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커버린 아들

공부나 열심히 할것이지

by 헬로해피 최유영

둘째는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이 되자 보건증을 준비했고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집 근처 R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3년 내내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기 용돈을 벌어 썼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 후 아일랜드로 어학연수를 갔고 그 해 9월에 더블린의 한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둘째는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로 차질이 생겨버렸다.


둘째가 아일랜드에 도착 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쉽지 않았던 듯하다. 처음엔 아일랜드에서 알게 된 한국 유학생 형 소개로 집 근처 마트에서 일을 했는데 2주일 후에 해고 되었다고 했다.


아일랜드에서는 처음 2주일 동안에는 실습기간으로 최저시급보다 낮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2주까지는 시간당 10,000원 정도를 받을 수 있고 2주일 뒤부터 최저 시급 10.20유로(당시 한화 13,600원 정도)가 완전히 적용이 된다고 했다. 별 기술이 없는 일이라 2주마다 인력을 갈아 치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2주일 동안 아들은 마트에서 물품 하차일을 했는데 아일랜드 갈 때 한국에서 새로 사간 아디다스 운동화가 다 찢어질 정도라고 하니, 그 힘듦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고는 얼마 뒤 또 그 한국 유학생 형 소개로 좋은 알바를 구했다고 했다. 다시 얻게 된 일자리는 필리핀 여자가 주인인 음료 테이크아웃 가게로 그야말로 ‘꿀’ 알바라고 했다. 필리핀 여사장은 한국 유학생을 특별히 좋아해서 고용한 아르바이트생이 거의 한국 유학생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국 유학생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자리라고 했다.


‘공부나 열심히 할 것이지…’


둘째가 막상 알바를 구했을 때 우리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 좋으면서도 이중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둘째의 성실함을 믿었기에 아이가 하고자 하는 데로 따랐다. 어쩔 것인가. 남편과 내가 학비를 모두 지원할 여력이 충분한 것은 아니니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공부에 열중해서 장학금을 받아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아들은 공부를 하는 것보다 몸을 움직여 경제활동을 하는 것을 더 즐겁게 생각하는 쪽이었다.


남편과 나도 아들의 공부 만을 목표로 유학을 권유한 것은 아니다. 아들이 삶의 다양한 경험들을 하기를, 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더 넓은 세상을 만나기를 바랐다. 우리는 아들을 존중했다.


아들에게는 장학금보다는 삶의 경험을 쌓는 것이 더 남는 장사일지도 모른다. 공부는 삶을 꾸려가는 도구일 뿐이지 않겠는가. 그렇게 아들은 더블린에서도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했고 집으로 돌아오는 항공권도 스스로 구입했다. 각국의 친구들과 교류하는 비용은 물론, 때때로 추가로 들어야 했던 수업료와 시험 응시비, 남편 애플 워치까지 선물로 사 올 정도로 야무졌다. 지금은 작년 6월 제대후 7월 한달 쉬고 곧바고 호주로 워홀을 떠났다. 다음 학년 학비를 벌기위해서.


나는 둘째의 이른 경제활동으로 많은 고민을 했었다. 아들이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그 성숙함이 아들에게 좋을지 나쁠지 부모 입장에선 빨리 자란 아들덕에 마음의 짐을 빨리 내려놓을 수 있어 좋기도 했지만 아들이 너무 어린 나이에 다른 아이들은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아팠다. 자신이 원해서 한 일이지만 자식의 고생을 좋아할 부모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아들은 독립적이고 삶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로 성장했다.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했다는 것은 어떤 성공보다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어학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첫째가 군입대를 하는 시기와 둘째의 아일랜드행 시기가 겹쳤다. 그런 이유로 우리 집은 다른 가정보다 빈 둥지 앓이를 빨리 시작했다. 그 바람에 나도 빈 집을 지키며 살아가는 노하우를 그만큼 빨리 터득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내 곁에 없는 헛헛한 마음을 달래는 법이라든지, 어차피 부모는 자식을 떠내 보내야 할 운명이며 다시 홀로 서기를 해야 한다는 것 같은.


독립을 빨리 준비한 아이들이 철이 빨리 들어 버린 덕분에 우리 부부도 노후에 닥칠 마음의 준비를 그만큼 빨리 하게 되었다. 사실 아들들의 빈자리 덕분에 나도 더 늦지 않게 철이 들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