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란 씨의 하얀 미소

by 헬로해피 최유영

재활병원에서 우연 씨의 관심과 예쁨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은 애란 씨인 것 같습니다. 애란 씨는 이제 겨우 7살 아들 H가 '지방산 대사장애'를 앓게 되면서 이곳으로 왔습니다. 병원 생활도 인생 살이도 우연 씨보다 한참 후배입니다.


H는 중증 와상 환자입니다. 몸이 강직되고 피부색도 검붉게 되어 너무 안쓰럽기만 합니다. 지난 의료파업의 희생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검진과 치료가 늦어져 백질(세포가 하얗게 죽어가는것) 등 병세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해 8월부터 이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으니 1년 넘게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애란씨 아들을 만나면서 '지방산 대사장애'라는 병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희귀성 난치병으로 가족력이 원인이라고 하더군요. 아들의 고통과 아픔을 엄마인 애란 씨가 모두 흡수하며 살아갑니다. 5살까지도 건강했다던 아들의 밝고 해맑았던 스마트폰 속 옛 사진을 넘기는 애란 씨의 손끝이 파르르 떨립니다.


J를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을 보이는 우연 씨는 애란 씨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고 합니다. 애란 씨는 얼마 전 허리를 다쳐서 일주일 동안 병원에 나오지 못했는데요, 애란 씨가 방바닥을 기어 다니며 집안일을 할 정도록 많이 아파서 동생도 어린이집을 가지 못하고 집에 함께 갇혀 있어야 했지요. 우연 씨는 도움 줄 길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만으로 동동 거렸죠.


애란 씨는 괜찮다 하고, 우연 씨는 도와주고 싶다 하고. 이 밀당에서의 승리자는 당연 애란 씨였어요. 도움이란 주는 사람 마음이 아니라 받는 사람 마음을 고려해야 하는 거니까요. 받는 사람의 마음을 무시하고 주는 사람 마음대로 하면 한낱 동정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그 사실을 사려깊은 우연 씨는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우연 씨는 애란 씨에게 부담스럽지 않게 소소한 도움을 주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게 조심하는 데도 애란 씨는 우연 씨에게 "언니, 제가 받기만 해서 어떻게 해요?"라며 미안해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연 씨는 친절과 배려가 상대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더 조심합니다. 어느 날엔 우연 씨가 자랑합니다. 애란 씨가 뜨개질로 자동차 열쇠 주머니를 손수 떠주었는데 곰 얼굴 장식까지 자수를 놓은 것이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서로 아끼는 마음이 보기 좋습니다.


다행히 애란 씨는 호전되어 일주일 후에 병원에 다시 올 수 있었어요. 애란 씨는 원래 허리가 약한 편이라고 했어요. 이런 형편에 와상 환자인 아들을 계속 들었다 놓았다 하며 돌봐야 하니 약한 허리에 무리가 갔던 모양입니다. 허리에 복대를 두르고 H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니 엄마의 모성은 참 깊고 깊습니다.


이 어려움 속에서도 애란 씨는 우리에게 늘 환하고 밝게 웃어줍니다. 그 미소가 너무 순수하고 맑아서 주변이 다 환해집니다. 이런 사람이 마음도 탁할리 없지요. 세화 씨에 따르면 애란 씨가 너무 착해서 더 걱정이 된다고 합니다. 애란 씨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고 사는 것 같아 보였다해요. 어떤 상황에서도 화가 없는, 부정적 감정이 없는 여자라고 합니다. 매사를 긍정하는 여자의 얼굴이 바로 애란 씨인 것 같습니다.


애란 씨의 하얀 미소를 보면 애란 씨가 살아왔던 삶이 그려집니다. 그녀의 과거를 전혀 모르지만 애란 씨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사람을 두고 단정을 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저는 애란 씨의 투명한 웃음 뒤에서 그녀의 투명한 삶이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안정된 호흡을 위해 코에 관을 삽입해야 하는 아들을 매일 돌보면서도 우리들에게 저렇게 '진실된 하얀 미소'(웃음뒤에 가식이 전혀 없는)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 그녀가 살아왔던 삶의 증거가 아닐까 싶어요. 애란 씨의 하얀 미소가 앞으로도 계속 되어야 할텐데요. 그녀가 긍정의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할텐데요.


신이시여, 애란씨 아들 H에게 건강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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