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정상까지 갔다 오려면 10시간은 걸릴 테고,
동절기라 정오까지 진달래 밭 통제소를 통과해야 하니 새벽에 나서자.”
그이 말을 듣고 우리 가족은 전날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새벽어둠을 깨고 일어나 서둘러 준비했다.
등산이라면 담쌓고 살았던 우리 가족은 초보자도 무난히 오른다는
성판악코스를 택했다. 성판악 입구까지 가는 새벽 택시를 탔다.
정상까지 매점하나 없다니 매점에 들러 김밥과 물도 샀다.
전날 귤 체험 농장에서 직접 딴 귤도 넉넉히 챙겼다.
추울 것을 대비해 옷을 얼마나 단단히 입었는지
움직임이 둔해져 넘어지기라도 하면
벌떡 못 일어나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할 판이었다.
정상에 가면 찬기운에 얼음 꽁꽁!! 될까 봐
오버스러운 차림에 서로를 보며 웃을 수밖에.
동절기는 새벽 6시부터 산에 오를 수 있었다.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는 사이 입산통제가 풀렸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뚫고 한라산 줄기 끝자락에 폴짝 안겼다.
앞선 사람을 뒤따라 네 사람이 한 줄로 나란히 걸어가는데 꿈만 같다.
아드닝의 보폭은 성큼성큼 앞장서 걸어가며 새벽빛을 불러들였다.
그이가 옆 서거니 뒤서거니 따라붙었고,
따닝과 나는 감탄하며 찰칵찰칵 부기가 덜 빠진 듯
띵띵 부은 얼굴 찍느라 초입부터 뒤쳐졌다.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나무가 흡수하며 보여주는 조화와 아름다움
조성된 산책로가 드러나면서 걸어 오르기 쉬웠다.
바람 한 점 없이 초가을 햇살이 더해지니 애들은 더 이상 못 견디고
껴입은 옷을 벗어 들었다.
난 두툼한 옷이 짐이 될 거 같아 입고 있으니 땀이 삐질거렸다.
제주의 날씨가 이렇게 따사롭고 온화할 수가!
기막히게 좋은 날이라며 곧 마주할 백록담을 눈앞에 그렸다.
장작같이 딱딱해지는 두 다리가 대수로울쏘냐.
TV나 사진으로만 보던 그 장엄한 백록담을 곧 만날 텐데,
감각이 없어지는 두 다리를 부여잡듯 걸었다.
걷고 또 걷고 오르고 또 올라
드뎌! 사라오름의 안내판이 보인다.
조금만 더 가면 진달래 밭 대피소.
12까진 순조롭게 통과 가능한 시간이라 흥분이 되기 시작했다.
진달래가 많이 피는 곳인가(?)
그 이름 참 정겹고 소박한 진달래 밭 대피소라니.
이름이 입에 착 달라붙어 더 정이 갔다.
먼저 온 사람들이 준비해 온 김밥을 꺼내먹고
간식을 챙겨 먹고도 출발을 하지 않는다.
‘뭐지? 무슨 일이지?’
차림으로 봐선 매주 산 오르기를 밥 먹듯 하는 거 같은데...
먹는 걸로 이리 오래 지체할 이들로 보이지 않았다.
간단한 요기 끝나면 잽싸게 바로 일어서 정상을 향할 이들로 보였다.
무슨 말인지 자기들끼리 주고받으며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무렵,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한라산 백록담까진 바람이 많이 불어 입산 금지합니다.”
'이 무슨 청천 날벼락같은 소리란 말인가.'
이 따사롭기 그지 않는 날씨는 어쩔;;;
정상으로 오르는 길엔 바람이 분다고?
그것도 등산객이 위험해서 입산을 금지할 정도로.
믿기지 않았다.
히야, 제주 날씨 시시각각 변한다고 말은 들었지만,
비와 눈이 오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불어서 산을 오르지 못한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에 망연자실했다.
기상청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 중이라는데,
바람이 더 심해지고 잦아들 기미가 없단다.
‘제주의 바람이 이 정도였구나!’
제주에 많은 3가지가 돌, 여자, 바람이라더니
인정이 안 되는 체험 현장이었다.
손에 잡힐 듯 눈앞에 있는 백록담을 뒤로하고
돌아서려니 발밑에 족쇄가 채워진 듯하다.
두 아이들도 백록담을 보고 싶었다며
산 오르기 전의 툴툴함이 없어지고 아쉬움과 안타까움만 가득한가 보다.
내려오면서 정상을 바라보고 그냥 지나쳤던 사라 오름을 가기로 했다.
사라오름!!
가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했을까!
구름이 바람이 가을 햇살이 바로 제주의 오름이었다.
백록담은 못 올랐지만, 그에 못지 않을 사라오름이었다.
사라오름 앞에서 우리는 올라올 때의 힘겨움은 깡그리 잊기에 충분했다.
금방이라도 양 손을 뻗으면 손에 닿을 듯한 새하얀 구름, 바람, 맑은 공기
코와 입을 씰룩거렸다.
폐 속 깊숙히 맑은 공기를 불어넣고 싶었다.
감격스럽고 기쁨이 넘치는 제주
아름답고 황홀하고 또 눈부시기까지 한!!
그 어떤 행복의 말을 갖다 붙여도 좋을 사라오름에서
백록담을 올려다보았다.
언젠가 다시 가족끼리 오자고 약속한 백록담을 위해
감동과 감격을 조금 아껴두고 내려왔다.
제주에서 다시 만날 백록담아!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 간직하며 기다려라.
곧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