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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Jul 17. 2022

최덜렁씨와 튜브 아주머니

둘 다 도찐개찐

“최 덜렁 씨~~!”

이른 아침 자기 방에서 출근 준비 중이던 따닝이 거실과 주방을 오가며 준비 중인 날 부른다.

“어쭈구리 훌라후프 아줌마에서 언제 또 별명을 바꾼 거유?”

“어머, 누가 훌라후프래요? 훌라후프가 아니라 튜브 아주머니라고요.”

요즘 울 따닝은 나를 튜브 아주머니라 부른다.

이유인즉 배 둘레 근처 바람 빵빵한 튜브를 끼고 있는 모양이라는 데, 아주 틀린 말이 아니라서 크큭 웃음이 나왔다.


엄마라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고귀한 이름을 두고 별칭이 하나씩 늘어나는 이 현실 앞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제 오후 퇴근길도 정말 더웠다. 식구들 돌아올 시간이 남아 동네 한 바퀴 산책 한 뒤 씻고 저녁 준비할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전날 억수 같은 비가 내린 덕분인가.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 보인 구름이 유명 화가의 힘 있는 붓터치가 따로 없다.  

다른  쪽을  봤더니  산책 나온  푸들이 폴짝폴짝

달려가는  듯  신나  보이는  구름도  보인다.

건물이 하늘을 가리지 않은 곳으로 발걸음을 떼놓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가슴에서 뻥 뚫리는 소리가 나는 듯. 시원함을 느끼며 휴대폰과 이어폰을 꺼내 들었다. 이어폰으로 한쪽 귀만 연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바쁜 걸음을 떼놓았다. 부지런히 걸으며 눈앞에 보이는 풍경 또한 놓치지 않으며.


식구들 돌아올 시간에 맞춰 원하는 사진 촬영의 만족도 잠시, 한쪽 이어폰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살펴보기엔 어둠이 곧 내릴 테고, 하루 종일 일 마치고 온 식구들 배도 고플 테니 내일 아침 일찍 출근 전, 다시 한번 훑기로 잠정 결정. 식구들한텐 아직 실수를 알릴 수 없었고, 혼자 찾아볼 요량이었다.


한쪽 이어폰이 없을 때 전화벨 울림이 밖으로 소리 나지 않을까 염려되는 마음에 따닝한테 몰래 알릴 수밖에 없다. 따닝 하나만으로도 만만치 않지만, 다른 가족들까지 알렸을 때 돌아오는 질타와 멸시를 감당하기 너무 더울 거 같아서.


“으이구, 울 최 덜렁 씨... 그게 여태 있을 리가 없어요. 요즘 중고나라에는 한쪽 이어폰도 많이 올라와요.”

‘어머나, 세상에.’

그것을 주워다 판다는 소리에 놀라 뒤로 자빠질 지경이다.

한쪽 이어폰만 떨어진 걸 주워봤자 아무 짝에도 쓸모없을 것이니 고대로 그 자리에 있을 거란 나의 착각은 따닝의 말을 듣자마자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예전에 산책길에서 한쪽 이어폰 떨어진 걸 보면서 주인이 찾아 나설 거란 생각과 주워봤자 아무 쓸모 없을거란 생각을 한 적이 있기에.


따닝은 한쪽 이어폰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많아 하나만 살 수도 있다는 것도 덧붙였다. 다행이란 생각과 함께 10만 원이 넘는 돈이 나가야 하는 사실에 맘이 쓰라렸다. 한 순간의 실수로 10만 원을 꿀꺽했다는 사실에 맘 아파한들 돌아올 리 없을 테고.


핀잔과 놀려 먹는 따닝 앞에서 아무런 말도 받아치지 못하고... 어이없어하며 망연자실할 뿐, 최 덜렁 씨와 튜브 아주머니 등 부를 수 있는 별칭만 늘리는 꼴이었다.


이어폰 한쪽이 없어지고 나니 함부로 다룬 것도 떠오르고, 많은 걸 접속시켜 주었다는 고마움도 새삼 떠오르는 이 미련한 어미를 따닝이 최 덜렁 씨라 불러도 할 말이 없다.


다음 날 아침, 바지를 입는데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는 홈런볼 크기의 이어폰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따닝, 이어폰 호주머니 안에 있~었어.”

“으이구, 최 덜렁 씨, 튜브 아주머니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우선 10만 원이 넘는 생돈이 안 나가도 된다는 게 가장 큰 현실 기쁨이다. 따닝한테 찍혀버린 어리버리 낙인은 더 이상 보태지 않은 선에서 노력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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