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씨에 관한 글을 열 편 이상 쓰고 나서야 저는 우연 씨에게 제대로 고백을 했습니다.
우연 씨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고. 전에 우연 씨가 자기 이야기로 소설을 쓰라는 말에 영감을 얻어 나도 모르게 쓰게 되었다고. 1년 동안 글 한편 쓰지 않았던 내가 노트북을 두드리게 되었다고. 물론 우연 씨 이야기이고 세화 씨와 나눈 이야기와 일상 철학을 엮고 있다고. 우연 씨 이름이 너무 예뻐서 책 제목도 <안녕, 우연 씨?>라고 할 거라고.
그랬더니 우연 씨가 너무 좋다면서 저더러 멋지다고 찬사까지 보태주더군요. 전 우연씨 이름이 너무 우아해서 달콤하기까지 하다고 말해줬어요. 그러자 우연 씨는 "언니가 잘 알면서요. 저 은근 성깔 있는 거."라고 말했지만 전 우연 씨의 우아한 성깔이 정말 맘에 들거든요.
왜냐하면 우연 씨의 성깔(? 본인의 표현대로 사용함)은 무례한 것이 아니라 해야 할 말을 하는 쪽이었기 때문이에요. 우아한 교양을 뒤집어쓴 비겁한 사람이 아닌. 혹시 지금 우아한 한방(성깔)을 먹이는 우연 씨가 상상이 되시나요? 조용조용해야 할 말을 하는 우연 씨, 마치 토지의 최서희가 생각나더군요.
우연 씨는 박경리 문학관이 통영에 있다는 것을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있어요. 전 아직도 아직 읽어보지 못한 토지 전 권을 모두 읽었다고 해요. 통영에 살면서 토지 읽기 프로젝트도 참 좋을 것 같아요. 아껴둬야겠어요.
전 우연 씨가 너무 순박하기만 했다면 저는 우연 씨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지 않았을 거예요. 진솔함, 자기 색이 강함, 따뜻함, 우아함이 모두 존재하는 이 혼합체가 좋았고 매력 있었죠. 저의 추구미기도 하고요. 왜 반전 매력이라고들 하죠? 한 없이 약할 것 같은데 한방이 있는 세계관을 가진, 우연 씨에겐 그런 우아한 한방이 있었어요.
휴일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병원에서 만났습니다. 책 제목이 된 <우연이 본 세계>라는 이름 이야기를 하게 되었죠. 우연 씨는 자기도 자기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하마터면 언니 이름 현정이를 따라 미정이가 될 뻔했다고 이야기해 줬어요. 그러나 현정이로 사는 언니가 많이 아파서 작명소에서 이름을 다시 지었는데 그 이름이 '우연'라는군요. 저는 정말 다행이라고, 미정이보다 우연 훨씬 잘 어울리고 예쁘다고 말해줬어요. 역시 너무나 재밌는 에피소드예요. 미정이라 불리는 우연 씨가 상상이 안되네요.^^
우연 씨는 옛 친구 정임이라는 이름이 생각난다고 했어요. 이름이 조금 촌스러운 것 아니냐고 저에게 묻더군요. "난 귀여운데요? “라고 대답하자 우연 씨는 정임이라는 친구가 볼이 빨갛고 까무잡잡한 것이 조금 촌스러운 편이라고 했어요.
그러나 제 이름 '영희'는 예쁘다고 말해줬어요. 저의 유 씨 성이 이름을 예쁘게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모두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이름이라고 한 마디씩 하는 저의 촌스러운 이름을 우연 씨가 예쁘다고 하는 거예요. 촌스러움으로 따지면 영희나 정임이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뭐가 다를까 생각해 봤는데 우연 씨는 저를 이미 좋은 사람, 예쁜 사람으로 이미지화 시켰던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말이죠. 이름과 사람이 매칭되니 더 괜찮아 보이는 현상이 벌어진 거죠. 우연 씨의 이미지도 이름과 아주 잘 어울리듯 말이에요.
우연 씨는 순박한 친구 얼굴이 생각이 나서 정임이라는 이름이 촌쓰럽게 느껴졌고 저는 그 친구 얼굴은 모르고 있어서 귀여운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또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제 친구 정임이도 있었을까요? 저에겐 정임이라는 이름이 왜 이렇게 친숙하고 귀엽게 느껴질까요? 저는 정임이보다 영희라는 이름이 오히려 더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그러고 보니 '문제는 이름이 아니었어요, 사람이 문제였던 거죠.' 아마도 정임이라는 친구가 하얀 얼굴을 하고 귀여운 이미지였다면 이름도 귀엽게 인식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왜 아무리 세련된 이름도 사람과 어울려야 그 가치를 더 발휘하잖아요. 제가 더 잘난 사람으로 살았다면 저도 영희라는 이름을 더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었을까요?
제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름의 촌스러움과 세련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에요. 결국엔 자기 이름은 자기가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우연 씨와 이야기하다가 문득 깨닫게 된 거예요.
내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 주셨기만 내 삶에 의해 나의 모든 정신과 정체성이 내 이름에 투영되어 가는 것이죠. 곧, 내가 어떤 삶과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느냐에 따라서 내 이름의 가치도 세워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정임이라는 친구는 우연 씨가 정말 애정하는 친구라고 했어요. 우연 씨 이름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농담 삼아 이름에 대한 에피소드를 하나 더 풀어낸 것이지요. 한낱 농담을 제가 너무 진지하게 풀어냈다 싶기도 하고요. 정임 씨는 그녀의 빨간 볼처럼 마음도 아주 따듯할 것 같아요.
지난번 언급했던 조진웅이 또 생각나네요. 앞으로는 제대로 살아보고자 아버지 이름으로 살았다던 조진웅의 진실은 모르겠으나 그만큼 내 이름의 가치는 내 삶이 만든다는 사실은 명징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