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9일,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휴게시설에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찜통더위가 가장 혹독한 8월의 폭염 속에 67세의 청소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잠을 자다가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당시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휴게실은 창문도 에어컨도 없는 1층 계단 옆 가건물에 있었다고 한다. 컨테이너의 얇은 벽이 한여름의 폭염을 막아주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공동주택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은 모두 건물의 지하나 가건물의 후미진 공간에 있다. 현행법상 공공주택의 청소 노동자의 휴게시설과 관리사무소 면적이 묶여 있다. 그래서 공공주택 청소노동자들은 이들의 적정 면적의 휴게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법적 권리가 없는 이들이 건물 아래에서, 계단 밑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한국의 건축기술은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다. 50층 초고층 건물을 지자체의 승인만 떨어진다면 아주 쉽게 세울 수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건축물은 나날이 높아지는 동안 청소노동자의 휴게실은 단 한 층도 지상으로 올라오지 못한 채 아직도 지하에 머물러 있다. 건물은 탑처럼 솟아올라 하늘에 닿아있지만 우리의 의식은 청소 노동자의 휴게실처럼 땅속에 무덤처럼 누워 있는 꼴이다. 이는 지상 위에 조금의 공간도 취약계층 노동자에게 허락하지 않는 자본의 폭력이며, 우리의 방임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나는 지난해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청소노동자 휴게실 개선 사업에 관해 취재를 한 적이 있었다. 난생처음으로 아파트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의 현주소를 직접 목도하게 되었다. 아파트 노동자의 휴게실은 평온한 우리들의 집 아래에 감쪽같이 숨겨져 있었다. 우리의 민낯을 처음으로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부터 습하고 탁한 공기가 내 숨을 막았다. 어느 영화처럼 갱단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 가는듯한 착각도 들었다. 콘크리트와 철골이 그대로 드러난 벽과 천장 아래, 청소도구가 가지런히 모여 있고 걸레와 장갑 등이 빨래건조대 위에 널려 있었다. 그리고 한국 자본의 표본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아파트)를 등에 지고 버티고 서있는 콘크리트 기둥들의 버거움이 너무도 가엾게 느껴졌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자 공간 끝 쪽에는 식탁과 의자 몇 개가 놓여있었다. 이곳에서 노동자들은 곰팡이와 함께 밥을 먹고 습한 기온의 차를 마시며 잠시 숨을 고를 것이다. 그 옆으로 잠시 몸을 기댈 수 있는 방 하나가 있다. 허름하게 도배된 벽과 바닥에 깔린 이불이 아니었다면 방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습한 곰팡이 냄새와 하수관 오물 냄새가 섞여 축축한 지하 공간을 채웠다. 잠시 머물렀을 뿐인데 지하에 갇힌 공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역한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나를 쏘아붙였다. 나라면 잠시도 머무르기 싫은 곳,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공간에 청소노동자의 휴게실이 초라하게 구겨져 있었다. 영화 기생충이 생각났다.
다행히도 현 지자체에서는 이런 공동주택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개선점을 찾아 나서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고양시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가 앞장선 가운데 청소노동자 휴게실 개선 사업을 시행하고 있으며 청소·경비노동자의 휴게시설과 관리사무소 면적을 별도로 확보할 수 있도록 건축법 시행령 개정을 정부에 건의하여 제도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경기도에서 시행·공급하는 GH아파트에는 휴게시설을 설계·시공에서부터 반영될 수 있도록 의무화했고 도내의 기존 청사와 산하 공공기관의 휴게시설을 모두 지상화 했으며 냉장고, 에어컨 등 편의시설을 구비하여 청소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했다. 건축기술이 발전해 온 역사에 비하면 너무도 뒤늦은 후회이고 사회의 관심이라 생각한다. 이 관심이 현실 법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선 나는 무척 회의적이다.
이런 가운데 지하에 묻힌 건 우리 청소노동자들 뿐 일까?
나는 최근 들어 일 관계로 신축된 한 고층 아파트를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아파트는 현대식 건물답게 주거자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한 듯 보였다. 1층 공간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상점과 어린이집이 자리했다. 아파트 외부 공간에는 정원과 함께 꾸며진 놀이터가 있었고 업무용 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는 건물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예전엔 아파트와 상가를 분리해서 설계를 했는데 요즘은 주거지와 상가를 결합시킨 복합구조의 아파트가 기본형이 된 것 같다. 또한 지상주차장을 모두 없애고 지하 주차장을 널찍하고 깊게 파서 자동차들을 모두 땅속으로 몰아넣었다. 덕분에 아파트 주거 환경은 무척 쾌적하고 안전해졌다. 그리고 현대의 신 건축기술은 사라진 지상 주차장 공간을 활용하여 더 많은 집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상 용적률은 작아졌고 주차장이 빠진 공간만큼의 아파트 동 간 거리가 더 좁아졌다는 것을, 한 층이라도 한 채라도 더 지어서 수익의 극대화를 노리는 기업의 꼼수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까지 이 건물 103동 지하주차장에 관리사무실로 생각되는 사무실 하나가 있었다. 나는 주로 이 사무실 건너편에 주차를 하곤 하였다. 그곳에 매일 주차를 하면서도 지하주차장에 있는 사무실의 존재 여부가 문제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다만 주차선도 그려지지 않은 사무실 앞에 주차한 누군가의 차 때문에 내가 불편을 겪게 되어서 내심 짜증을 낸 적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이 철거되는 현장을 목격했다.
‘무슨 공사지? 사무실이 있던 자리인데?’
때 아닌 공사로 어수선해지자 그때서야 관리사무실이 지하주차장에 있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철거 공사는 너무도 쉬웠다. 사무실을 표시하는 가벽을 몇 개 들어내고 주차선을 그리니 공사 끝. 관리사무실이 철거되고 그 자리는 주차공간이 되어 자동차 몇 대를 더 주차할 수 있게 되었다. 103 동쪽 주차가 수월해졌다.
지하주차장에서 사무실이 사라지자, 나는 새로 생긴 주차선을 볼 때마다 생각들이 겹쳤다. 사회와 이웃의 일에 무감각한 나 자신과 개선의 의지조차 없는 이 나라의 노동법과 건축법의 현실이 다시 보였다. 최근에 신축된 건물에 청소노동자 휴게실도 아니고 관리사무실이 여전히 지하에 있었다니. 그렇다면 물어볼 것도 없이 이 건물에는 청소노동자의 휴게실도 지하의 어느 구석에 얇은 벽을 보호막 삼아 들어앉아 있었겠구나, 싶었다. 사회의 곳곳에서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인권에 대해 논쟁을 일삼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도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은 여전히 땅속에서 누워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지하에서 관리사무실이 사라진 이유가 알고 싶어졌다. 입주민들의 입주가 완료되고 상가가 채워지자 이 아파트에도 주차공간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곳 관리사무실을 위로 올리고 주차공간을 확보하기로 한 것인가? 아니면 직원의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한 지자체의 권고 때문인지, 혹여라도 아파트 주민들의 아름다운 마음 때문인지 알고 싶어졌다.
내심 이런 생각도 있었다. '아마도 지자체의 권고사항일지도 몰라. 요즘 지자체와 사회단체들의 공공주택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사회 관심이 뜨겁지 않았었나?' 너무도 궁금한 나는 벽에 붙은 전단지에서 관리사무실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해보았다.
"안녕하세요. 관리사무실 위치 좀 수 있을까요?"
전화 속 남자가 대답을 했다.
"네. 103동과 104동 사이 ‘지하 1층’에 있습니다."
원래부터 관리사무실은 103동과 104동 사이의 지하 1층에 있고 103동 아래에 있는 지금 철거한 사무실은 하자보수 관리사무소였다고 한다. 나는 하자보수 관리사무소를 관리사무실로 착각했던 것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실은 지하 1층에 처음부터 자리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나는 참으로 이상적인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앞서간 상상력이 민망했다. 우리는 왜 이 높고 높은 건물 중에 아직도, 여전히, 한 칸의 공간도 그들을 위해 할애할 수 없는 것일까?
그 뒤로 거대한 쇼핑몰에 갈 때마다 땅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내 시야에 목격된다. 우리 사회에는 청소노동자뿐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들이 지하에서 일을 하고 있다. 쇼핑몰의 푸드 코트, 마트 등 지상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노동자들이 정말 많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건축기술이 좋아질수록, 건물의 위상이 높으면 높을수록 지하층은 더 깊어졌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옛 집엔 지하가 없었다. 사람을 따뜻하게 하는 구들 골이 있었을 뿐.
아무래도 자본주의식 건축 스타일 문제가 있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