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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Oct 14. 2022

나는 이제 여자랑 살고 싶다

나는 이제 여자랑 살고 싶다.


나는 청소와 사물의 질서에 대해 인지가 부족한 세 남자와 25년 째 동거 중이다. 맨 처음 첫번째 남자를 만나서 25년 째, 두번째 남자와 24년 째, 세번째 남자와는 22년 째 살고 있다. 

우리는 16년 전, 1기 신도시로 이사를 했다. 그때에도 충분히 오래 된 집이어서 올 수리를 하고 입주했다. 값싼 비용을 들인 인테리어였지만 깨끗해서 나름 만족했다. 또 가진 짐이 단출한 맛에 깔끔하고 아늑한 집안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던 우리 집이 오랜 세월과 무관심 속에 여기저기 손 볼 곳이 많아졌다. 쓸고 닦고 청소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4춘기(40대)를 겪는 동안 살림 보다는 내 인생을 찾는 일에 더 몰입한 내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내 집이 이런 꼴로 방치되어 왔다고 생각하니 자존심도 상했다. 집과 여자는 가꿔야 한다는 친정 어머니의 말이 자꾸 생각이 났다. 노화되어 초라한 우리집이 늙어가는 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된데에는 나의 첫번째 남자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첫번째 남자가 어느 순간(내가 밥을 제대로 해주지 않을때부터 시작되었던 같기도 하고…) 자신의 섭식을 위해 살림살이와 먹을 것을 이것저것 사들였다. 그의 이 행위들은 수납 공간이 적은 우리집에 큰 애환을 안겨주었다. 남자는 물건을 사서는 구석구석 쑤셔 넣고 코너코너에 쌓아 두기 일쑤였다. 나는 이 남자가 마치 시골 할매라도 된것 같은 착각을 받곤 했다. 

이런 상황이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치워도 치워도 구석구석에 박히고 코너코너에 쌓인 살림살이로 인해 우리 집안은 늘 어 수선했다. 내가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져서인지 우리 집의 어수선한 환경이 내게 큰 스트레스로 작용되었다. 나는 자연스레 세 남자를 향해 잔소리가 더(!) 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익숙한 내 잔소리를 묵직하게 흡수를 할 뿐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인지 뻔히 알면서 ‘야호!’ 하고 힘껏 외치는 것이 얼마나 진이 빠지는 일인지 새삼 다시 알게 되었다고 나 할까.

“아들, 일단 네방 도배부터 해보자. 그럴려면 저 큰 책장부터 처리해야 해.” 때마다 돌아 오는 대답은 “그냥 이대로도 괜찮은데 뭐하러 해요. 쓸데 없는 일이에요.” 자기가 움직일 일을 벌일 것이 무척 귀찮은 듯 했다. 아니, 벽 상단에는 구름이 떠있고 하단에는 축구단 아이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벽지가 괜찮다고? 22살 국군 장병이 할 말은 아닌것 같았다. 우리 집 세 남자 중 가장 공감력이 뛰어난 세번째 남자 마저도 이런 형편이었다. 남편도 집수리에 대해 불만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집수리 비용도 부담이지만 귀찮은 일이 크게 벌어질 생각을 하니 까마득한 눈치였다. 

그럼에도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마음에 품은 일은 적극적인 행동이 아니어도 시나브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더라. 마음이 가 있는 곳으로 우리의 몸이 나도 모르게 움직이게 되더라. 그 마음만 버리지 않는다면 언제가는 내가 그 꿈의 땅을 밟고 서있게 되더라.

나는 계속 가족을 설득(?) 아니 투쟁 했고 남편을 졸라 시간이 날때마다 인테리어 시공업체들의 정보를 알아보려 발 품을 팔았다. 그래서 결국엔 내 꿈을 이루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 나는 남자와 여자가 참으로 다르다는 사실은 새삼 깨달았다. 내게는 집안의 정리 된 환경과 청결이 아주 중요한 덕목에 해당이 되는데 나의 동거인들은 집안의 무질서에 대해 전혀 무감각 했고 무관심 했다. 물론 예외는 늘 있는 법이어서 정리를 잘하는 남성도 있겠지만, 같은 형태를 보고도 이렇게 다른 감성과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기도 했다. 나와 다른 세 남자를 보며 나는 잠시 외롭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 순간 만큼, 남은 인생은 남자가 아닌 여자랑 살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러나 반전이 있었다. 집수리가 점점 완성되면서 남자 셋 그들도 아름다운 것, 편한 것,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번째 남자는 싱크대 교체가 완공되자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아기자기한 살림살이를 사들였다. 나보다 더 여성스럽고 섬세해 보였다. 가장 먼저 자기 섭식을 위해 찻물을 끓일 에지리 주전자 부터 주문했고 내가 선택하여 설치한 백조 싱크볼에 스크레치라도 날까봐 고무 바킹이 달린 설거지 그릇을, 싱크대에 어울릴법한 음식물 쓰레기통을 신중하게 골라 사들였다. 가위, 간접 조명, 장식용 디지털 시계, 심지어 나비 장식까지, 심지어 계란말이용 사각 팬까지……휴……. 

또 나의 두번째 남자는 어떠한가. 내가 우리집이 새롭게 달라질 때마다 어떠냐고 물어 볼때 마다, 자신은 이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어 할말이 없으니 공감능력이 뛰어난 세번째 남자에게 물어보라 던 녀석이, 이번 주말에는 자기 친구가 우리집에서 자고 갈것이라고 통보를 했다. 

또 아동 벽지가 붙어 있는 방도 괜찮다던 세번째 남자는 우리 집의 변화된 모습을 사진으로 보낼 때마다 “와우~ 대박~ 딴집 같아요~” 하며 좋아했다. 우리 집 세 남자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질적 습성을 내게 딱 들키고 만것이다.

내가 남은 인생을 여자와 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러나 다행인것은 집수리를 통해 우리 집 세 남자들 안에서 귀여운 여성성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이 아름다운 시선을 놓칠 수는 없다. 이 기세를 몰아 나는 앞으로의 내 삶을 여성성은 줄이고(어차피 그렇게 된다고 들 하지만) 남성성을 발휘하며 살고자 한다. 지금으로선 매우 가능성이 높은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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