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침 루틴

가을 국화는 그리움

by 헬로해피 최유영

요즘 아침 루틴


“오전 7시 기상. 커튼을 활짝 연다. 라디오를 켠다. 양치를 한다. 더 오래살려고 약을 챙겨 먹는다. 커피를 내려서 창가에 서서 올 가을 새로 입양한 국화와 아보카도를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요즘 나의 아침 루틴이다. 여자로서 이런 여유, 내가 돌봐야 할 가족이 단출 해져서 가능한 것이다. 지난 8월과 9월, 두 아들 모두 독립 선언을 하지 않았나.

나는 그들을 몹시 그리워 하지만 내게 생긴 이 여유로운 시간이 참 좋다. 이런 마음을 갖는 것에 대해 그들에게 미안하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도 독립은 아주 축하할 일이다. 성인이 되었다는 증표가 아니겠는가.

오죽하면 '대한독립만세!'이겠나.

그들은 어른이 되어가고 나는 익어가고.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인생에 있어 이 시간은 꼭 필요한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떠난 자리가 많이 허전하고 외로웠을까? 남편은 지난해부터 키우기 시작한 아보카도 형제들에게 더욱 애정을 쏟고 있고 나는 아름드리 국화 화분 3개를 집에 들였다.

남편은 작년부터 먹고 난 후 남겨진 아보카도 씨앗을 직접 발아시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씨앗이 발아되기까지 꽤 오랜 날들이 필요했다. 한 달은 기본이고 어떤 씨앗은 3개월이 걸렸다. 아보카도도 저마다의 성장 속도가 있었다. 아보카도는 보통 10개가 든 꾸러미로 구입할 수 있다. 작년 여름엔 이 중 딱 한 개만이 싹 틔우기에 성공했다. 남편은 열대 식물인 아보카도가 겨울을 못 버티고 죽을 가봐서 우리 집안에서 늘 온기가 남아있는 전기밥솥 옆에 두고 키웠다.

그렇게 정성으로 키웠더니 아보카도는 작년 겨울을 잘 견뎌냈고 지금은 맏형으로 가장 굳건하다. 올 가을에는 대형 화분에 옮겨졌고 또다시 찾아올 겨울을 위풍당당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 아보카도 키우기 프로젝트는 작년의 실패를 보안해서 봄부터 씨앗 발아를 시작했다. 그랬더니 여름즈음이 되자 9개의 씨앗에 싹이 텄다. 그중 두 개는 지인들에게 분양했고 나머지 8개는 우리 집에서 각자의 속도대로 잘 자라고 있다.

남편은 아보카도를 씨앗에서 싹이 트기를 기다리고 떡잎이 날 때를 기다리고…, 마치 아기를 보살피듯 돌보았다. 매일매일 관심을 쏟고 바라봐 주고 볕을 쏘여주고 물을 주고 정성을 쏟았다. 그러고 보니 이 마음이 참 익숙하다. 사랑을 닮아있다. 존재가 무탈하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늘 함께 있고 싶은 마음, 이 마음이 곧 사랑이다. 남편과 내가 아보카도 식물에게 이런 사랑의 마음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반려 식물이라는 말이 아주 잘 이해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사람은 사랑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생명체인가 보다. 사람은 사랑을 위해 온 삶을 바친다. 사랑하는 사람을, 동물을, 식물을, 책을, 예술을, 여행을, 일을…….

내가 식물에게 이런 소중한 마음을 느끼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인간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일에는 인색한 어리석은 존재이다. 살고 또 살아 삶에 지칠 때쯤 그 진리를 알게 된다. 삶이 고통스럽고 지쳤던 모든 일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생긴 일들이라는 사실을,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아서 생겼던 일이란 것을, 나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그런 무모한 욕망을 키우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그렇게 무모한 욕심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상대를,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기다려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또 기다림 만큼 어려운 감정은 없다. 나는 아들을 기다려주기 위해 얼마나 고통스럽게 참아냈던가. 그랬더니 기다림은 정말로 다시 힘을 낼 원동력이 되었다는 신기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남편과 나는 맏형 아보카도가 힘을 내어 살 수 있도록 기다리고 또 기다려주며 보살폈다. 이렇게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아보카도 덕분에 가끔 화원에도 가게 되었다. 가을 화원에는 국화향이 가득했다. 가을 국화는 그리움이라고 했다. 나는 올 가을, 그리움 3개를 사서 베란다 난간 앞에 내어놓았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이 가을을 감상할 수 있도록.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며 위로받을 수 있도록.

우리가 이렇게 소소한 행복으로 우리 집을 가꾸고 잘 살아 내고 있으면 두 아들들도 잘 살아내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