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도착했습니다.”
9시 34분. 그와는 10시에 만나기로 했다. 나는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불안한 마음에서인지 몸이 저절로 부지런을 떨었다. 오늘 그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차선책 같은 것도 마련되어 있다. 어제는 그렇게도 연락이 늦더니 오늘은 재깍 회신이 왔다.
“네. 갈 수 있을 거 같아요.”
‘우려했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안심을 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10분 정도 후에 그가 도착했다. 명절 바로 전날이라 택배 물량이 적어 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검은 마스크를 썼고 작업복 차림이었다. 많아야 30대 초반 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내가 그를 담당과장에게 안내를 하자 그는 과장에게 대뜸 2개월 할부도 가능하냐고 물어보았다. 과장이 “그럼요. 가능합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그는 과장의 안내로 수납창구로 가서 여직원에게 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12개월 할부로 해주세요.”
나는 그의 옆쪽에 서서 그가 자동차 수리비를 수납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처진 어깨를 보고 있자니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저렇게 순박해 보이는 젊은이를 두고 그동안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가슴이 먹먹해졌다. 뭔지 모를 슬픔이 밀려와서 당황스러웠다.
열흘 전쯤의 일이었다. 토요일 오후, 내게 낯선 번호의 전화가 왔다. 주차를 해 놓은 내 자동차를 본인이 실수로 찌그러트렸다고 했다. 곧바로 건물 아래로 내려가 보니 모자를 눌러쓴 작업복 차림의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 자신은 택배기사이고 후진을 하다가 사고를 냈다고 한다. 그리고 택배업을 하는 사람이라 보험으로 하지 않을 생각이니 수리비 견적이 나오면 연락을 해달라고 했다.
나는 택배기사 이름을 확인하고 탑차 번호판을 사진으로 남겼다. 나의 과실은 아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운전업을 하는 사람은 사고율을 줄여야 한다. 그 딱한 사정이 한눈에 보여 안타까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동차보험으로 하면 서로 부담이 없을 텐데 본인부담으로 처리를 하겠다고 하니 신경이 많이 쓰이겠구나 싶었다. ‘혹시 수리비를 받지 못해 복잡한 상황에 또 말려드는 건 아니겠지?’ 앞선 걱정도 되었다.
지난번에도 우리 집 이층 아들이자 어린 아기아빠가 취한 상태로 새벽에 귀가 중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내 자동차 쪽으로 넘어져 앞쪽 휀다를 파손한 적이 있었다. 경찰까지 출동하여 자신의 소행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배상을 해주기로 약속을 했는데도 후에 마음이 변해서는 발뺌을 했다. 자기가 했다는 증거를 가져오라고 오히려 화를 냈다. 결국 우리는 복잡한 민사소송을 해서 몇 달 만에 수리비를 받아낼 수 있었다.
월요일이 되자마자 나는 S자동차정비센터로 가서 견적을 받았다. 차체를 절단해서 용접할 경우는 174만원이고 판금 할 경우에는 150만원의 예상견적이 나왔다.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가해자에게 예상견적서를 전달하니 너무 비싸다며 자기가 아는 공업사에 수리를 의뢰하면 안 되겠냐고 했다. 자신은 아기도 키우고 있고 돈이 없다고 사정을 했다.
나는 난감했다. 우리 집은 항상 S정비센터를 이용하기도 하거니와 개인 공업사보다 대기업의 책임감 있는 서비스를 믿었다. 대기업 서비스는 소비자 입장에서 편리하고 믿음이 간다. 만약 수리가 잘못될 경우의 애프터서비스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니 단골인 S카센터에 차 수리를 맡기는 것이 나로서는 당연했다. 대기업의 이미지를 좋아하지 않지만 소비자로서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하게 된다.
또 가해자가 보험으로 처리한다면 내 자동차는 구입한 지 5년 미만이기 때문에 감가상각비에 해당하는 피해보상비를 따로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내 자동차가 온전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가해자도 딱하지만 내 입장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자기 위안을 하며 망설이는 가해자에게 내 의사를 분명하게 전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가해자 입장을 생각해 줘야 하는 것은 아닌지 내적 갈등도 컸다.
‘만약 내가 본인부담으로 수리를 할 경우였더라도 나는 S정비센터에 수리를 맡기려 했을까?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기에게 이로운 방법을 선택할 거야.’
대신 내가 직접 수리비를 깎아 보기로 했다. 사정을 들은 정비소 과장이 할인을 약속했고 다행히도 수리는 판금으로 처리했다. 수리비도 20%를 할인해서 121만 원이 나왔다. 과장은 많아야 10% 할인을 해줄 수 있는데 내가 계속 부탁을 해서 최대한 공임비를 줄였고 수리도 빠르게 진행했다고 했다.
“수리비가 엄청 줄어들었죠?”
오히려 과장이 화색을 띠며 기뻐했다. 과장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다. 3-4일 예상이었던 수리는 이틀 만에 끝이 났다.
이제는 결재만 하면 자동차 렌트비도 줄일 수 있다. 그러려면 빠른 결재가 필요한데 가해자는 답답할 만큼 연락이 늦었다. 톡은 읽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일을 하느라 그렇겠지.’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혹시 일이 틀어져 수리비를 못해준다고 하면 어쩌나.’라는 의심이 자꾸 들었다. 나는 일을 하면서 이리저리 중간자 노릇을 하느라 피로감이 밀려왔다. ‘이 일이 이렇게도 어렵게 해결해야 할 일인가? 이제 결제만 하면 되는 일인데?’ 답답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젊은 사람이라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겠지. 내 아들의 경우라도 산전수전 다 겪은 우리 나이 든 사람처럼 쉽지 않은 일일 거야.’라고 이해하며 끝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그가 카드를 들고 와서 수리비를 지불하고 있다.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이제 다 해결되었고 불안은 사라졌는데 슬픔이 차올랐다. 골치 아팠던 일이 끝이 나서 시원할 법도 한데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기운 빠진 모습으로 수납창구에 서있는 젊은 아기 아빠의 어깨 위의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보여 안쓰러웠다. 그에게 미안했다. 사람을 믿지 못했던 내가 미웠다.
사고 수습을 다 마치고 그는 다시 자기 일터로 향했다. 나는 수리된 자동차를 몰고 나의 일터로 나왔다. 하루 종일 우울했다. 도로를 달리는데 급기야는 눈물이 터졌다. 항상 경쾌하던 라디오 음악도 오늘따라 우울한 곡 일색이다.
나는 택배기사의 어깨 위에 올려진 삶의 무게에서 내 아들들의 삶의 무게를 느꼈다. 힘든 세상에 무력감을 느꼈을 젊은이들이 생각났다. 그의 어깨 위에 올려진 무거운 삶은 결국 우리들의 자식들이 나누어 짊어지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내가 서있는 곳이 다르면 세상의 풍경도 달라 보인다고 했던가? 내 아들들이 청년이 되니 내 눈엔 젊은이들의 삶이 보인다. 젊은이들의 삶이 내 삶이 된다. 그래서 그의 고된 삶이 내 삶 안으로 들어왔던 것 같다.