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게 다 돈문제
남편과 나는 첫째 아들(이하 첫째)에 이어 둘째 아들(이하 둘째)도 아일랜드 대학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큰 뜻은 없었고 아이들이 적당한 대학을 골라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 보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바램이었다. 그리고 아직 한국은 대학 졸업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커서 대학 이력은 있어야지 싶었다.
우리가 선택한 대학은 학교성적 5~6등급과 아이엘츠(IELTS) 성적 6.0 이상이면 가능 했다. 욕심껏 지원한다면 더 상위 대학을 선택할 수도 있었겠지만 상위 대학은 학비도 그만큼 비쌌다. 두 아이를 동시에 보내야 하다 보니 아이들 성적이 그리 훌륭하지 못하다는 것이 위로가 되는 상황이 참 아이러니 했다. 자칫 졸업을 못할 위기 의식도 함께였다. 파운데이션 이라는 기초 과정없이 다이렉트로 대학 공부에 도전하는 것이라서 학점도 걱정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국내 대학을 위한 투자보다 아일랜드 대학에 투자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고등학교 3년동안 들어갈 사교육비라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남다른 기회를 주고 싶었다. 가진것이라곤 아직 대출금이 남은 30년이 된 아파트와 그런데로 쓸만한 건강이 전부였지만 나에겐 두 아들에게 아일랜드 유학을 권한 나름의 타당한 이유들이 있었다.
첫째, 돈 문제다. 우리는 수도권에 살고 있지만 집 근처 대학에 갈 수 ‘없음’이 분명해 보였다.
수도권에 사는 데 지방대라니…… 이 억울함이…….
지방대를 목표로 한다 하더라도 사교육은 필수다. 3년 사교육비와 해외 유학비를 따져보니 차라리 학부 성적에 맞는 적당한 해외 대학교를 보내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지방대를 가거나 아일랜드 대학을 가거나 집세와 생활비가 따로 드는 것은 마찬가지일테니 말이다. 한국도 집세와 생활비는 더블린 못지 않게 비싸다. 놀거리가 많으니 용돈도 추가다. 그러나 아일랜드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시급이 훨씬 높고 학생비자로 주 20시간 알바를 할 수 있다. 생활비는 충분히 충당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놀거리도 없어서 용돈도 절약이다. 아이들이 생활비를 벌어준다면 꽤 괜찮은 셈법이라 생각했다.
둘째, 국내대학을 위한 비싼 사교육이 아이들 성적에 전적으로 도움이 될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첫째 초등학교때부터 학원에 열심히 투자를 해 본 결론이다. 또 삶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은 과목들에 이렇게 목숨을 바쳐서 공부를 해야하나 회의가 들었다.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몰라도 우리 아이들 한테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셋째, 부모의 정보력이다. 요즘은 수시전형을 지원하면 더 좋은 대학에 갈 확률이 높다. 나는 가난한 직장인으로 사느라 아이들 학업 정보에 있어 이미 무능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물론 스스로 잘 알아서 하는 아이들도 있다지만 사실 부모 도움없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확률은 극히 드물다. 첫째가 초등학교때만 해도 나도 열혈 엄마로 학원가 정보를 꿰 뚫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내겐 다시 아이들 학업에 쏟을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하필 첫째가 새로운 학년으로 올라갈때마다 바뀐 교육제도나 입시제도가 내겐 더 두렵게 다가왔다. 우리나라 공교육은 불친절 했고 대학입시는 변방의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시스템이었다. 나는 생선 비린내 같은 비릿한 우리나라의 입시제도에 더 이상 합류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대한 거센 불만과 비판이 컸던 시기어서 마냥 삐딱해지고 싶었다.
처음부터 아이들 유학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첫째가 고등학생이 되자 남편은 나름 이름있는 광고 대행사에서 이직한 두번째 회사를 퇴사 했고 우리는 모두 의기소침해 있었다.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상황에서 공부에 뜻이 없는 첫째에게 밑빠진 독에 물 붓기인 사교육비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학원비의 부담이 첫째에게 화살로 돌아갔다. “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거니? 학원비가 얼마인지나 알아?”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이 말들에 아들도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아들은 나와 갈등이 심해지자 공부를 포기했다. 그리고 남편이 다시 일어날 때까지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당장에는 사교육비가 지출되지 않는 아일랜드 유학으로 방향을 돌렸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안일한 마음으로.
방황하는 첫째가 대학대신 차라리 세상구경이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벌인 일이었다. 그러나 첫째는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했고 별 의욕도 없었다. 친구와 일본여행이 다인 아이가 홀로 세계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아일랜드 어학 연수다. 나의 이런 의견에 동조한 남편이 나섰고 남편 뜻에 따라 유학까지 준비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둘째도 형을 따라 아일랜드 대학으로 진로를 정하게 된것이다.
덕분에 둘째는 입시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고등학교 3년을 아주 자유하게!(노동하고, 놀고, 입시지옥에서 해방된) 보낼 수 있었다. 이 자유의 결과는 너무도 만족스럽다. 둘째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일찍이 책임감과 독립심이 생겼다. 세상 어디에 내 놓아도 살아갈 생명력이 있는 아이로 성장했다. 첫째에게도 더 일찍 이런 자유를 주었으면 어땠을까 후회가 많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은 돈(사교육비)을 지불해가며 자유를 통제하고 스트레스를 주었던 첫째에게 항상 더 많이 미안하다.
그 사이 남편은 서울 시내버스 노동자가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우리 형편에 두 아들을 유학까지 보낸다고 하니 매우 걱정스럽게 생각했다. '요즘 영어 잘하는 애들이 한둘이 아닌데 의미가 있겠냐, 애들이 원해서 보내는 것이냐, 너희 노후는 어떻게 할 것이냐, 유학 보냈다가 더 잘못된 애들도 많더라.' 하며 나쁜 사례들을 나열했다.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말들이 많았다. 버스 노동자 형편에 자녀를 위해 이런 일을 벌이기는 다소 무모해 보였을 것이다.
사실 우리 부부도 겁이 났고 부담도 많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의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제도)이 우리가 선택해야 할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학이 우리나라 교육비보다 감당하지 못할정도로 많은 비용이 드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일랜드는 유학생에게 휴학과 알바가 허용되는 나라다. 부모의 형편이 어렵게 된다면 휴학을 하고 스스로 학비를 벌어서 충당하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유학은 돈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살아보겠다는 용기있는 마음으로 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이 용기를 갖게 해주고 싶었다. 삶이란 것은 꼭 정해진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꼭 알려주고 싶었다.
2019년에서 2020년까지 코로나의 위기속에서 아들들은 해외에서 8개월의 어학 연수와 1학년을 무사히 마쳤다. 사실 무사히는 아니고 코로나때문에 엉망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경험마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전 세계를 강타한 전염병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편하게 생각했다. 부족하면 조금 더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첫째는 군복무시 다친 손가락 재수술과 학업을 계속 해야할지 좀더 생각이 필요해 보였고 둘째는 군입대를 하느라 휴학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첫째가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갔고 둘째는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중이다. 학비를 모아 이번 학기에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갈것이다.
아들들의 유학이 아직 어떤 결과를 창출해 낸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오면서 결정한 모든 일들은 우리의 최선이었다. 이 최선이 다른 결과로 이어지더라도 실망하거나 용기를 잃지 않아야 한다. 지금처럼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