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눈물이 났다
빈 둥지 앓이
지난여름, 아들들이 모두 자기 삶을 찾아 떠나고 우리 부부만 남게 되었다. 8월에 호주로 떠난 둘째를 뒤 이어 한 달 만에 첫째가 아일랜드로 떠났다. 나는 인천 공항에서 아들을 배웅을 하면서 이미 그가 그리워졌다. 걱정과 그리움이 뒤범벅이 된 마음이 괜한 우울감을 불러일으켰다. 둘째를 떠나보낼 때는 이런 슬픔은 없었다. 다만 걱정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첫째를 보낼 때는 왜 이렇게 눈물이 나던지 나 스스로 몹시 당황이 되었다.
첫째를 출국장으로 들여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도 슬펐다.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며 운전을 했다. 아들이 없는 텅 빈 집으로 들어섰다. 아들이 마시던 물 컵, 침대 위에 던져진 실내복, 다 마신 캔 맥주 깡통이 쓸쓸하게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첫째의 흔적이 이렇게 그리움으로 다가올지 나는 미처 몰랐다. 나와 밥을 함께 먹고 저녁 반주로 맥주를 함께 마셔주던 아들의 빈자리가 너무도 컸다. 생각해 보니 둘째가 떠날 때는 첫째가 내 곁에 남아 있어 외롭거나 쓸쓸한 마음이 적었던 것 같다.
첫째의 빈방을 둘러보았다. 쿰쿰한 아들의 냄새가 그리움이 되어 밀려왔다. 평소에는 이 냄새를 불편해했던 나였다. 냄새가 난다며 서둘러 이불이며 베갯잇을 벗겨 세탁을 하던 나였다. 그러나 오늘 나는 그의 이불 세탁을 미루어 둔다. 둘째 방은 둘째가 출국하자마자 득달같이 정리하고 먼지를 닦아내고 이불보를 세탁기에 집어넣던 나는 어디로 갔나….
아들의 냄새가 배인 침대에 누워본다. 평소 못마땅했던 그의 냄새가 좋았다. 위로가 되었다. 이렇게라도 아들의 빈자리를 아들의 냄새로라도 채워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꾸 눈물이 났다. 타국에서 부모의 울타리 없이 고생을 할 그가 눈에 밟혔다. 사실 둘째는 나름 씩씩하고 자립심이 강해서 그리 걱정되지 않았다. 연락도 잘 되어서 자신의 상황을 미주알고주알 잘도 설명해 준다. 그러나 첫째는 다르다. 연락을 자주 안 할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들도 잘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에 대한 알지 못하는 것이 불안이 될것은 불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나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마음을 단단하게 붙든다. 나는 희망찬 내일을 향한 도전을 위한 아들을 응원만 하기로 다짐했다. 걱정과 불안 같은 부정의 마음은 걷어내고 다 잘될 것이라는 긍정의 기운만을 보태기로 마음 먹었다.
부모라면 언제고 닥칠 일들인 것이다. 아기 새들이 성장하면 둥지를 떠나는 것은 축복과 같은 것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는 나의 두 아들의 건강한 삶을 응원하면 될 뿐, 절대 쓸쓸해하지도 슬퍼하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다만 우리의 둥지를 더 소중하게 가꾸며 지키고 있겠다고 생각했다. 두 아들이 언제든 돌아와서 지친 어깨를 기대고 쉬어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