히 떠있는 구름, 높이 오를수록 레고 작품처럼
보이는 집들을 둘러보지 않는 것이 속상했다.
두리번두리번거리는 내가 저들은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네 명인 우리는 완벽한 2단 분리를 하고 있었다.
‘우리 어무이 왜 저러지 창피해서 같이 못 다니겠네.’
이런 표정을 읽는 것도 씁쓸했다.
예전의 저런 표정을 본 적이 있는데...
유치부 선생으로 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내가
집에 와서 율동과 손유희, 동화구연을 연습할 때면 유치해서 못 봐주겠다며
기겁하던 두 녀석들이었다.
그랬던 그들이 카페에 활동사진 올려주는 일을 도와주다
사진 속의 쪼꼬미들한테 흠뻑 빠져버렸다.
재량 휴업 날 내가 일하는 교실에 급식시간 맞춰서 왔다.
사진으로 만족을 못하고 꼬물이들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에.
급식 나눠준 뒤 밥도 같이 먹고 갔다.
입으로 먹었는지 코로 먹었는지 모르겠다며 도망가 버렸다.
저녁에 집에서 만난 따닝과 아드닝은
“엄마가 유치한 행동 할 수밖에 없겠더라.”
“어무이가 그렇게 안 하면 수준이 안 맞아서 어울릴 수가 없겠어요.”
한 동안 쏘옥 들어갔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그럴 수밖에 없음을 현장에서
직접 본 아이들은 유치한 모든 행동을 수용해 주었다.
어쩌다 어이없어하며 고개 절레절레 흔드는 아빠를 이해시키기까지 했으니.
그렇게 이해받으며 지낸다 생각했다.
여행지에 나와 보니 서로의 간극이 좁힐 수 없을 만큼 벌어진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맛있는 곳만 찾아다니고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세 사람과 발발이 같은 나
그런 세 사람이 한라산을 오르겠다고 나서 준 것만도
고마워해야 했으니...
산에 오르는 일
많이 힘들겠지만, 자기 내면의 힘을 기르는
소중한 시간이었으면.
2단 분리 가족들 큰 마음 내줘서 고맙데이~
이런 시간 자주 가지자 하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