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우리 집 큰아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과 전화통화를 했다. 그 집 아들과 우리 아들은 초·중·고 동창이었고 같은 아파트에 살았었다. 우리는 가족끼리 어울려서 여행을 가기도 했고 남편들끼리는 술친구를 하다 지갑이며 겉옷을 잃어버리고 온 적도 있었다. 그랬던 그녀와는 2019년 고양시 꽃 박람회장 입구에서 만난 뒤로 처음 연락하는 것이었다. 그때 그녀는 꽃박람회 행사를 위해 보조 인력으로 일을 하는 중이었고 나는 소셜기자단 발대식에 참석차 찾은 것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연락한 것이어서 어색하기도 하련만, 정이 뚝뚝 흐르는 목소리에 자주 만난 사람인 듯 자연스러웠다. 서로의 마음은 정으로 넘치지만 그동안 서로의 사정들을 알지 못하고 살아왔던 터 라 아들들의 진학문제부터 남편들과 우리들의 근황까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노총 사무실 그만 두었잖아요.”
“그래요? 언제요?”
“2년 쯤 되었어요.”
“동주 맘은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나도 그동안 별별일을 다 했어요.”
“무슨 일요?”
“선인장 농장에서도 일을 했고, 콜센터 전화업무도 했어요.”
“그래요?”
“선인장 농장에서는 하루 종일 뙤약볕아래서 일을 해서 얼굴에 기미가 꽃처럼 활짝 피었었어요. 1년을 일했어요.”
“그래요? 정말 대단하시네요.”
“전화영업은 2달 정도 했어요. 매니저가 바로 내 옆자리였는데 자기 심사가 뒤틀리면 내게 온갖 참견을 하며 인격모독의 언어들을 서슴지 않았어요. 그래서 2달만에 바로 퇴사해버렸어요. 몸의 고됨은 참고 일해도 인격적 모독을 정말 참기 힘들더라구요.”
“밖으로 들어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가 경험한 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저는 지금 한 발달장애인친구를 돌보고 있어요. 저도 힘은 좀 들지만 그런 어른들과 섞여 일하는 것보다는 더 나은 것 같아요.”
“우리 나이에 일이 다 그렇죠. 할수있는일 하며 살면 되는 거 같아요. 제 남편도 지금은 안하는 일 없이 이것저것 다 하며 살아요. 놀면 뭐해요. 뭐든 일하며 살아야지.”
그녀는 쇼핑몰 상가주인이다. 지금은 어떤 변화가 있을 지 모르지만 알기로는 매달 고액의 월세가 따박따박 나왔었다. 또 임대차 사업을 하는 부모님을 두어 제법 풍족한 삶을 살아왔고 몇년전까지만해도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운영 했었다. 그녀는 우아한 말투와 외모가 매우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예전부터 외향적인 모습에 어울리지 않게 생활력이 강하다는 인상을 받아왔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이런 일까지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녀는 선인장 농장에서 같이 일했던 언니들도 모두 집안 좋고 부유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놀면 뭐해!’라며 낮에는 똥구루마를 끌며(그녀가 말하길…) 열심히 일하고 때론 밤에는 와인 바에 가서 우아하게 와인을 마신다고 했다.
그녀는 품위나 체면을 따지며 살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을 해학으로 풍자할 줄 아는 풍성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이런 일까지 해봤다!’ 라며 노동부심을 가졌다. 내심 나의 일을 앞에 내세우며 살지 못했던 내가 한심해 보였다. 이들 앞에서는 내가 얼마나 땀을 흘리며 열심히 살고 있는지를 한없이 자랑해야만 할 것 같았다. 빨리 이 친구를 만나 누가 더 힘든 노동을 경험했는지 배틀이라도 한 번 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