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장남 독립 만세!

엄마와 아빠는 '땡큐'다

by 헬로해피 최유영

나의 두 아들은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심할 때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대학에서 1학년을 마쳤다. 그 후 각자 사정(첫째는 군복무 시 다친 손가락 재수술, 둘째는 군 입대)에 의해 휴학을 했다.


그리고 지난여름, 딱 2년 만이다. 그들은 한국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냈고 또 다시 떠났다. 첫째는 2학년 복학을 위해 더블린으로, 둘째 는 워홀을 목적으로 호주로 출국했다. 그들이 다시 내 품(둥지)을 떠난 것이다. 그들이 둥지를 떠나 자기 삶을 살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이 외롭지만 기특했다.


나는 자식을 양육을 하는 것에 있어 다른 부모들보다 두 세배의 어려움을 체감하며 살아왔던 듯하다. 물론 이 마음은 주관적인 것이다. 모든 부모들이 자식을 키우는 것이 그 무엇보다 어렵다고 말하는 것을 참 많이 들어왔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제일 힘들었다고 항상 징징 거렸다.


나는 한 성인으로서 오롯이 혼자서 자립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주 나약하고 미숙한 사람인체로 결혼을 했고 두 아들을 낳았다. 내가 첫째를 낳았을 때 아이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다. 그것은 정말 진실에 가까운 표현이었다. 나의 작은 체격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나는 결혼을 할 때까지도 오롯이 독립된 존재로 살아보지 못했던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러니 내 모습이 남들 눈에도 더 어려보였으리라 미루어 짐작된다. 나는 그런 나약한 모습으로 결혼을 했고 그대로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나는 부모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이해도 없이 덜컥 엄마가 되어버린 것이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을 어떠한 배움도 철학도 없이 나섰던 어리고 무모한 처사였다. '왜 우리사회는 결혼전에 부모교육을 하지 않는 것일까?' 아들들을 양육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물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충우돌 오늘을 맞이 했고 나의 아들들은 모두 성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갔다. 자식이 성장하는 만큼 부모도 성장한다는 아주 놀라운 사실을 남기고.


부모는 자식을 잘 떠나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자식이 성인이 되어 하나의 주체로서 독립된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자식이 상처받지 않는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쏟고,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교육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이런 나의 순수한 마음이 욕망으로 변질 되어 그들의 자유를 억압해버리고 말았다.


특히 나는 첫째와 충돌이 많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고집스럽게 관철시키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와 부딪혔다. 그는 내가 엄마로서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지 크게 깨우쳐 주는 스승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그와 충돌이 생길 때마다 그가 잘못되었다고 여겼던 모든 날들을 후회한다. 단지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인격체일 뿐인데 내 안에 쓸데없는 불안감을 키워 그의 본연의 기질과 특성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세상 어떻게 살래? 좋은 직장 가져야지. 다 너의 앞날을 위해서야. 등등 아주 부끄러운 생각을 가졌던 나였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우리의 갈등에 있어서 명백히 내가 틀렸고 그가 옳았다.


그는 특별히 자기 개성이 뚜렷하고 똑똑한 아이였다. 그래서 더 기대했고 몰아부쳤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를 이해해 주지 못했고 사회의 퍼즐 한 조각이 되어 주길 바랐다. 그런 나의 잘못을 끊임없이 일깨워 준 존재가 바로 첫째였다.


그렇게 그는 20여 년 동안 잘못된 내 사고방식에 묵묵히 저항하며 아주 멋진 생각을 가진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누구의 강요나 권유가 아닌 자신의 생각대로 큰 용기를 품고 학업을 다시 잇기 위해 더블린으로 떠났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는 않았다. 그도 많은 방황과 우울한 나날을 보낸 듯했고, 나 역시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 전과 다르게 많이 참아주고 기다려줬지만 병적인 불안증을 참지 못하고 결국 몇 번의 격한 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더 기다려 주지 못한 나 자신이 미웠고 후회됐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날 결심을 한 것이다. 그는 이 결심을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과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그렇다면 엄마와 아빠는 전적으로 응원하고 땡큐다.


나도 '엄마는 처음이라서' 첫째와의 경험으로 많은 배움과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둘째는 첫째에게 실패한 방식은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았고 첫째를 통해 터득한 엑기스만 지원받으면서 자랄 수 있었다. 반면교사의 교훈을 있게 한 형님때문에 꽤나 '자유하게!' 성장할수 있었다.


"둘째야 형님한테 잘해야 한다…. "


지금의 나는 이런 아픈만큼 성숙한 속이 깊고 유머를 가진 우리 장남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식의 독립은 어른이되어가는 필수코스인것 같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장남은 아주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 아주 희망적이라는 것.


정말 우리 장남 독립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