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태일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 것인가

인권변호사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

by 헬로해피 최유영

나에게는 글을 써야 하는 나름의 목적의식이 있다. 내 주변의 노동문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그러나 이 주제에 대해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막연해서 시작도 못하고 있던 터였다. 때마침 고양시 이재준 시장이 <책읽을고양 북 토크> 4월의 책으로 인권변호사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을 추천했다. 나는 전태일을 첫 스타트로 노동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이번 기회에 물꼬를 트는 심정으로 몇 일째 좌판을 두들겼다. 너무 힘이 들어가서인지 글은 풀리지 않고 생각은 엉키고 잠잠했던 화가 치밀어 올랐다. 멀미가 났다. 노동에 관해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은 어렵기도 하거니와 오히려 내게 독이 될 수 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어찌 되었던 ‘나는 전태일을 써야 한다’로 결론을 내렸다.


왼쪽 최인훈 작가님 아들 최윤구 님, 가운데 고양시 이재준 시장님, 오른쪽 김경윤 인문철학자님


당시 주 48시간 노동, 주 1회 휴일이 근로기준법으로 의무사항이지만 이들에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여공들은 하루 14시간을 허리도 펴지 못하는 닭장 같은 곳에서 쪽잠을 자며 일했고 그로 인해 직업병을 얻으면 아무런 보상 없이 쫓겨났다. 태일이 월 2회 휴일, 하루 10시간 근무를 호소했으니 그때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태일은 피복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실태를 조사하고 언론에 알리는 등,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의 행태를 근로감독관에게 고발했지만 사회는 침묵했고 오히려 이들을 유린했다. 사업주와 결탁한 정부기관의 부패와 역시 정치적 이유가 컸다. 하지만 그는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삶을 살지 못하는 가난한 밑바닥 노동자들을 두고 그대로 좌절할 수만은 없었다.


당시 피복 노동자들 노동환경, 네이버 출처


전태일이 처음 분노한 대상은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부(富)한 자본가였다. 어린 여공들을 착취하는 평화시장의 사업주였고 가난한 사람들을 인간 아래 또 다른 종(노예)으로 생각하는 부(富)의 세력들이었다. 그러나 … 그는 이내 깨닫게 된다. 정작 싸워야 할 대상은 다름 아닌 사회의 전체적인 억압적 구조와 힘이라는 것을.


그의 마지막 결단, 바로 사회의 부조리한 권력이 자본과 결탁하여 만든 부패한 사회 때문이다. 침울하고 기울어진 사회 구조. 근로기준법이 있다 한들 지켜질 의지조차도 없었던 세상. 부조리한 세상에 휩쓸려 나약한 자신과 폭력의 사회에 이끌려갈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잠자는 인식. 오히려 깨어나는 전태일을 조소했던 냉소적인 사회의 태도 때문이었다. 전태일의 선택은 공공의 선(善)이 작동되지 않는 무지한 사회의 무력감에 대한 저항이었다. 부패한 사회는 정의와 옳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전태일의 불꽃같은 투쟁은 시대의 인식을 너무 많이 앞 서 버린 그의 사상과 의식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귀를 닫은 침묵의 시대에선 그 결단만이 유효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존엄을 짓밟고 인간 본질의 희망을 말살시키는 세상에 대한 시대적 질문을 자신의 죽음으로 표출해야 했다.


1970년 11월 13일, 그는 세상에게 자신을 영원히 기억하고 자신의 뒤를 따르라는 말을 남기고 불꽃이 되었다. 올해(2021년)로 51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월 동안 그의 고통의 희생 속에 세워진 밑바닥 사상이 민주화 운동으로, 사회운동으로 확장되어 왔다. 그의 바람대로 사회는 움직였고 노동자들의 의식은 깨어났으며 많은 긍정의 변혁들을 이끌었다.


“그는 생각한다. 그리고 환멸과 …… 자기 자신의 나약한 소리를 증오하면서.
인간의 둘레를 얽어매고 있는
인간이 만든 ……
인간 본질의 희망을 말살시키고 있는
모든 타의적인 구속을 …….”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치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人間像)을 증오한다.”

(조영래, 전태일 평전)


그럼에도, 그러나, 나는 지금의 나에게, 당신에게 묻고 싶다. 그 시대에 그가 느꼈던 그 환멸적 세상이 지금은 모두 소멸되었느냐고. 전태일이 증오했던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인 사회는 말소된 것이냐고.


그의 죽음이 불씨가 되어 타올랐던 민중의 역사를 비웃기라도 한 듯 우리 사회에는 또 다른 형태의 평화시장의 수많은 여공들이 존재한다. 아직도 기울어진 세상에서 기울어진 배가 가난한 사람들을 태우고 침몰하는 세상이다. 청년 김용균은 인간의 존엄을 빼앗긴 채 도급 노동의 현장에서 죽어갔고, 집배원과 배달노동자들이 과로사하고, 하루살이 건축노동자들의 산재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청소노동자의 휴게실은 여전히 땅속에 무덤처럼 누워있고,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더 깊은 지하로 하급 노동자들의 일터가 즐비해진다.


1970년, 그 시대와 지금을 비교를 하면 우리는 얼마나 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냐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최소한 그 시대의 사람들처럼 굶주리는 사람은 없고 민주사회보장 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에서 모두가 안정되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전태일이 지금 살아있다면 우리를 향해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세상은 그 시대와 다름없이 부(富)한 세력가들에게 유리한 세상이 되어 가고 있지 않던가.


고(故) 신영복은 묻고 있다. “현재의 우리는 전태일을 옳게 읽고 있는가. 저마다 작은 욕망을 위해 읽고 있지는 않는가.” 현시대의 노동운동의 현장을 직접 목도한 나로서는 신영복 선생님의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없다. 우리 사회는 약자들을 위한 하방 연대의 노동운동을 펼치지 않는다. 또 다른 형태로 진화되어온 현시대의 평화시장 여공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노동법은 그 시대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가장 약한 곳에서는 무용지물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이나 소사업장에서의 노동법은 평등하지도 않다. 늘 생존권이 불안한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권리를 말할 수 있을까? 평화시장의 여공들처럼 말이다.


다시 오월이 오고 있다. 우리는 전태일의 정신을 앞세워 욕망의 단상 위에 서서 노동절을 또다시 기념할 것이다. 우리가 잊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우리는 전태일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 것인가. 여전히 아프고 슬픈 오월이 될 것 같다. 우리의 봄은 어쩌다 이렇게 노란 슬픔으로 얼룩이 져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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