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생각의 힘 : 이게 다 무슨 소리냐?
아이들에게 온 정성을 쏟아야 할 시기에 내가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이들과 분리되고 싶었고 집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원하면 이루어진다 했나? 첫째가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 나는 실제로 취직이란 걸 하게 되었다. 내가 직장 생활이라도 해야겠다는 뜻을 보이자 지인이 내게 노총 지역 사무실 알바 자리를 소개해준 것이다.
혼돈의 나를 극복해 보고자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외부 세계의 혼돈이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혼돈의 카오스는 내 안에 만 있었던 문제가 아니었다. 나보다 외부 세계는 더 무지막지한 혼돈의 세계였다. 그렇게 시작된 나와 외부 세계가 만든 혼돈의 우주. 그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사유란 걸 하게 된 것 같다. 주로 책에서 얻었고 습작으로 정리했다. 그렇게 나는 뒤 늦은 나의 우주를 조금씩 만들어갔다. 내가 갖지 못한 새로운 세계가 막연한 꿈이 되기도 했고 모순된 세계가 나를 비판적 사람으로 변화하게 했다.
아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고 나를 가둔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살았을 뿐이다. 그런 나를 인식하지 못하고 아주 작은 세계에 나를 가두고 살고 있었던 것 뿐.
그렇게 혼돈의 우주가 나를 집어 삼킬 때 즈음, 나는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 혼돈의 사유를 어디론가 흘러버리고 싶었던 것 같은 갈망으로. 각종 미디어에 미친 듯이 쏟아지는 정보가 신기했다. 내 안에서 막연한 소망 같은 것이 저절로 솟아났다. 나와 다른 자들의 삶이 참 재미있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블로거 홍지오의 3개월 간의 산티아고 여행을 랜선으로 함께 하게 되었다. 그의 블로그에 매일매일 올라오는 글을 따라 나도 함께 걸었다. 후에 이 글들은 <말로는 표현이 부족한 것들의 이야기>로 출판되었다. 산티아고를 그와 함께 걸으며 나도 저 사람처럼 '자유하게, 유연하게, 철학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아들들의 해외 생활은 그때의 나의 생각 한 스푼이 스며든 것이라 생각된다.
와중에 아이들의 진로를 걱정할 시기가 되었다. 나는 마음에 품었던 막연한 내 생각을 남편에게 내비쳤다. 남편은 흔쾌히 내 의견에 동조했고 우리는 그렇게 아이들에게 유학을 설득했다. 아이들이 좀 더 넓은 세계를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다행히 공부를 잘하지 못해서, 아들과 갈등이 깊어서 가능했던 생각이었다. 우리에게 갑자기 경제적 위기가 찾아와서 하게 된 생각이었다. 만약 우리 가정이 순탄한 삶을 살았다면 남들과 다른 길을 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수순대로 공부 열심히 시켜서(?) 어찌 되었든 아들들은 국내 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가지 않았을까? 아니면 어쩌면 아이들과 관계가 더 나빠졌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게 다 무슨 소리인가?’여기 저기 묻는 소리가 들려온다. 공부를 못해서 가난해서 유학을 보낼 결심을 했다니 말이다.
아들들이 중·고등학교 시기 우리에게 닥친 경제적 위기는 아이들에게 어떤 기회도 줄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다시 힘을 낼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현실에서 우리가 생각해 낸 대안은 학업을 뒤로 미루는 것, 사교육이 필요 없는 대학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우리는 아이들의 삶에 조금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줘야겠다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너무 벅차게 될까 봐, 불가능하게 될까 봐, 많이 불안했고 걱정했지만 아마도, 정말, 삶은 원하는 데로 움직이나 보다.
우리가 출발만 같이 해준다면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해 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또 그럴 것이라 믿고 시작한 일이었다. 남편과 나의 이 작은 결심은 결국 아이들에게 앞으로 나아갈 아주 작은 힘 그리고 미래를 그리는 지도를 만들어준 것같아 일단은 만족한다.
이렇게 내 작았던 아이들은 도전의 삶으로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이 떠난 빈 둥지를 지키는 사람으로 살게 되었고 우리 아이들처럼 나의 청년시절에도 하지 못했던 홀로서기 연습을 하고 있다.
막연한 꿈 한 스푼을 꾸어 아이들이 더 큰 세계로 나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준 나 스스로를 칭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