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줘서 고마워

엄마 아빠, 우리 장남 믿어도 되지?

by 헬로해피 최유영

잘 살아줘서 고마워


첫째가 아일랜드로 떠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내일이면 아들은 지금 묵고 있는 하우스보다 학교에서 조금 더 가까워진 셰어 하우스로 이사를 할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셰어 룸이다. 아니 셰어 룸도 아니고 셰어 배드이다. 더블 침대 하나를 나눠 쓰는 것인데 500유로란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70만 원이 훌쩍 넘는 비용이다. 더블린 시티에서 가까운 동네라서 강남 방값만큼 비싸다. 자기 방은 이렇게 빈 둥지로 남아 있는데 고생이 많다 싶다.

첫째는 생활비 정도는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면서 우리를 설득하고 아일랜드 행을 결정했다. 아무래도 우리 부부가 아들에게 단단히 휘말린 것 같다. ^^ 이제와서는 과제가 많다고 아르바이트는 방학 때나 알아보겠다고 발뺌하는 모양새다.

"너 정말 우리한테 이러면 안 된다. 엄마 아빠 우리 장남 믿어도 되지?"

첫째가 떠난 첫날부터 나는 불안에 떨며 전전긍긍이었다. 평소 우리 집에서처럼 게으름을 피우면 어떡하지? 귀찮다고 잘 챙겨 먹지 않으면 어떡하지? 친구는 사귀었을까? 빨래는? 청소는 잘하고 살까? 아들도 적응하느라 힘들었겠지만 나도 몹시 초조하게 보냈다. 그러나 한 달 정도가 지나고 나니 내 걱정이 다소 줄어들었다. 아들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잘 해결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믿음이 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차피 고생시킬 마음으로 보냈으니 나도 강한 마음으로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른으로 가는 길이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기 위해선 내가 더 많이 단단해져야 한다.

워홀을 목적으로 간 둘째는 호주에서 산지 두 달이 넘었다. 둘째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일식집에 취직을 했다. 아들은 이 곳에서 일을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타국 사람들이 운영하는 사업장보다 급여 조건도 좋지 않고 영어 쓸 일이 많지 않겠다면서.

호주는 아일랜드와 달리 처음 일을 시작하는 사람에게도 트라이 기간을 두지 않는데 유독 한국 사업장만 2 주간의 트라이 기간을 정해두어 최저임금보다 훨씬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다고 했다.(한국 돈으로 7천 원 정도가 빠진다) 한국 사람의 팍팍한 심경을 해외에서도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아직 다른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사장이 투잡을 허용하겠다는 조건으로 이곳에 남기로 했단다. 사장이 아들을 잘 본 것 같다고. 그나마 생활 보험이 생긴 것이라서 일단은 안정된 상태이다.

둘째 생일날, 화상통화를 했다. 외식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라 했다. 대개는 식사를 직접 조리해서 먹고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은 외식을 한다고 했다. 지인 형이랑 나눠서 갈비를 7만 원어치나 사다 놓았다고 뿌듯하게 말을 한다. 자기는 잘 먹고 있으니 걱정 말란다. 하긴 육식파 식성에 호주산 고기는 실컷 먹겠다 싶었다. 나는 야채도 꼭 챙겨 먹으라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싱글생글 웃는 모습이 너무도 예뻤다. 안심이 되었다. 아들이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참 보기 좋았다.

안쓰럽지만, 바쁘겠지만, 첫째에게도 앞으로는 학비만 지원해 줄 것이라고 일렀다. 알바를 해서 생활비를 벌어 쓰겠다는 약속 지키라고 했다. 경각심을 심어주고 싶었다. 사실 남편과 나도 부담이 많이 되었다.

세상 일이 모두 계획대로 되겠냐마는, 지금 우리는 그들의 경제 독립생활이 성공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정말 간절히……. 엄마 아빠좀 살려줘…….

어찌 되었든 둘째는 돈이 목적인 타국 살이라서 경제 독립의 삶을 나름 성공적으로 살고 있고 첫째는 아일랜드에 입국 후 여러가지 필요한 수속을 밟고 학교 생활에 올인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라도 별 탈 없는 타국 살이를 해주는 아들들이 고맙다. 그래서 전화가 연결될 때마다 “이렇게 잘 살아줘서 너무 고마워~.”라며 늘 고맙다는 말로 맺음 인사를 하곤 한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ps. 몇달 후 첫째도 알바를 구했다. 역시 한국인 한식당이란다. 밥걱정은 줄었다며 좋아한다. 감사할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