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정복기

자기만의 방은 혼자일때 완성된다

by 헬로해피 최유영

자기만의 방 정복기


고등학교 때부터 혼자 방을 사용했다. 같이 방을 쓰던 언니가 서울로 떠났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의 공간이 생기자 비로소 나의 사춘기를 사춘기 답게 보낼 수 있었다. 밤에 라디오를 들으며 사색에 잠길 수 있게 되었고 내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독백을 일기에 적곤 했다. 나만의 공간에 나를 가두고 내 마음을 놀게 했다. 내가 오롯이 나로 살 수 있게 된 첫 경험이라 말할 수 있겠다.

내가 전문대를 졸업하자 우리 집이 인천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언니에게는 예쁜 침대와 사계절용 양모 침구와 화장대가 생겨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양모 이불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했다. 언니의 서울표 침대와 화장대와 예쁜 침구가 인천에 있는 우리 집으로 옮겨져 왔다. 새로운 방을 언니와 함께 쓰다가 언니가 결혼을 하게 되자 나는 그 침대와 양모이불을 물려받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게 기뻤는지 그 즉시 남자친구와 함께 백화점에 가서 작고 예쁜 롯데오디오를 구입해서 언니의 화장대 위에 올려 나만의! 나다운!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나를 가두고 내 마음을 놀게 했다. 외로웠고 우울했지만 동시에 내가 나를 만나는 시간이어서 좋았다.

그 후 결혼을 해서도 나는 나의 공간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내게는 책을 읽고 사색을 하고 우울에 빠지고 슬퍼하고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주로 거실 테이블과 주방 식탁이 내 공간이 되어 주었다. 우리 집 수 사자들은 침대밖을 참 많이 무서워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쪽 귀퉁이에 나를 위한 공간을 꾸며둔들 혼자가 아니면 내 공간의 위력은 사라지게 된다.

‘자기만의 방’은 혼자일 때 완성된다.

그러므로 나에게 집은 생겼어도 정작 나의 공간은 없었다. 우리 집은 우리 가족의 공간으로서 존재했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나에겐 집안에서 조차도 혼자 숨어들 곳이 필요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울 공간이, 내가 나를 안아줄 공간이 필요했다. 내가 나를 이해할 나만의 공간. 나는 그토록 내 공간에 대한 원너비를 한평생 안고 살아왔었나 보다.

지금의 나는 애써서 내 공간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쓸쓸함과 외로움이 넘치게 되었다. 자식들은 성인이 되어 독립했고 2교대 근무를 하는 남편과도 적당히 분리된 일상을 살게 되었다. 심지어 우리 부부는 휴일도 달라서 개인 시간이 많아졌다. 내게 온전한 내 공간이 넘치도록 생겨난 것이다. 주로 우리 집 주방이 될 것이다.

우리 집 비좁은 주방에는 CD플레이어가 있는 낡고 오래된 오디오가 아주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남편이 가져온 오디오이다. 내 롯데 오디오는 신혼 때 겪은 주택침수로 사망한 걸로 기억된다. 요즘은 작고 예쁘고 성능도 좋고 공간도 많이 차지하지 않는, 심지어 합리적 가격의 오디오 제품이 많은데 나는 아직도 이 낡은 주화색 SONY 오디오를 고집하고 있다. 채널전환이 잘되지 않아서 93.9 채널만 고정해서 사용해야 하는 오디오. 이 오디오는 내 공간에 대한, 또는 나를 향한 사랑의 증표다. 평범한 공간이 때론 촉촉한, 때론 명랑한, 때론 추억을, 때론 슬픔에 젖게 만들기도 하는 내 감정의 애인 같은 존재 말이다.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게으름이 허락되는 느림의 공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글을 쓰게 되는 공간, 음악이 있는 혼술의 공간, 감정이 정화되는 공간, 마음이 쌓이는 공간, 우리 집에서의 내 공간은 점점 늘어났다. 추운 날엔 침대 위, 날이 따뜻해지면 거실의 원목으로 된 안락체어, 아침이나 저녁시간에는 라디오를 들으며 식탁에 앉아 나를 바라본다. 우훗~ 온 집안이 내 차지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이 현상은 아들들의 독립만세!로 인해 내가 가족을 돌볼 시간이 줄어서 생겨난 호사인 것이다.

나는 빈 둥지는 엄마들에게 꼭 슬플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자식을 떠나 보내 쓸쓸하고 슬프지만 한쪽 입꼬리가 갈매기를 그리며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 이 심쿵한 마음 아들들에게 미안해 하지 않으련다. 더더구나 나는 빈 둥지의 쓸쓸함과 고요함이 너무도 로맨틱하단 말이지.

그러므로 나는 되도록 우리 집이 더욱 아늑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가구의 위치를 바꾸거나 낡은 가구를 교체하거나 때가 탄 백지에 하얀 페인트칠을 하거나 카펫을 깔고 하얀 침대포로 최선의 공간을 만들려 노력한다. 나의 로맨틱이 아들들의 부재에 뭍혀 외로움으로 변질 되지 않도록.

그러나 이 좋은 느낌들도 더 나이가 든다면 달리 느껴질지 모르겠다. 관계에 빈약한 내가 더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을 때, 늙어가는 시간처럼 모든 것이 소진되어 외로움만 느끼게 되는 그런 날이 오겠지. 어차피 사람은 늙어갈수록 홀로 극복할 시간들이 더 많아질 테니까. 나는 그때가 되어도 혼자된 내 공간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려 한다. 나이가 들어도 지금처럼 쓸쓸함에도 춥지 않도록 외로움을 즐기는 사람으로 살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나의 내장에 더 단단한 근육을 키워야 한다. 엉덩이에 쿠션감을 키워 오래도록 독서를 즐기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나의 공간이 더욱 아늑한, 더욱 매혹적인 향기를 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