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람 잡을 뻔했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by 서비휘

“누가 됐던 내일 저녁 8시까지 책장 위에 올려놔라.”

단호함과 비장함의 그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콧물 눈물 뒤범벅인

우리 네 사람은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과외비를 드리려고 현금 30만 원을 봉투에 넣어뒀다.

선생님께 드리려고 돈을 꺼냈다. 봉투가 처음 넣어둔 것과 다르게 얄팍하다.

어 ~ 이상하다. 분명 30만 원 넣어뒀는데... 세어보는데, 딱 반 밖에 없는 거다.

몇 번을 세어 봐도 15만 원이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돈이 없어져 당장 못 드리는 미안함보다 이 돈을 가족 중 누군가 가져갔다는 사실에

털썩 주저앉고 싶었다.


애들 둘을 키워오면서 내 손으로 감당 안 되는 일은 항상 그이 손을 빌렸다.

전화를 걸어 이 상황을 알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돈이 든 가방을 집에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놀이학교 근무 때라 울 반 네 살 쪼꼬미들이 그걸 가져갔을 일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었으니.

울 가족 중 누군가를 생각할 수밖에.


집에 돌아온 그이는 밥이고 뭐고 없고, 네 명을 거실에 둘러앉게 했다.

“니 엄마가 지금 큰돈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혹시 잘못된 생각으로 가져갔으면

가져와라.”

아들과 딸은 서로 나 아닌데, 하는 표정으로 앉아있다. 아주 뻔뻔하게.

내 맘만 타들어갔다.

‘어이구, 저것들이 지금이라도 갖고 나오지.’

몇 번의 기회를 줘도 같은 자세다.

‘아이고, 어쩌려고. 저것들이...’

잘못한 일을 하고도 거만하고 뻔뻔스럽다는 느낌을 그이도 받았는지

“세상 나가면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도 힘이 드는데, 도둑질까지 하는

너희들을 키워 내 보낼 수는 없다.

나는 사람들한테 잘못한 건 없고, 할머니한테 불효가 되겠다.

딸은 잘못한 거 없나, 아들은? 니는 사람들한테 돈 같은 거 빌린 거 없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아이 둘은 그제야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렇게까지 앞서 생각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안 났다.

지금 당장이라도 큰일을 벌일 거 같아 조마조마했다.


내일 8시까지 혹시 돈을 가져갔으면 도로 갖다 놓으라는 거다.

하루의 시간을 벌었고, 잘못을 만회할 시간을 준 것만도 감사했다.


다음 날은 돈이 가지런히 올려질 한 가닥의 희망이 있었다.

두 아이를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런 일이 없던 아이들인데, 한 순간의 잘못된 생각을 할 수도 있지.


모두 다 걱정하는 마음으로 8시가 되길 기다렸을 것이다.

올려져 있어야 할 돈은 10원짜리 하나 없었다.

이 사람 어떻게 나올지 덜컥 겁이 났다. 나도 잘못한 게 집에만 그 돈을 갖고 있었다면

가족 중 확실히 누군가가 되겠다.

원에도 돈이 든 가방을 들고 한 번 다녀왔기에

100% 집에서 없어졌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네 살 쪼꼬미들이 가져갈 일 또한 120% 없었으니....

그 일은 그렇게 황당하고 꿈꾸다 만 것 같은 일로 차츰 잊혀 갔다.

어느 날, 앞 반이던 6세 반 선생님의 지갑이 없어졌다고 원 전체가 발칵 뒤집어졌다.

20대 후반 젊은 아가씨 선생님은 여행 갈 계획이 있었던 거다.

여권도 들어있고, 현금과 달러가 꽤 들어 있었단다.

그즈음 부모 참관수업을 끝내고, 원장님이 목욕비 하라고 주신 현금 5만 원의 봉투도

깜쪽 같이 없어졌다. 아침 출근할 때, 그 돈을 다시 확인했었다.

집에 올 때 시장 보려고.

그제야 한참 전 내가 잃어버렸던 돈이 생각났다.

1%의 의심도 없었던 돈이 원에서 없어졌을 수 있겠다 싶었다.

원장실에 내려갔더니 지갑 잃어버린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내가 겪은 일도 말씀드렸다.

CC TV가 곳곳에 설치되어 돌려보면 당장 알 수 있었을 텐데...

아침 차량 당번하러 나가고 남아 있는 선생님을 서로 의심하는 일이 전에 없이 생겼다.


원장님께서도 30년 가까이 운영해 왔지만, 처음 겪는 일이라며 매우 당황스러워하셨다.

각 교실마다 사물함의 열쇠를 맞춰주고 스스로가 조심하라며

아무 일이 없는 듯 지나갔다.

곧 여름방학이었고, 방학이 끝나고 한 선생님이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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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원장님은 그 선생님을 조용히 불러 말씀하셨단다.

“선생님 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할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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