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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May 11. 2024

풀을 뽑지 않을게요

나는 오래된 우리 아파트에 20년 가까이를 살면서 우리 집 1층 아파트 창문만 열만 바로 보이는 공용 화단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만큼 내 삶에 여유가 없었고 집안의 내부 살림과 나를 비롯 내 가족, 즉 사람을 케어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벅찼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 시선이 외부로 확장된다는 것은 내게 사치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도 나이가 들었고 아이들이 모두 집을 떠나 있게 되자 내게도 내 주변 환경을 돌아볼 눈이 새롭게 태어난 모양이다. 몇 년 전부터 4월만 되면 우리 집 앞 화단에 보라색 야생화가 가득 해진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디서 날아온 씨앗인지 유독 우리 집 화단에만 그 보라색 꽃이 가득했다. 정원에 무심한 나의 시선도 강탈되지 않으면 비정상 일정도로 너무 예뻤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계기는 새로 이사 들어온 우리 동 1층에 사는 옆집들이 하나둘씩 공용 화단을 자기 집 앞마당처럼 가꾸는 것이다. 예뻤고 자기들만의 정원을 만들어가며 사는 것이 부러웠다. 나도 나만의 예쁜 정원을 만들고 싶었다. 주택에 살게 된다면 꼭 해보고 싶은 것이 마당에 꽃밭을 만드는 것이지 않았던가.

그래서 작년엔 이웃집의 부러움을 용기 삼아 우리 집 아파트 정원에 가득하게 핀 야생화를 주인공으로 꽃밭 조성을 하겠다고 이 보라색 꽃 이외에 모든 풀을 다 뽑아냈다. 그리고 나도 흙을 뒤엎어 풀이 자라지 못하게 해서 꽃나무를 심겠다는  야무진 계획으로.


일주일쯤 해가 없는 새벽마다 풀을 뽑아 우리 집 앞 화단에 잡초가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이웃집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뽑았다. 이런 나를 남편은 극구 반대했다. 위층에서 침을 뱉고 담배꽁초며 벼라 별것을 다 버릴 것이므로 더럽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는 자연스러운 상태가 더 좋다고 했다. 남편의 말을 듣고 나니 풀을 뽑으면서도 후회가 밀려왔다. 이게 과연 잘하는 일일까? 더럽다는 생각에 흙을 만지기도 찝찝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후자였다.

내가 좋아하는 꽃을 살리겠다고 다른 자연스러운 생명들을 뽑아내는 것이 맞는 일일까? 나도 자연스럽게 풀밭으로 자란 우리 집 화단을 볼 때마다 참 예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연에 나가서도 내 시선을 강탈한 것은 인위적인 것보다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더 감탄하고 빠지지 않았던가. 물론 이렇게 힘들여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 할 만큼 이것이 이렇게 중요한 일인가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후회 속에 몇 주가 지나자 야생화는 흔적도 없이 져버렸다. 내 노력에 비하면 참 짧은 찰라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풀이 모두 뽑힌 우리 집 화단은 자연스러운 멋을 부렸던 그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다. 나로 인해 생태계가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제 서야 내가 잘못된 일을 했다는 것을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 남편의 말이 옳았다. 예쁘게 가꾼 정원도 좋겠지만 우리의 정서엔 자연스러운 자연의 모습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을.

올해에도 우리 집 화단 4월은 보라색 꽃으로 물들었다. 풀은 뽑지 않았다. 어…, 그런데 작년에 이 보라색 야생화를 위해 풀을 다 뽑았건만 작년만 못하게 피었다. 이상한 일이다. 결국 나의 풀뽑기 이벤트는 야생화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올해의 야생화는 작년보다 더 일찍 사라진 것도 같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5월이 되자 야생화를 뒤로 하고 각종 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역시 풀의 생명력은 강했다. 그러나 뭔가 이상하다. 전에 보았던 부드럽고 나풀거리는 풀밭이 자연스럽지 않고 거칠게 보인다. 생명력이 강한, 거칠어 보이는 풀이 부드러움을 모두 잠식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올해의 나는 우리 집 화단을 보며 작년 나의 무모한 도전이 만든 부조화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 지구에는 어느 것도 불필요한 것이 없다는 것과 자연스러운 것이 더 조화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이라는 외부의 자극이 없다면 알아서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며 경외로운 아름다움을 만들며 살수 있는 존재라는 것, 이 자연의 연주를 인간이 개입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 인간들도 이들처럼 누구나 어디서나 자연스러운 존재로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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